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햇볕은 따갑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습니다. 앵봉산과 봉산을 걷는 이 코스는 서울 둘레길 코스 중 난이도가 상급에 속하는 구간입니다. 산속을 걷는 코스여서 햇빛은 나무 그늘이 막아주지만 무더운 날씨까지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땀이 옷을 적시고, 땀이 난 만큼 물을 마십니다. 이 더운 날씨에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웃으며 걷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걷습니다.
꿈 얘기가 나왔습니다. 여성 회원들은 학창 시절 시험 보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문제를 다 풀고 답안지에 옮겨 적지 못한 상태에서 제출해야 하는 꿈 얘기도 나오고, 하필 자신이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 나와 애탔던 얘기도 나옵니다. 답안지에 옮겨 적는데 줄을 잘못 맞춰서 모든 답이 틀린 꿈 얘기도 나옵니다. 가끔 이런 꿈을 꾸시는 것으로 보아 공부를 무척 잘하신 분들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강박이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공부하듯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고 삶을 열심히 살아온 이 분들에게 삶 역시 공부처럼 잘 살아야 된다는 강박을 갖고 계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분들의 학창 시절에는 성공의 기준점은 시험성적이었을 겁니다. 좋은 시험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입사해서, 좋은 인연 만나 결혼하고, 자식들이 같은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성공을 위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성공의 기준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e 스포츠가 대세가 되고, 스포츠 스타가 많은 사람의 희망이 되고, 유튜버나 sns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성공의 기준 중 하나가 됩니다. 성공의 기준의 변화는 다양한 삶을 추구하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이 부의 축적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돈을 벌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점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다양한 수입원의 창출과 자본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점점 더 벌어지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이상한 사회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분리 현상도 나타나는 것 같고, 동시에 끼리끼리 문화는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포용의 세상이 아닌 배척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사회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과,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한 투쟁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 말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생각해 봅니다. 성공을 원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위해 불행한 짓을 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즉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짓밟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또한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유보한다면 과연 이것이 행복한 삶일까요?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유혹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행복을 만들어줄까요? 물론 경제적으로 너무 불편하다면 행복을 느낄 시간적 여유와 심리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은 모두 행복할까요? 또한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은 행복할까요? 성공한 삶, 즉 경제적 풍요로움과 권력과 명예를 지닌 사람은 모두 행복할까요? 삶의 어떤 부분은 편안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돈과 권력, 명예가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요즘 빅터 프랭클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의 자유와 선택권을 지니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고귀한 삶의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행복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잠시 나누는 따뜻한 대화를 통해 행복을 맛볼 수도 있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무지개나 노을을 보며 잠시 행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암 투병 속에서도 잠시 통증이 사라진 틈을 이용해 삶의 환희를 맛볼 수도 있고, 그런 환희의 힘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과 행복을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야만 한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주어진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행복을 추구한다면 평생 행복한 순간은 절대로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즐거움과 괴로움, 평화와 투쟁, 사랑과 미움 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이 중 한 면만 추구한다면 그것을 절대로 이룰 수도 없고, 그런 추구로 인한 에너지와 시간 낭비만 될 것입니다. 이 상반된 두 가지의 상존이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삶은 훨씬 더 수월해지고, 삶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중에도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하다면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없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노을을 보며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른다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늘 보던 노을이지만, 또 늘 떠오르는 노을이지만, 그 노을을 감상할 여유가 없을 뿐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잠시 찾아온 즐거움의 순간이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언제든지 찾아올 불행한 순간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과 불행이 우리네 삶을 몽땅 매몰시키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매몰당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고통 속을 헤매며 괴롭다고 소리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비록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가족의 웃음을 통해, 음악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배우고 있는 것이 바로 삶은 두 가지 상반된 것이 어우러진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즐거움만 추구한다면 이미 실패하게 됩니다. 괴로움 안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늘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삶의 양면을 이해하고 볼 수 있다면 삶은 늘 그렇듯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과 불행을 좇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냥 순간을 받아들이며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중도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중간이 중도가 아니고, 이 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체득하는 것이 중도의 체득입니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좋아하지도 않고, 불행하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행복만을 추구하느라 쓸데없이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창조적인 삶을 위해 사용하게 되며 삶은 매우 아름다워집니다.
무더위와 강한 햇빛 속에서 산길을 걸으며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행복하기도 합니다. 고통스러움에 매몰되지 않지만, 고통을 순간순간 느낍니다. 즐거운 대화와 가끔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행복에 매몰되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달래주는 웃음과 대화가 있고, 즐거움에 매몰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고통도 있습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수고한 자신을 위로하고, 함께 걸은 길벗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다시 햇볕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갑니다. 뜨거운 고통이 시작되지만, 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행복이 시작됩니다.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행복의 감사함을 알게 되고, 행복의 감사함 덕분에 고통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고통과 행복은 한 몸임을 알게 됩니다. 굳이 이 중 하나만을 추구하지 않을 지혜를 체득합니다. 뜨거운 날 힘든 길을 걸은 모든 길벗에게 감사를, 그리고 걸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준 앵봉산과 봉산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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