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1220 - 20211223 22km
코스: 마포역에서 월드컵공원 외
평균 속도: 5km/h
누적거리: 5,70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젯밤에 TV 오디션 프로그램인 ‘내일은 국민가수’의 결승전을 시청했다. 최종 톱 7 멤버들이 ‘인생 곡 미션’을 부르며 마지막 무대에서 혼신의 힘으로 노래를 토해냈다. 어떤 참가자는 노래가 끝난 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기진맥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사위원, 방청객, 대국민 문자투표, 그간의 온라인 조회수 등을 종합해서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가수나 예능인, 프로 운동선수 등은 국민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런 면에서 대국민을 상대로 실시하는 문자투표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가인 심사위원의 점수도 의미가 있지만, 사람마다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좋아하는 기호가 다르기에 그들의 판단이 우선시되는 것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눈높이 수준을 국민에게 맞추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트로트 프로그램도 많이 봤고, 최근에는 국악과 현대 음악을 접목시킨 오디션 프로그램도 즐겨봤다. 음악을 잘 모르고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유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바로 참가자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우승자로 확정된 박창근 님은 23년간 무명 가수로 활동해왔고,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는 금액을 떠나 참석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참가자들도 오랜 기간 무명 시절을 견뎌냈고, 자신의 이름과 노래를 알리기 위해 참가했다. 노래를 포기하지 못하거나 일순간 포기한 후 잊지 못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참가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걷고 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기 내어 무대 위해 선 용감한 사람들이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바친다.
어제 불렀던 ‘인생 곡’의 대부분은 가족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힘들게 아들의 길을 묵묵히 응원해주신 부모님과 가족에게 바치는 노래를 불러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비록 무명이지만 프로 가수답게 끝까지 성공리에 마쳤다. 그들 뒤에는 묵묵히 응원해주고 격려해 주는 가족들이나 같이 음악을 해온 친구들이 있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무명 가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수모와 억울함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고깃집에서 숯불을 나르는 알바를 한 가수는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을 포함해서 모든 참가자들은 자신의 길을 지키고, 유지하고 가기 위해 엄청난 시련을 견뎌 낸 인생 승리자들이다. 특히 자신과의 싸움과 힘든 경쟁을 이겨내고 톱 7에 오른 이들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고, 국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수들이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참가자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마음을 다지게 된다. 그들은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30년 이상 무명가수로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음악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다른 힘든 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오직 음악을 할 때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음악을 위해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비장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친 장수들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치열하고 서럽고 두려울 수도 있다. 뒤로 돌아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버티고 싸운다. 비겁하고 싶지만 비겁할 수조차도 없다. 비겁은 바로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삶은 ‘죽음 아니면 삶’ 두 가지로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이 가슴 아리도록 서럽고 슬프게 느껴진다. 등수를 떠나서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결코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꼭 해 드리고 싶다.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을 버티고 견디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의 승부가 결정된다. 99%의 노력은 남은 1%의 노력이 더해질 때만 의미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과연 나는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본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다!’였다. 나는 그들만큼 목숨 걸고 죽음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살아오지 못했다. 가끔은 비겁해서 도망가기도 했고, 싫어서 숨기도 했으며, 귀찮아서 무시하기도 했고,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술에 의존하기도 했었다. 나이는 들어가고, 체력을 떨어지고, 할 일은 없어진 상태에서 다행스럽게 걷기, 글쓰기와 독서라는 세 가지 지푸라기를 움켜쥘 수 있었다. 무명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보다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갈증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난 역시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세 가지의 지푸라기가 감로수가 되었다.

일단 갈증이 채워지면 다른 욕심이 올라온다. 가수들은 자신의 모습과 노래를 알리고 함께 나누길 원하게 된다. 이는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해서 삶 속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갈증을 달래며 동시에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다. 수행자들에게도 명예심을 버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명예나 사랑은 버릴 것이 아니라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무명가수들은 하고 싶어 하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다. 나 역시 잡고 있는 지푸라기를 삶의 불씨로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꾸준히 걷고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몇 번 출간 프로젝트에 출품해서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도 이 일을 꾸준히 할 것이다. 그 외에 할 일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이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무명가수들이 무명으로 오랜 기간 살아가듯 무명작가로 살아가면 된다. 박창근 님이 우승을 하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듯이, 나 역시 유명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박창근 님에게 찾아온 우승의 기회는 살아온 삶의 부산물이자 보상이다. 매일 걷고 독서하고 글 쓰는 것도 언젠가는 부산물과 보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치열함’이다. 무명 가수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나의 삶은 그들에 치열함에 비하면 사치나 아니면 어린애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글 하나 쓰더라도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써야 한다. 길을 걷고 있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과 하나가 되지 않는다. 책을 읽더라도 책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걷기, 글쓰기, 독서가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삶이 그들처럼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들은 가수이기에 노래는 그들 자신이다. 나는 무명작가이기에 글이 나의 자신이 되고, 무명 걷기 안내자이기에 걷기가 나의 자신이 되고, 독서는 이 두 가지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이 세 가지가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그들의 말 없는 가르침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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