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20309 - 20220311 41km
코스: 서울 둘레길 앵봉산 구간 외 (증산역 - 봉산 - 앵봉산 - 구파발역)
평균 속도: 1.3km/h
누적거리: 6.26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이 있다.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끔은 마음공부에 관한 얘기를 하기도 한다. 또 걷기를 마친 후 함께 소주 한 잔을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그에 비해 홀로 걷기는 즐거움보다는 한가로움, 편안함, 여유로움 등이 있다. 함께 걸으면 길동무들에 대한 신경을 쓰기도 하고, 코스의 변경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시작과 종료지점을 지켜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물론 그런 번거로움은 걷기를 빨리 끝내려는 게으름을 방지하는 좋은 측면도 있다. 반면 홀로 걷기는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코스 변경을 언제든 할 수도 있고, 끝내고 싶을 때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 친구가 홀로 걷는 것이 외롭지 않으냐고 연락했다. 이제 외로움은 별로 느끼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연락해서 염려해 주는 마음은 고맙게 느껴진다.
홀로 걷다 보니 늘 집 주변의 편한 길과 공원등 평지를 주로 걷는 편이다. 건강을 위해 걸으면서도 힘든 코스는 피하려는 안일한 심리가 있다. 숨이 찰 정도로 걷는 것이 건강에 좋을 텐데 늘 편안한 코스만 걷게 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조금 힘든 코스를 걸을 생각으로 서울 둘레길을 혼자 다시 걷기로 했다. 걷기를 하든지 등산을 하든지 빨리 정한 코스를 마치고 내려와야 편안해지는 편이다.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걸었다. 평상시 걸음으로는 세 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서울 둘레길 앵봉산 코스를 3시간 40분 정도 걸려 걸었다. 그만큼 천천히 여유롭게 걸었다. 가끔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 바라보기도 했고, 빨라지는 걸음걸이를 늦춰서 걷기도 했다. 천천히 걸으니 오르막길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같은 길을 걸어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힘들게 걸을 수도 있다.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이다. 먼 길을 가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급히 서두르면 지쳐서 끝까지 걸을 수가 없다.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연습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최근에 동참한 ‘책 읽기를 통한 마음치료’ 모임에서 선정한 책 ‘광야에 선 인간’을 읽었다. 다음 주 모임에서는 이 책을 통한 나누기를 할 예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성경과 불경, 예수님 말씀과 부처님 말씀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본성, 불성, 진아’로 바꿔서 읽으면 그대로 뜻이 통한다. 또 다른 한 가지 생각은 모든 종교가 안내하는 길은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태어남을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삶을 통해서 정제된다. 마치 용광로에 잡철을 넣어 녹여 순도 높은 강철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힘든 상황은 종교를 찾게 되고 의지처를 찾게 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괴로움의 원인이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자기를 버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진리도 깨닫게 된다. ‘자기를 버림’의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한 것이 바로 성경이고 불경이다. 수많은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결론은 단 한 가지, 편안한 삶에 이르는 방법론을 얘기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자기를 버림’으로써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고, 불경에서는 ‘무아의 체득‘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고(苦)’는 ‘dukkh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단어다. 'dukkha'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대말인 ‘sukkha'를 알아야 한다. ’sukkha'는 수레바퀴가 축에 잘 들어맞는 것을 의미하고, ‘dukkah'는 수레바퀴가 축에 잘 들어맞지 않아서 어딘가 불편한 상태를 의미한다. 몸을 지니고 있기에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아무리 편안한 상태도 오래 지속되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삶은 dukkha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 쓰는 단어인 ’ 행복‘ 역시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더 이상 ’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싫증 나게 되어있다. 삶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괴로움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며,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된다.
삶이라는 과정을 책에서는 ‘광야’로 표현하고, 불교에서는 ‘고해(苦海)로 표현하고 있다. 험난한 광야 역시 넘어야 할 곳이고, 고해 역시 건너야 할 바다이다. 광야나 고해는 우리가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 자아‘를 버림으로써만 건널 수 있다. 우리가 ’ 자아‘라고 믿고 지키려고 하는 것이 ’ 가아(假我)‘, 측 ’ 거짓 자기‘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바로 광야를 건너는 순간이고,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가는 순간이다. ’ 거짓 자기‘를 인정하며 매 순간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의 주인이 ’ 참 자기‘가 아닌 ’ 거짓 자기‘임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중요한 사실의 자각과 꾸준한 연습 밖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한 광야에서 존재 자체가 거듭나는 과정을 충실히 걷고,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새로이 어떤 광야가 밀려온다 해도 반항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보살핌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저세상에서는 충만함을 누리고 이 세상에서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본문 중에서, 광야에 선 인간)
‘거짓 자기’를 버리는 연습을 통해서 ‘새로운 자기’로 태어날 수 있다. 불교에서 수행을 ‘익은 것 설익게 만들고, 설익은 것 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익숙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수행이라는 의미다. 책에서는 ‘익숙한 관습과 안주하던 세계를 버려야만 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같은 말이다.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심한 저항과 부적응에 따른 대가를 치루기도 한다. 이 과정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는 믿음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부처님 말씀과 예수님 말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으면 힘든 과정을 넘을 수 있을 것이고, 없다면 포기하게 될 것이다. 모든 종교가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저절로 드러났다. 믿음을 바탕으로 기존의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연습만이 우리가 광야와 고해를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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