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03] 라떼는 말이야

by 걷고 2021. 12. 2.

날짜와 거리: 20211129 - 20211201 31km
코스: 마포역에서 옥수역까지
평균 속도: 5.4 km/h
누적거리: 5,51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https://m.tranggle.com/istory/myviewer/story/post_id/329158/20219732605?tp=pcno 

 

[트랭글]에서 걷고1 님의 활동을 확인하세요.

#트랭글 #운동 #마포역에서옥수역gpx #걷고1 #마포역에서옥수역gpx #걷고1

m.tranggle.com

올해도 거의 저물어간다. 한 달이라는 세월이 예전의 일주일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월을 탓할 수도 없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만 볼 수도 없다. 이제 세월의 흐름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따라서 나이 들어감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무뎌질 것이다. 나이를 의식하는 것은 혈압 수치에 목매달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나이’ 나 ‘혈압’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물론 나이 들어감에 따른 성숙함도 필요하고 혈압 수치를 보며 건강 관리를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나이와 혈압의 수치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나이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들어간다. 세월을 거꾸로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살아가자. 혈압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 먹고 운동하며 건강관리의 좋은 방편으로 생각하자. 그러니 혈압이 조금 높다고 열 올릴 필요도 없고 어쩌나 정상 혈압이 나왔다고 춤추고 노래할 일도 아니다. 세월은 세월대로 흘러가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젯밤에 한강변을 길동무들과 함께 걸었다. 마포역에서 옥수역까지 10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가끔 빨리 걷는 것도 좋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지만 빠르게 걸으면 몸에 열이 나서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추위를 의식하면 할수록 추위에 눌리게 된다. 추위는 그저 날씨의 한 가지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나대로 활동하면 추위가 내 안에 들어설 공간이 없어진다. 자연은 자연의 역할을 나는 나의 역할을 하면 된다. 가끔 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것도 좋다. 추운 날씨에 나갈까 말까 하는 고민의 시간이 날씨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켜준다. 추위를 온몸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도 있고, 추위 때문에 외출을 고민했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도 있게 된다. 추위는 자각의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한강변의 고요함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가끔 보이는 마라톤 하는 사람들과 걷는 사람들을 보며 동지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 역시 날씨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씩씩한 사람들이다. 특히 겨울에 한강변을 걸으면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가끔 들리는 자동차의 소음은 한강변의 적막에 묻혀 저절로 자취를 감춘다. 오히려 자동차 소리는 가끔 나를 깨워주기도 한다. 눈길로 인해 미끄러운 겨울에도 한강변은 비교적 안전하다. 햇빛이 낮에 눈을 녹여주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로등이나 화장실 등 길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추운 겨울날 걷기에 아주 적합한 길이다.

어제 앞장서서 걷고 있는데 뒤에서 두 분이 즐겁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재미있는 얘기라서 귀를 기울여 듣는다. 사회 초년기 시절 연말에 고향집에 내려가려고 힘들게 기차표를 구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쓰리’를 당했다. 오랜만에 들어 본 단어 ‘쓰리’는 요즘 말로 ‘소매치기’이다.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소매치기를 알려주었고, 오직 집에 가야만 된다는 일념으로 소매치기에게 달려가 ‘제발 기차표만 돌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소매치기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공중전화로 훔친 지갑을 들고 오라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 후 기차표를 돌려주었다. 소매치기는 그 여성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해서 ‘부산’이라고 했더니 자신도 부산이라며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소매치기도 여유가 있고 인간미(?)가 넘쳐났던 시기였나 보다. 그녀는 기차표를 받자마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넙죽 인사를 하고 안전(?)하게 고향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주위에서 그 얘기를 듣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라고 했으나 소매치기가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 아닌 부탁을 했으므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밀을 밝힌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여성분은 학생 시절 자신의 책가방을 버스 안에서 받아 들어주더니 몰래 수첩을 빼서 전화 번호를 파악하고 전화를 했다는 고교시절의 풋풋한 로맨스를 얘기하며 웃는다. 그 당시에는 버스 안에서 다른 학생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이 예의였다. 지금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가방을 들어준다고 선의를 베풀면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볼 것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두 사람은 예전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친구 부모님께 큰 절 하던 풍속도 사라졌고, 나이 든 사람들이 지나가면 담배를 끄던 풍속도 사라졌다. 요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다시 읽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면서 또는 최가의 식솔로 머물면서도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천성이 달라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주변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기뻐하며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간도로 이주해서도 동족과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동지 의식으로 똘똘 뭉쳐 척박한 땅 위에서 생존을 위해 또 생활을 위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혼자 낯선 이국에서 살아간다면 아마 외로움으로 인해 쉽게 지치고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추위 속에서 한강변을 걸으며 다시금 ‘함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혼자 걸었더라면 중간에 포기하고 일찍 귀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걸었기에 10km를 야밤에 걸을 수 있었다. 날씨는 추워지고 코로나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로 아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걷기 마당’은 참 좋은 곳이다. 함께 또 따로 걸을 수 있는 걷기 동호회 ‘걷기 마당’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길동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길동무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