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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행복의 열쇠

by 걷고 2024. 8. 19.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다. 행복의 정의에는 파랑새나 꿈같은 단어가 없다. 오히려 무척 현실적인 ‘생활’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생활은 우리네 일상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 빅퍼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은 저절로 찾아온다고 한다. 즉 행복을 목표로 좇는다고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잘 살아가면 부산물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오르가슴과 발기부전에 대한 예를 들며 과정과 목적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 사랑을 하면, 즉 목적이 오르가슴이라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발기부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표현되며 사랑할 때 오르가슴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복을 목표로 이루기 위해 애쓴다면 행복은 찾을 수 없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행복은 저절로 다가오게 된다.

일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미 있는 삶을 찾고,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빅터 프랭클의 행복 이론이다. 니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날의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삶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같은 말이다. 주어진 일상과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일상을 또 주어진 삶을 수용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우리의 욕심 때문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이 되길 바라고, 주위 사람보다 좀 더 좋은 환경에 살고 싶고, 오늘의 불만족한 삶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욕심은 꿈을 좇게 만든다. 꿈은 허상이다. 하지만 허상이 반복되면 실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허상을 실상으로 착각하며 거기에 맞춰 살고 싶어 하며 안달한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삶은 지쳐가고, 사람은 피폐해지고, 삶의 의미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마음속에는 원망과 후회와 절망만 가득하게 된다.

허상이 반복되어 실상처럼 느껴지는 착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이 지점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착각에서 벗어나 허상을 허상이라고 알게 되고 느낄 때, 실상은 저절로 드러난다. 허상이 사라지고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이다. 사물의 실상을 착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여실지견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명상과 마음챙김, 이 두 가지를 꾸준히 수행하면 허상에 속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삶의 고통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허상에 속아 울고불고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 것을 발견하며 다시 후회를 하기도 한다. 또한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 일을 걱정하느라 현실을 사라지게 만들며 불안 속에 초조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명상을 하면 수많은 경험과 느낌, 감정, 생각들이 떠오른다. 평상시에도 늘 떠오르지만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느끼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명상을 하며 마음이 가라앉게 되면 그 떠오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명상한다고 앉아있으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명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지만, 실은 떠오른 것을 인식한 만큼 명상을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떠오른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다. 허상에 빠져 헤맬 필요가 없다. 이미 지난 과거 일이기에 바꿀 수도 없고,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그냥 알아차리고 명상의 대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때로는 미래의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미래의 불안감 역시 과거에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명상은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명상의 요체는 집중과 알아차림이다. 명상은 대상에 집중하는 집중명상으로 화두나 호흡명상이 등이 있고, 매 순간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는 통찰명상으로 대별될 수 있다.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의 주제로 돌아가 집중하면 된다. 알아차림은 사띠에서 나온 단어다. “midnfulness는 팔리어 사띠(sati)에 대한 영어 번역이다. 팔리어는 2,500년 전 불교 심리학의 언어이고, 마음챙김은 이 전통의 핵심 가르침이다. 사띠에는 알아차림 awareness, 주의 attention, 그리고 기억 remembering이라는 의미가 있다.”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2012) 알아차림은 매 순간 일어나는 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상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청소하고 알아차림을 통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일상의 경험을 과거의 경험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지금-여기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을 여실지견할 수 있게 된다. “순간순간 우리 내면에 심리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현상에 대한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고, 나아가 깊이 뿌리내린 믿음을 바꾸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우리의 모든 경험을 망치는 보편적인 불만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2018)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상황을 경험하며 상황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누군가가 자신에 대한 비난을 하면 바로 화를 내거나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한다. 비난 자체의 원인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도 습관적으로 밥을 입으로 넣는 행위를 하지, 맛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자신이 식사를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핸드폰을 보며 식사를 하기도 한다. 주된 행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수적인 행동을 하며 주된 행동을 잊고 살아간다. 이런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에 경고음을 울리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비난에 대해 화를 내기 전에 화가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린다면 화의 강도는 낮아진다. 식사할 때도 식사에 집중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알아차림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알아차림을 통해 반응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알아차림을 확립하겠다는 자신의 마음다짐이 필요할 뿐이다. 명상과 알아차림, 이 두 가지를 통해 과거나 미래의 삶이 아닌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과거와는 다른 반응을 하며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행복의 열쇠는 외부에 있지 않다. 자신의 내부에 있고, 그 열쇠를 돌리고 문을 여는 작업이 바로 명상과 알아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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