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게도 강단장님은 음악을 자주 보내 주신다. 보내 주시며 관심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한 얘깃거리도 함께 보내주신다. 음악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강단장님 덕분이다. 음악 일기를 쓰면서 음악을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음악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조금씩 음악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방식은 음악에 대한 관심을 더욱더 갖게 만들고, 관심은 좀 더 많은 시간 음악을 듣게 만들어서 서서히 음악 세계로 빠지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된다. 작곡자는 누구이고, 연주자는 누구이고, 이 음악은 작곡가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만든 곡인지에 관한 관심도 갖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작곡가의 곡에 빠져 그 작곡가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심을 갖는 것은 시작이고, 일기를 쓰며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은 음악 듣는 것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선 이어폰을 구입한 후 맨 처음 들은 음악이 전원 교향곡이다. 강단장은 이 음악을 산책하며 듣기에 좋은 음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올림픽 공원을 두 시간 정도 걸으며 무선 이어폰을 통해 이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다. 무선 이어폰이 주는 소리의 감동이 있다. 깊은 소리와 울림이 크다. 걸으며 음악에 맞춰 발 춤도 추고 손으로 날개 짓을 하기도 했다. 남이 보면 미친놈이라 할 만한 행동을 음악에 맞춰하며 걸었다. 저절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올라오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몸은 활기차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나의 이런 괴상한 행동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전원 교향곡하면 올림픽공원과 이어폰이 떠오를 것이고, 공원을 걸으며 몸짓을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공원을 걸을 때 이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음악은 추억이고 친구다. 이제 한 곡과 친구가 되었다. 걷기와 글쓰기가 친구이고, 게다가 음악이라는 길동무도 생겼다. 음악을 들으며 홀로 걸으면 홀로 걷는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든든한 길동무가 함께 걷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충만함을 느낀다. 혼자 걸으며 가끔 느꼈던 외로움은 음악이라는 길동무 덕분에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가끔 일부러 외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는 음악 없이 길을 걸으면 된다.
이 음악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이 음악을 틀어놓고 듣고 있다. 하지만 이 음악을 처음 구입한 무선 이어폰으로 처음 들었던 그때의 감흥을 다시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처음 듣는 음악의 감흥과 산책의 즐거움이 컸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안 하는 사람이 음악에 맞춰 몸짓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나에게는 무척 파격적인 행동이다. 처음 경험이 주는 강렬함은 무엇보다 강하다. 첫사랑의 경험도 그렇다. 지금 새롭게 사랑을 한다고 해도 첫사랑의 떨림을 다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게 전원 교향곡은 산책과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길동무다.
베토벤은 산책을 하며 작곡을 했다고 한다. 니체는 걷기 마니아로 산책한 후 책 한 권을 썼다고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특히 자연 속을 걸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산책은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다. 자신이라는 에고를 비워내면 그 안에 신이 선물이 들어온다. 자연을 통해 영감을 받고, 삼라만상을 통해 지혜를 얻고, 사람을 통해 연민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다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자신의 샘이 가득 차면 저절로 샘 주변으로 흘러넘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산책을 하며 자신을 비우고 음악을 들으면 음악은 자신이 된다. 음악이 따로 있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과 자신이 하나가 된다. 이때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 역시 음악과 음악을 듣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 자신의 에고를 버리고 나면 얻을 수 있는 큰 세상이 바로 ‘하나’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하나. 너의 아픔이 나의 것이 되고, 나의 행복이 너의 것이 되는 세상이다. 아름답다.
전원 교향곡은 시골 생활의 추억에 관한 작곡가의 감정을 표출한 음악이라고 한다.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각 악장에 대해서 표제가 붙어있다.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기분
2악장: 시냇가의 정경
3악장: 농부들의 축제
4악장: 뇌우, 폭풍
5악장: 폭풍 후의 기쁨과 감사
각 악장에서 작곡자가 표현한 내용과 내가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장면이 비슷한 구석이 제법 있다. 반드시 작곡가가 표현한 것을 그대로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상상과 맞아떨어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음악을 들을 때 미리 이 음악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찾아보지 않고 들을 생각이다. 그리고 몇 번 들어본 후 자료를 검색해서 나의 상상과 느낌, 그리고 작곡가가 표현하는 것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작업도 음악을 듣는 재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영화를 제법 많이 봤지만, 감독이 누군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보니 남는 것은 없고 겨우 줄거리만 조금 기억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시점에서 음악일기를 쓰기로 한 것은 참 잘 내린 결정이다. 만약 영화 보듯 음악을 듣는다면 수년이 지난 후에도 그냥 음악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사실과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간만 흘러갔을 것이다. 음악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음악을 들으면 음악에 관한 이해도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고, 단순한 취미가 삶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주 한 편씩 쓰기로 한 음악 일기는 계속해서 쓰고 싶다.
https://youtu.be/wXuD04dzw5U?si=SZ5vQLeKwolLisx2
'음악 문맹의 음악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로비츠 - 슈만 트로이메라이 (4) | 2024.01.30 |
---|---|
음악 문맹의 음악 일기 (2) | 2024.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