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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인생 4막

by 걷고 2025. 1. 31.


처음에는 인생을 전후반, 2막으로 나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인생 3막을 생각했다. 결혼 전까지는 1막,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사회생활하는 삶이 인생 2막, 퇴직과 자녀들 결혼 마친 후부터 인생 3막이 시작된다. 어제 TV 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 3’와 ‘유퀴즈...’를 보며 인생 4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막과 2막은 결혼 전후로 나눠진다. 3막은 퇴직 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시기다. 그리고 4막에서는 이 모든 것을 버리는 작업을 하며 삶을 마무리한다. 내가 만든 나만의 기준이고 생각이다.

어제 ‘미스터 트롯 3’ 프로그램을 보며 인생 3막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유명한 전직 가수 이정 씨는 천록담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트로트에 도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트로트 가수로 재탄생했다. 연기자이자 뮤지컬 배우인 이지훈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트로트 가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또한 연기자 박광현 역시 연기자라는 자신의 과거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들의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과거의 자신을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0년 이상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데 일단 성공했다. 물론 한 번의 경연에서 상대방을 이겼다고 바로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절심함과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와 열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열정이 살아있는 한 그들의 꿈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의 멋진 인생 3막을 응원한다.

‘유퀴즈..’에는 연극배우 박근형 씨와 손숙 씨가 나왔다. 80대인 이 두 연기자는 아직도 연극 무대에 선다. 대본이 보이지 않아 딸이 녹음해 준 대본을 듣고 외우며 연습하는 손숙 씨. 앞으로 죽기 전까지 연극을 10편 정도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기에 마음이 바쁘다는 박근형 씨. 한 분야에서 거의 조상으로 모셔지는 이 두 분의 진지하고 진실된 삶의 태도와 노력, 그리고 열정을 보며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두 분이 요즘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는 작업이다. 사진을 정리하고 버렸다. 사진은 이들의 역사다. 더군다나 한국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 두 분의 사진은 그 자체로 연극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는데, 그 조차 의미 없다고 생각하며 없애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매우 열정적으로 살아온 이 두 분은 80대가 되면서 이제는 과거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고,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며 과거를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하는 과정과 삶과 죽음을 얘기하며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은 그냥 맞이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 눈 뜨고 일어나면 삶이 시작된 것이고, 일어나지 못하면 죽음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미스터 트롯 3에 나온 가수와 연기자가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인생 3막이 떠오른다. 인생 3막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고 방황하는 시점이다. 방황은 의미 없는 시간이 절대 아니다. 방황을 해야만 자신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봐야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안 후에야 비로소 갈 길을 알 수 있다. 인생 3막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무대 앞에서 마주치는 막막함과 불안감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절실함과 간절함 그리고 필사적인 노력이다. 더 늦기 전에 또는 죽기 전에라도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 비록 죽을 때까지 그 삶을 찾지 못하더라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과는 삶의 질이 크게 다르다. 삶은 양이나 기간이 아니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라는 삶의 질이 중요하다.

인생 4막은 두 연극배우의 말씀대로 과거를 버리고 삶의 지게도 벗어던지고 훌훌 가볍게 떠나는 삶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살아가는 삶이다. 스스로 자신의 족적을 지우는 경건한 삶의 태도를 보며 공수래공수거가 떠오른다. 마당을 쓰는데 앞으로 쓸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발자국을 빗자루로 지우며 뒷걸음으로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삶, 참 아름다운 흔적 없는 삶이다. 하지만 그 허공 속 날갯짓의 파문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육체의 소멸이 삶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육체는 시간이 지나며 모든 물건과 같이 저절로 소멸된다. 무상이다. 하지만 삶의 에너지와 족적은 자신의 주인공에게 또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 정신분석자인 에릭 에릭슨 (Erik Erikson)은 성격 발달 이론은 창시한 학자로 성격 발달 8가지 단계 이론을 만들었다. 7단계인 중장년기(약 40-65세) 시기에는 ‘생산성 vs 침체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생산성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묻혀 살아가거나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점이다. 마지막 단계인 8단계는 ‘자아통합 vs 절망’의 시기다. 약 65세 이후에 시작되는 이 시기에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며 자아 통합을 하거나 아니면 후회하며 절망하는 시기다. 죽음을 직면하며 지혜를 발달시키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시기다.

지금 나는 8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후회가 많은 삶이었다. 잘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어리석게 살아왔다. 그리고 약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며 살아왔다. 여전히 과거의 습이 남아있어 힘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짊어지고 갈 나의 삶이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는 예전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다. 인생 3막이 끝인 줄 알았는데 4막을 살고 있다. 때로는 후회하고 자책도 하고, 또 때로는 고마워하고 자신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명상을 마친 후에 자애명상을 15분 정도 하기 시작했다. 내게 가장 부족한 부분인 자비심과 사랑을 명상을 통해서라도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어서이다. 자아통합은 나와 다른 존재의 통합이다. 또한 삶과 죽음의 통합이기도 하다. 인생 4막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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