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304 - 20210307 33km
코스: 남한산성 외
누적거리: 3,35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길동무들과 남한산성을 걸었다. 산성역 2번 출구에서 만나 9-1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아침 10시에 만났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이 버스는 평일에는 어떻게 운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요일에는 산성역에서 남한산성까지 직통으로 운행하고 있다. 마치 전용 셔틀버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꼬불꼬불한 길을 곡예 운전을 하며 승객들을 이리저리 몰리게 만들기도 한다. 찻길 바로 아래는 절벽이다. 마치 예전의 대관령길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핸들을 정신없이 좌우로 꺾는다. 옛 추억이 떠오르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런 흔들림도 좋다.
버스 종점에 내려 남문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일부 구간은 길 정비를 위해 막아놓았고, 남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벌써 산성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돌계단도 많은 산성길은 특이하게도 계단의 높낮이가 다르고, 여러 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는 계단 하나도 평평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계단이 걷기는 조금 불편해도 정감이 간다. 서울 성곽길 일부는 찍어낸 계단을 붙인 것처럼 모양이 같고 높이도 같아서 정이 안 간다. 남한산성의 계단은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높이의 평평한 계단을 오르내리면 발이 쉽게 피곤해진다. 남한산성 계단은 발이 피곤할 틈이 없다. 신경 써서 걸어야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을 수 있다.
수원 화성에서도 느꼈던 것이 있는데, 화살을 쏠 수 있는 산성의 개구부의 경사가 하나는 급하고, 그 옆의 경사는 완만하다. 길동무 설명에 의하면 경사가 급한 곳은 산성 가까운 곳에 오르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곳이고, 완만한 곳은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곳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산성 중간중간에 옛날 초소가 세워져 있었던 자리도 보존해 놓았고, 포를 쏘던 포구도 보존해 놓았다. 길동무들과 걸으며 각자 갖고 있던 깊지 못한 남한산성 관련된 역사 지식을 서로 뽐내기도 했다. 그나마도 모르는 나는 입 다물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산성을 가거나, 아니면 어딘가를 걷는다면 사전에 그곳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공부해간 만큼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질 것이고,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걷는 재미도 좋을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을 걷기가 불편해서 조금 밑에 있는 흙 길을 걸었다. 걷는데 훨씬 편하다. 산성을 따라 걷는 재미도 좋지만, 성곽 조금 아래에 있는 산길을 걷는 재미도 좋다. 오히려 성곽 계단보다 산길에 인적이 적어서 우리끼리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걸은 후 벤치에 앉아서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끼리 각자 준비해 오는 물품들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뭘 준비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 친구는 장인이 만드는 단팥빵을 네 개 사서 들고 온다. 빵 한 개마다 부칙포 같은 포장지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한 친구는 네 개의 텀블러에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담아온다. 한 친구는 네 개의 귤과 에너지 바를 들고 오고, 나는 방울토마토를 들고 갔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은 그 자리에서 모두 해결한다. 이런 방식이 편안하다. 간단한 음식을 먹기 위해 자리를 펴고 음식물을 펼쳐서 수다를 떨며 먹는 과정이 은근히 불편하기도 한데, 이런 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산성이다. 성곽 길을 걸으면 마치 내가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오래된 돌을 보면 친근감이 들고, 마치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곽 길 걷는 것을 좋아한다. 성곽 위에 놓인 기와를 보면 더욱 마음이 편안하기도 하다. 옛 것이 주는 친근감과 편안함이 있다. 성곽 저 아래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분지 같은 곳에 모여 살고 있다.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그나마 성 외곽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마음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성 안에 사는 사람과 밖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지는 않았을까?
남문에서 시작해서 동문을 거쳐 북문으로 내려왔다. 북문에서 산성역까지 가는 성남 누비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산성역에서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코스지만, 북문에서 산성역으로 내려오는 길은 걷기에 편안한 길이다. 약 3.7km에 달하는 이 길은 산성과는 다른 느낌의 길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특히 가을에 낙엽을 밟으며 걷기에 아주 적합한 코스다. 올라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고, 하산 시에는 이 길을 걸어 내려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버스에 많은 사람들이 짐짝 실리듯 실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유유자적하게 휘파람을 불며 걸으면 그 재미는 더욱 클 것이다.
산성역에 도착해서 가락시장으로 이동했다. 걷고 그냥 마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회를 떠서 하산주를 마시며 3월 20일부터 21일까지 강진 가우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길 하나가 끝나면 다른 길이 시작된다. 끝은 시작이다. 그래서 인생은 여정이라고 했다. 목적지에 도달하거나 목표를 이루는 것이 삶이 아니고, 가는 과정이 삶이다. 걸으며 그런 진리를 조금씩 배우고 체득한다. 4월 일정도 어느 정도 결정했다. 4월에는 서울 둘레길 일부 구간도 가고, 의상대사 길을 갈 계획이다. 길동무들과 함께 서울의 이런저런 길도 걸을 것이고, 지방의 걷기 좋고 풍광 좋은 길도 걸을 것이다. 길동무 중 한 명의 버킷 리스트인 히말라야 트레킹도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있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고,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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