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든 자리 난 자리

by 걷고 2025. 2. 1.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있을 때는 그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나타나지 않을 때 그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는 말이다. 어제 한강변을 걸으며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범일님 때문이다. 늘 뒤에서 오며 사진도 찍고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걷기 마친 후에는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올려주는 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참석한 길벗 대부분이 범일님 소식을 물어왔다. 어제 뿐만이 아니다. 1주일 전에 ‘1주년 기념행사’ 모임을 할 때도 그랬다. 렛고님, 포대님, 릿다님, 자스민님, 범일님 등 참석했으면 하는 분들이 각자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니 내심 조금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날도 빈자리의 공허함을 느끼며 마음 한 구석에 찬 바람을 맞았다. (혹시 여기에 거론되지 않아 서운한 길벗이 있다면 제게 연락 주세요. 서운함을 채워드릴게요.)     

 

리더로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열심히 참가해서 모임의 분위기를 편안하고 밝게 만들어 주고 참석자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길을 내밀어 주는 길벗이 보이지 않으면 서운한 것은 사실이다. 인지상정이다. 어떤 길벗은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다는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미안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동호회 모임은 개인적인 상황이 허락될 때 참석해서 즐겁게 보내면 되는 모임이지 어떤 의무감으로 참석하는 모임이 아니다. 만약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느낀다면 오랫동안 활동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시간이 나고 걷고 싶을 때 참석하면 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서운함이라기보다는 참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다. 기대이고 희망이다.    

  

모임이 있을 때 참석했으면 하는 길벗이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연락을 해서 부담감을 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지를 올리고, 참석하는 길벗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 외의 행동을 한다면 이는 월권이고 일종의 강요가 될 수도 있다. 글을 쓰면서 서운함 또는 기대가 생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보고 싶어서. 길벗과 함께 걸으며 쌓아놓은 추억이 있다. 추억은 함께 걸었던 길과 길벗을 떠올리며 보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 참석을 하지 않아 서운한 것이 아니고, 보고 싶어서 참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아직도 보고 싶은 사람과 그런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록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계속지니며 살고 싶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길벗이 보고 싶다. 1주년 기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길벗이 보고 싶다. 앞으로 참석하지 않을 길벗이 보고 싶다.      

 

어제는 길벗 대신 눈이 찾아왔다. 세상을 하얗게 만들면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눈으로 감싸주었다. 차가운 눈이 따뜻하다. 눈길을 걸으며 좋아하는 길벗의 모습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준다. 눈을 맞으며 한강변을 보고 싶은 길벗과 함께 걸으니 길은 짧아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커진다. 오는 사람 반기고, 오지 않은 사람을 보고 싶어 하며 계속 걷고 싶다. 

728x90

'걷고의 걷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이 나를 이끌어준다>  (0) 2025.02.03
<부끄럽지 않은 삶 - 어른 김장하>  (0) 2025.02.02
인생 4막  (0) 2025.01.31
연휴를 보내며  (0) 2025.01.28
< 슈퍼 에이저 (Super Agers )>  (0) 2025.01.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