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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53]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by 걷고 2022. 4. 2.

  함께 공부하는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다. 일반 서적보다 영성과 마음공부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나누고 느낌을 글로 정리하는 모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오고 있었다. 어떤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책,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각 단계별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추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강남 비교 종교학 명예교수가 십우도와 각 단계별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성소은 님께서 각 단계와 관련된 서적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계별로 두세 권의 책들을 추천, 총 27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읽었던 책도 있고, 제목조차 생소한 책도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책들을 읽으며 느낌과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 책을 정독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주제도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책이 발간된 후 독서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    

   

십우도(十牛圖)는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 불교의 깨달음을 10 단계로 나누어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불화이다. 사찰에 가면 벽화로 많이 그려져 있어서 누구나 쉽게  그림을 찾을  수 있다. 각 단계마다 명칭이 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심우(尋牛)이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나는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가 입전수수(入廛垂手)단계로 깨달음을 얻은 후 시장 속으로 돌아와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이다. 모든 종교의 목적은 자신을 밝힌 후 눈이 어두운 중생들에게 빛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깨닫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는 것은 진정한 종교나 수행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참다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방편과 법문을 펼 수밖에 없다. 만약 중생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며 깨달았다고 얘기를 한다면 이는 자신과 중생들을 속이는 일이다. 이는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잘못 안내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마치 장님이 다른 장님을 이끌고 절벽 위 좁은 길을 걷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심우는 답답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일상 속에서 특별한 문제가 고통이 없음에도 늘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어딘가 불편하며, 지금 살고 있는 방법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갈증이 생긴다. 이 갈증이 답답함으로 느껴지며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다양한 방편들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편안함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다시 원래의 불편함으로 되돌아오거나  불편함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이런 반복된 과정을 거치며 지치기도 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은 더욱 커진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고(苦)’는  ‘편안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서 있는 것이 힘들어지면 앉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앉아있는 것도 금방 싫증이 나며 눕고 싶어 한다. 눕는 상태가 지속되면 다시 불편해지며 걷고 싶어 한다. ‘편안하지 못한 상태’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 환경, 조건들을 지니고 있어도 금방 싫증을 내며 다른 것을 추구한다. 몸과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고,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통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불편함이다. 괴로움은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면서 발생하는 이차적인 고통이다. 전자를 첫 번째 화살이라고 할 수 있다면, 후자는 두 번째 화살이 된다. 화살을 맞은 사람은 빨리 화살을 빼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누가 왜 화살을 자신에게 쏘았는지, 화살의 제조 방법과 독의 성분을 무엇인지 등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며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십우도를 주제로 단계별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모두 삶 속에서 힘든 순간들을 맞이한다. 어떤 사람들은 빨리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상황에 압도되어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27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낼 수도 있고, 모인 사람들과 느낌을 나누며 우리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고 살아간다는 보편성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임의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지만, 명상, 나누기, 걷기와 글쓰기 등을 접목한 방법으로 진행하고 싶다. 시작 전과 후에 호흡 명상을 각 10분씩 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지금-여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 읽었던 내용 중 기억에 남은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서로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집단상담 형식으로 진행하고 싶다. 두 시간의 모임이 끝난 후에 한 시간 정도 주변 길을 함께 걸으며 몸을 이완하고 걷기에 집중할 수 있는 걷기 명상법을 안내하고 싶다. 약 20분 정도 침묵 걷기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각자 귀가 후 읽고 나눴던 얘기,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 걸으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 쓰는 습관을 들인다. 말하고, 듣고, 걷고, 생각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또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이  자신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두세 시간 산책을 하며 회원 간의 친목 도모와 걷기를 통한 심신의 건강 회복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런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1년 후부터 독서 모임을 시작해 볼 생각이다. 모임의 이름을 가칭 ‘명독보감(瞑讀步感)’으로 정했다. 명상의 ‘명’, 독서의 ‘독’, 걷기를 뜻하는 ‘보’, 느낌을 정리하는 ‘감’의 앞 글자를 모아 만든 제목이다. 명심보감 흉내를 내 본 것이다.    

  

 저자가 표현한 ‘세속적 수행공동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종교 단체 나름대로  신도 교육과 봉사활동, 수행자는 수행자로서 삶을 잘 살고 있고, 신자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양한 종교와 수많은 수행자, 종교인들이 있음에도 사회는 그다지 변화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다. 종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종교를 믿고 따르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믿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종교 단체 내에서의 행동과 일상 속 행동과의 일치성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르침이 체화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아는 종교와 실천하는 종교는 다르다. 아는 종교는 죽은 종교이고, 실천하는 종교는 살아있는 종교이다. 부처님 말씀이나, 예수님 말씀이나, 어느 종교의 창시자의 말씀 중 서로 배치되는 말씀은 단연코 없다. 모두 사랑과 선(善)한 행동을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 ‘세속적 수행 공동체’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 신뢰감, 건강함이 느껴진다. 굳이 종교라는 것이 없이도 각자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또 세속적인 삶 속에서도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또한 매우 바람직한 세상이 될 것이다. 책 내용에 의하면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 모임이 이런 사회 공동체로 발전될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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