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00217 12km
코스: 문화 비축기지 – 메타세쿼이아 길 – 노을공원 주변 – 한강변 – 월드컵공원
누적거리: 3,22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점심 식사 후 걷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영하 8도의 추운 날씨에 바람이 제법 많이 부는 추운 날씨지만, 옷을 잘 챙겨 입고 나가니 찬바람이 오히려 상쾌하다. 마스크도 입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다,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기로 했다. 추운 날씨에 일부러 그늘진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 밝은 햇빛을 쬐며 걸으면 몸도 마음도 따라서 밝아진다. 한강변의 바람은 소리로 위세를 떨치고, 그다음 바람으로 힘을 과시한다. 그렇지만, 바람 소리와 바람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내게 그 힘은 스스로 무력해진다. 소리와 한기에 위축되면 이놈들이 힘을 발휘하지만, 그들은 그저 그들일 뿐 하며 걸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모두 마음작용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 일어나는 것은 결과이지만,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또 다른 원인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더 중요한 과정이다. 결과로써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과거의 업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대로 지켜보려고 노력하라.” (수행과 지혜 본문 중)
마음공부를 하며 이런 책을 만난 것은 참 소중한 인연이다. 물론 인연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스스로 찾고 노력해야 거기에 맞는 인연이 찾아온다. 그런 면에서 인연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10년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10년간 스승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 마음공부에 더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공부하다 독선에 빠지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승을 찾겠다는 마음은 이미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런 마음에서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올라오게 되어 있다. 10년의 방황 기간을 통해서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에, 스승을 만나는 순간 쉽게 물들고 채워질 수 있다. 그래서, 스승을 찾기 위해서는 찾고자 하는 발원을 하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만 한다.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과 인연이 된 것 역시 찾으려는 노력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책이 그다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내게는 아주 천금 같은 소중한 말씀이 담겨있는 감로수와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 읽거나 아니면 눈에 띄지도 않을 책이 내게는 나의 눈을 열리게 해 주는 소중한 책이 되었다. 위에 인용한 글은 고엥카 센터에서 들었던 샹카라(行)를 아주 쉽게 말로 설명하고 있다. 샹카라가 과(果)이자 다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설명해 놓았다. 어떤 명상 센터에서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지도하든 결국은 같은 원칙으로 공부하고, 한 길을 향하고 있다. 마음공부의 원리, 삶의 철칙,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의 방법, 삶 속에서 평온을 누리며 사는 방법 등을 얘기하고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사람에 맞는 루트를 알려주는 것이다. 정상에서 보면 각 루트를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고, 무엇이 필요한 지점인지 잘 알고 있기에 스승은 안내와 지도를 개인 맞춤형으로 할 수 있다.
며칠 전 담마 코리아에서 최근에 발간된 책, ‘고엥카의 위파사나 명상 2’로 부제는 ‘평정심으로 맞는 죽음의 기술’을 소개받았다. ‘수행과 지혜’라는 책을 읽은 후 위빠사나 책을 서가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 귀한 책을 소개받은 것도 귀한 인연이다. 그간 한 대상에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을 해왔는데, 이번에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위빠사나 수행에 불을 붙여준 것이다 귀한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지켜만 보라’는 말씀과 ‘현재 일어나는 것은 결과이지만,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또 다른 원인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는 같은 말이다. 일어난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하는 것 자체가 바로 탐욕이다. 그 탐욕이 바로 다른 원인으로 형성되어 심층 의식에 쌓이게 된다. 그래서, 일어난 일은 그저 바라볼 뿐, 어떤 작위적인 노력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면 그 업은 힘을 잃게 된다. 하지만,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애쓰는 순간, 그 업은 오히려 힘이 강해지고, 그 강해진 힘이 다시 심층 의식에 쌓이게 된다. 유식에서는 외부 상황으로 자극을 받게 되면, 그 자극이 심층 의식에 쌓여있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 상념, 이미지들을 불러일으켜 지금 받고 있는 자극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보면 그 힘은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과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게 되며 다른 업이 쌓이지 않게 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무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의식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장 심오한 의식은 인식의 오류에 의해 절대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마음은 늘 개념 분별과 인식의 오류의 영향을 받는다.” (달라이 라마, 명상을 말하다)
'걷고의 걷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고의 걷기 일기 0178] 수원 화성 성곽 길 (0) | 2021.02.21 |
---|---|
[걷고의 걷기 일기 0177] 일상이 기적이다 (0) | 2021.02.19 |
[걷고의 걷기 일기 0175] 마음공부 (0) | 2021.02.17 |
[걷고의 걷기 일기 0174] 보현(普賢) (0) | 2021.02.15 |
[걷고의 걷기 일기 0173] 원고 수정 (0) | 2021.0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