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입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걷기에 나오신 분들은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나오신 분들입니다. 순간의 결정일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 걸은 후에 느끼는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건강까지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매우 현명한 분들입니다. 모두 무더위를 잘 이겨내시고 더욱 건강하고 활기찬 나날을 보내시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안산의 인공폭포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무더위를 식혀줍니다.

홍제천에서 바람이 가끔 불어와 열심히 걷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줍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월드컵공원에 들어서며 침묵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걷던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늘 다니던 길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다른 길이 됩니다. 또 길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와 걷는지, 날씨가 어떤지,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같은 길도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길도 결코 같은 길을 없습니다. 일기일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걸은 길은 비록 그대로 있지만, 걸었던 추억만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같이 걷는 길동무들과 쌓은 추억이 더욱 고맙고 정겹습니다. 오늘 만남과 걸음을 다시는 반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일 같은 분들과 같은 길을 걸어도 오늘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겁니다. 한 순간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매 순간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만나는 분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되는 이유입니다.
월드컵경기장에는 축구 경기가 있는지 큰 함성이 들리고 장내 아나운서의 선동적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분들은 더위를 축구경기를 보며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만의 피서 방법입니다. 이열치열의 방편으로 경기장을 찾습니다. 그분들의 열정도 아름답습니다. 문화 비축기지에서 잠시 종소리 명상을 했습니다. 함성은 사라졌다 다시 들리기도 합니다. 다시 종소리에 집중합니다. 마지막 종소리를 듣고 있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이 스쳐가는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의 대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입니다. 물론 다른 방법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행하고 있는 명상은 종소리 명상으로 청각에 집중하는 명상법이고, 걷는 발의 감각에 집중하는 걷기 명상입니다. 가끔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을 느끼는 신체 촉감 명상을 하기도 합니다.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마칠 계획이었습니다. 경기장역에 도착하니 관중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참석자 분들에게 역이 붐빌 수 있으니 조금 더 걸어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걷자고 제안했습니다. 한 정거장 미리 타면 앉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흔쾌히 허락하시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한분은 역에서 바로 가셨고, 다른 분들은 저와 함께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걸었습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우산을 대부분 들고 오셨지만, 별로 소용이 없을 정도로 빗줄기가 세찼습니다. 결국 모두 비에 젖은 상태로 전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많이 죄송했습니다. 경기장역에서 헤어졌다면 비도 맞지 않고 편안하게 귀가하실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집까지 뛰어가며 온 몸이 비에 젖었습니다. 걷고 난 후에 뛰어가며 맞는 소나기는 시원했습니다. 요즘 딱히 마음에 맺힌 것이 없는데도 마음이 뻥 뚫린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도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한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비는 하늘이 제게 내린 벌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걷기 마칠 즈음 경기장에서 군중들이 몰려나와 디지털미디어시티엮가지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비가 내리지도 않았고, 모두 편안하고 안전하게 귀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정을 내렸는데, 이번에는 하늘이 제게 준엄한 벌칙으로 소나기를 내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순수하게 길동무들의 편안한 귀가를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혼자 디지털 미디어시티역까지 걸어가기 싫어서 마치 길동무들을 위한 결정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저를 위한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같은 행동이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사심이 들어간 것입니다. 같은 행동도 어떤 마음으로 행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그 벌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많이 후회했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에 만나면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며 송구한 마음을 표현할 생각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하나도 어긋남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인간의 욕심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변화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만들려고 안달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많은 것을 이루고 싶고,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기 위해 이미 이루어진 것을 뒤틀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설사 순간적으로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사 영원한 것이 없는 무상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지금의 권력이나 부귀나 명성도 세월이 지나면 무의미하게 됩니다. 오히려 과거의 권력과 부귀, 명성으로 인해 현재가 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에 맞게만 살면 되는데 욕심으로 인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오늘 역시 같은 경우입니다. 늘 하듯이 혼자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서 귀가하면 되는데, 괜히 혼자 가기 싫어서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입힌 결과가 된 것입니다.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언행과 하거나 결정을 내리기 전 제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보며 결정을 내려야겠습니다. 혹시나 개인적인 사심이나 욕심을 겉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자신의 감시인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이 제게 ‘요놈!! 벌 받아랏!!’하고 내리신 소나기는 저를 위한 매우 친절한 배려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그런 엉뚱하고 못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간절한 경책의 말씀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석하신 분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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