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 동안거 입재를 해서 오늘 2025년 2월 12일 아침에 해재를 했다. 음력 10월 15일이 입재일, 1월 15일이 해재일이다. 석 달간의 안거를 마쳤다. 후련하거나 개운하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어서 편안하다. 안거 기간 동안 공부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공부 시간을 많이 계획하지 않았고, 공부를 못하는 날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다음 날 다시 공부를 했다. 매일 한 시간 수행을 했다. 못한 날도 있었다. 한 시간 수행 중 30분은 행선을, 30분은 좌선을 했다. 그리고 안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행선 대신에 자애명상을 했다. 행선은 평상시에 많이 자주 걷는 편이어서 걸으며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신 자애명상을 했다.
오늘 아침에 공부하는데 잡념이 많이 올라왔다. 끝나는 시간이 가까이 오면서 마음의 빗장이 풀렸기 때문인 거 같다. 공부할 때는 늘 마음을 여미고 있어야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고자 마음먹고 금주를 하니, 술 마실 기회는 저절로 없어지고, 술 마시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술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안거 기간 동안 세 번 술을 마셨는데, 두 번은 한잔 정도 마시다 말았고, 한 번은 과하게 마셨다. 그리고 며칠 고생을 했다. 이제는 술과도 서서히 멀어질 시간이 온 거 같다.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저절로 형성된다. 호법 신장들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부와는 먼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악마들이 유혹을 하며 부추기기도 한다. 마음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안거를 마치며 얻은 것이 있는가?” 위파사나 수행에 대한 이해와 수행에 조금은 익숙해진 느낌은 든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돌이키면 수행 모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수행처에 들어가 안거 기간 동안 집중수행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꾸준히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덕분, 그리고 비록 짧은 안거 기간이지만 나름 규칙을 만들어 공부한 덕분에 수행할 수 있는 기초는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안거는 일상에서 하기가 쉽지 않다. 가능하면 수행처에 들어가 하는 것이 맞다. 이번처럼 하는 안거는 안거라기보다는 시간을 정해서 하는 일상 수행에 불과하다. 안거는 수행의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고, 수행은 지금부터 꾸준히 하면 된다. 일상 속 수행이 참다운 수행이다. 수행처에 들어가서 하는 안거가 훈련소에 해당된다면, 일상 속 수행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과 같다. 수행자가 아닌 일반 재가 신도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의미다.
그간 사마타 수행 위주로 공부해 왔었다. 간화선, 호흡명상 등은 모두 사마타 수행에 해당된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 위빠사나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는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호흡 명상은 사마타 수행이기도 하고 동시에 위빠사나 수행이 되기도 한다. 호흡을 집중의 대상으로 삼으면 사마타 수행이 된다. 호흡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알아차리고, 생각이 사라지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수행법은 위빠사나 수행이다. 또한 두 가지 수행 모두 아나빠나 사띠, 즉 호흡에 마음 챙기는 수행을 한 후에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아나빠나 사띠는 두 수행의 기초가 된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편으로 아나빠나 사띠를 하고, 그 이후에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 세 가지 수행법, 사마타, 위빠사나, 아나빠나 사띠는 모두 마음챙김이 그 기반이 된다. 마음챙김을 놓치거나 마음챙김이 없다면 어떤 수행도 참다운 수행이 아니다.
안거를 마친 지금부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까? 아나빠나 사띠와 자애명상을 꾸준히 수행할 생각이다. 생각이 많고 산만한 편이다. 이런 산만함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음이 아직 여유롭지 못하고 말라있다. 지혜와 자비 두 가지 중, 특히 자비심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는 불교 수행의 양 날개와 같다. 지혜만 갖추고 자비심이 없다면 차갑고 마른 지혜가 된다. 자비심만 있고 지혜가 없다면 어리석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애명상을 꾸준히 수행할 필요성을 많이 느꼈고 안거 후반기에는 자애명상을 함께 수행했다.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고 불편한 점이 있다. 기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직도 ‘나’라는 굴레,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문과 벽을 만들고 세워서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 그 벽을 허물어야 하지만 나만의 세상도 필요하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 수도 없지만, 사람들 속에서만 살고 싶지도 않다.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근데 아직 그 지혜가 부족하다. 언젠가는 벽을 허물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꾸준히 일상 속 수행을 이어갈 생각이다.
“과연 나는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가끔 아는 척을 하며 살아왔다. 특히 불교에 대해서 그렇다. 또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관해서 아는 척하며 살아왔다. 근데 점점 아는 것은 없어지고 모른다는 사실만 더 많이 느낀다. ‘모른다’ 보다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조금 아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 조금 안다고 누군가에게 아는 척하는 것은 마치 맹인이 다른 사람을 끌고 벼랑으로 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아는 것이 없으면 아는 척을 할 일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안다고 할 말도 없으니 불필요하고 부정확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가 된다. 입은 몸의 생존을 위해 먹는 데 쓰고, 귀를 할짝 열고 남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교만함이 많은 사람이다. 그 교만함을 제거해야 한다.
두서없이 동안거 해재 느낌을 쓰고 있다. 정리해서 쓰는 것보다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쓰고 싶어서 그냥 쓰고 있다. 해재를 했다고 해서 공부를 마친 것도 아니고, 입재를 안 한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상 속 나를 늘 지켜보며 마음챙김을 유지하고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루틴이 된 아침 수행을 꾸준히 이어가면 된다. 그간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주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공부가 이어지게끔 보호해 준 호법신장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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