도대체 걷기 학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제는 유별난 하루였다.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별로 웃을 일이 아닌데도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한 사람이 웃으면 따라서 모두 웃는다. 사소한 표현, 사소한 몸짓, 사소한 대화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웃음 전염병이라도 생긴 것일까? 일반적으로 전염병은 퇴치해야 할 대상이지만, 웃음 전염병은 오히려 모두에게 전염을 시켜야 하는 이상한 병이다. 웃음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지금의 상황을 표현할 수 없다. 나의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설마 그럴 리가? 물론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아서 모든 사람들이 멋있고,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제의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단지 나의 기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웃음 전염병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차 안에서, 걸으며, 식사를 하며, 간식을 나눠 먹으며 잠시도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바다는 늘 그렇듯 우리는 반갑게 맞이한다. 시원한 바람이 반가움의 표현이다. 우리 역시 바다를 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가 바다를 맞이하는 표현이다. 햇빛은 제법 따가웠지만 바닷바람은 그 뜨거움을 기분 좋게 식혀준다. 걸으며 떠오르는 기억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웃음에 묻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기억은 잔상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장면은 범일님의 춤사위다. ‘춤사위’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 끼를 감추며 살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분위기에 따라, 또는 춤추는 상대방의 태도나 표현에 따라 춤 동작이 변한다. 변화무쌍이다. 예전에 ‘미쳤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유명해진 한 노인이 있다. 범일님의 춤은 그분의 춤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미 레벨이 다른 춤이다. 손동작, 발 움직임, 표정, 요염한 몸동작 등이 사람을 현혹시킨다. 그 춤을 따라 하는 빅토님, 걷자님의 동작도 예사롭지 않다.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영상 촬영을 하는 렛고님은 그 영상을 우리 모두에게 보내 해파랑길 완보 기념 뒤풀이 때 함께 춤을 추자고 한다. 범일님의 춤이 교재다. 따라 추는 분들이나, 영상에 담는 분이나, 그 춤을 보고 웃고 있는 우리 모두 웃음 전염병에 심하게 걸린 사람들이다.
갯배를 타고 속초항의 청초호를 건넌다. 갯배를 움직이는 두 사람의 무표정한 힘든 모습을 본다. 쇠꼬챙이로 쇠줄을 잡아당기며 배를 움직인다. 순간 잠시 멈칫했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노예 선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의 지친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즐겁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기계 같았다.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인간 로봇 기계 말이다. 관광 상품이고 방문객의 즐거움을 위한 만들어 놓은 갯배이지만, 그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즐거움보다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먼저 떠오른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배를 탄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떠들며 줄을 잡아당기며 배를 움직일 수는 없을까? 갯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좋은 추억이고 재미있는 놀이는 맞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로 청초호를 건너면 속초 생선구이 거리가 나온다. 유명하다는 식당에 찾아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고 일상생활을 하는 동력원에 불과하기에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길벗들이 좋은 맛집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함께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골목 한쪽에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 제법 두꺼운 옷을 입고 불을 지피는 사람이 있다. 생선 구이를 위해 숯불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시뻘건 숯불을 만들고 연신 들락날락하며 손님들 상 중앙으로 나르고 있다. 하루 종일 그 일을 반복하는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등 뒤에서 웃고 떠들기에는 괜한 미안함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식당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에 대한 생각에서 금방 벗어난다. 미안함은 잠시, 즐거운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저장된다. 내 안의 모순이다. 어떤 것이 나의 진실한 모습일까? 미안함 아니면 즐거움. 즐거움이다. 그러면서 예의상 미안함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여전히 그의 뒷모습은 씁쓸하게 남아있다.
영랑호는 해안사구가 발달해 형성된 자연 석호로 둘레가 7.8km, 면적이 약 1.2 제곱 킬로미터에 이르며 수심이 8m를 훌쩍 넘길 만큼 넓고 깊다. (중략) 삼국유사에 따르면 영랑호는 신라의 화랑인 ‘영랑’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친 영랑이 무술대회장으로 가던 중 이 호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만 수려한 경관에 반해 무술 대회 출천도 잊고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옛 기록에도 남아 있을 만큼 영랑호는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네이버 검색 자료)
이번 길의 마지막 코스인 영랑호를 바라보며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일반 호수와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저절로 환호성이 터지는 뭔가가 있다. 잔잔한 호수면, 잘 조성된 산책로, 주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 호수 위를 유유히 다니는 오리 두 마리가 떠오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새벽에 조용히 이 호숫가를 걷고 싶다. 또한 이 호수에서 펼쳐진 범일님의 화려한 춤사위도 떠오른다. 호수 중간에 설치된 다리, 영랑호수윗길과 그 다리 중간에 있는 포토존도 떠오른다. 단체 사진을 찍는데 불쑥 나타나 맨 앞에 누워버린 범일님의 고혹적인 자태 때문에 우리의 웃는 모습은 묻힌다. 그래도 사진을 보니 우리는 웃고 있고, 범일님의 모습은 단지 검은 물체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모습과 사진으로 본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보이는 모습에 속지 말라고 현자들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갯배를 운영하는 분들과, 숯불을 만드는 분들의 모습 역시 우리가 본 모습과 다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기억은 기억, 실상은 실상, 느낌은 느낌, 현상은 현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분들의 모습은 강렬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웃음 전염병은 쉽게 낫지 않는 중병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전염벙에 걸리기 위해 엄청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에게 일상이 된, 또는 우리의 일부가 된 웃음 전염병은 굳이 나을 필요가 없는 병이며, 일부러라도 걸려야만 하는 병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가 아니고 웃기 때문에 복은 찾아온다. 웃음 전염벙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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