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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둘레길

걷기 동호회 예찬

by 걷고 2023. 7. 28.

60대 중반의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치매와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두려운 이유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가족 중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을 꼽는다면 아내와 딸 밖에 없다. 나로 인해 아내나 딸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요즘은 간병하기 힘든 가족들을 요양원에 보내는 추세다. 나도 그 방법을 선호한다. 만약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를 요양원에 보내기를 간곡히 원한다. 마음속에는 늘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남아있다. 죽는 순간까지 가능하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최근에 노년내과 전문의가 신문에 쓴 기사를 읽었다. ‘노년내과’라는 전공이 만들어질 정도로 노인 인구와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노년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함께 만들어 낸 성과다. 전문의는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신체적 활동을 통한 신체 근력 만들고 유지하기, 인지 근력 키우기, 그리고 사회 작용 즐겁게 하기. 노화에 따른 신체활동 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다지는 것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살면서 만들어진 또는 굳어진 사고의 틀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지 근력 키우는 방법이다. 뇌의 가소성은 비록 신체는 노화하지만 뇌는 죽을 때까지 계속 변화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취미나 일에 대한 도전, 자기 성찰을 통해 사고를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신체근력과 인지근력은 활발한 사회 작용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들 속에 또 사회 안에서 함께 어울리며 지내는 존재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에 맞는 사회 작용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즐거운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걷기 동호회인 '걷기 마당'에서 12년 간 활동을 하고 있다. 길을 함께 걷고 때로는 길 안내자로 활동하며 나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노년내과 전문의의 기사를 읽으며 그 의사가 강조하고 있는 세 가지를 걷기 동호회 활동을 통해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걸으며 신체 근력을 키우고 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 작용을 하고 있고, 동호회 활동을 하며 과거의 자신 속에 갇혀있지 않고 자신의 틀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길동무들을 만나며 사람들 생각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 가지 상황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 다르다. 다름을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전히 인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 이유 때문에 다투거나 마음 상하지 않게 된 것 자체도 큰 수확이다.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통해 자신의 틀 안에서만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우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고,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다 보니 좋은 일도 생기고 불편한 일도 생긴다. 좋은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즐기는 데 익숙하지 않고, 즐기면 어딘가 부족하고 가벼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제하며 살아온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면 기분 좋게 들으면 되는데 괜히 어색해하며 겸손이라는 가면을 쓰고 대한다. 칭찬과 좋은 말에 익숙하지 않고 어색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보며 굳이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불편한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불편한 마음이 나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게 버티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매우 소심한 사람으로 예전에는 사소한 불편함으로 인해 잠도 못 자고 화도 못 내며 전전긍긍하기만 했는데, 요즘은 크게 화가 나지도 않을뿐더러 불편함에 매몰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 그냥 할 일을 한다. 많은 것을 시간이 해결해 준다. 시간을 견디지 못해 힘들었는데, 시간을 견디는 근육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쉽게 마음이 흔들렸는데, 요즘에는 요동치는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고, 소심함과 옹졸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데 주저하지도 않는 편이다.      
 
 자신의 천성이나 기질 자체는 타고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아니다. 외부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거나 천성이나 기질을 다스리지 못해 자신과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자신을 잘 알게 되면 그 기질을 다스리며 조금씩 성숙한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다. 며칠 전 친구들과 편안한 술자리를 가졌다. 그중 한 친구의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안정적인 균형을 잘 이루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에게 부럽다는 얘기를 했다. 부러웠기에 부러웠다고 얘기했다. 또한 나의 소심함에 대한 얘기도 주저하지 않고 얘기했다. 나 자신이 친구와 같은 상황이 되지 못해서 안달이 나거나 괴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끔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그들이 나의 뜻을 곡해하는 불편한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 그 친구는 그 친구의 모습으로 살고 있고, 나는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산에 모든 나무의 모습이 결코 같을 수도 없고, 나무만 있다면 산이 될 수도 없다. 돌, 물, 바람, 꽃, 동물, 새, 사람들이 모여 산과 자연을 만든다. 그리고 돌이 물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꽃이 나무와 비교하거나, 더 예쁘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 노년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걷는 이유 한 가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바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걷는다는 것. 아직도 나 자신과 어떤 면은 매우 가까운 사이고, 어떤 면은 아직도 머나먼 당신이다. 나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함께 걷는 것이다. 함께 걸으면 타인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쳐준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실제의 ‘나’가 아니다. 자신이 ‘나’라고 만들어 놓은 ‘이미지 속의 나’ 일뿐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벗어버리는 작업이 ‘나’를 만나는 과정이고, 그 방법이 내게는 바로 걷기다.      

 “물리적인 죽음은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 준다.”라는 글을 어느 책을 읽으며 적어 놓았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삶은 훨씬 더 단순하고 가볍고 아름답고 풍요로울 것이다. ‘이미지 자기’가 더 이상 필요 없을 테니. 우리는 한평생 ‘이미지 자기’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가정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왔다면 남은 노년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권리와 자격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 방법으로 노년 내과 의사의 세 가지가 있고, 거기에 비교하지 않는 삶과 ‘이미지 자기’를 죽이고 ‘참 자기’로 살아가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이 다섯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걷기 동호회’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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