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203120 11km
코스: 북한산 영봉
평균 속도: 1.9km/h
누적거리: 6.34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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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영봉을 찾았다. 걷기 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걷는 날이다. 늘 둘레길 위주로 걷다가 산을 오르니 느낌이 다르다. 언젠가부터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면서 점점 더 편안한 길만 찾아 나선다. 그리고 늘 다니던 길만 걷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늘 길은 하나의 도전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하는 것은 도전이자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불과 600m 정도의 산을 오르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북한산을 놀이터 삼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우습게 들릴 수도 있고 무슨 호들갑을 떠느냐고 일침을 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판단과 비난, 평가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어버렸기에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왜 오늘 길을 나섰을까? 생키미님이 길 안내하는 북한산 길에 신청해서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바위를 무서워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고, 또 다른 이유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길동무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언젠가부터 바위가 무섭게 느껴졌다. 등산로에 있는 바위는 대부분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거나 밧줄을 잡고 오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았다. 핸드레일이나 밧줄을 잡고 오르면 되는데 괜한 두려움이 앞선다. 암벽을 타는 것도 아니고 바위를 맨손으로 오르는 것도 아님에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바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바위를 대하는 내면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비록 두렵긴 하지만, 두려움 속에 움츠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바위의 난간과 밧줄을 잡고 올랐던 바위 길은 큰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작은 도전이지만, 큰 성취를 이루었다. 물론 그렇다고 바위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아있지만, 오늘의 작은 성취가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길동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오늘 도전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던 이유도 길동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홀로 걸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길동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길동무들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고, 오늘 무사히 도전을 마칠 수 있었다. 걷기 동호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하면서 만난 길동무들은 마치 오래된 술처럼 그 맛이 깊고 진하다. 굳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챙겨주고 아껴주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도 느낄 수 있다. 걷기 동호회 여러 군데를 다니며 좋아하는 코스만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굳이 그들에 대한 어떤 평가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안정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걷기 마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만나면 괜히 더 정이가고 반갑고 고맙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사람들이 참석하는 길에 동참해서 함께 걸으며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누고, 소주도 한 잔 나누며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원래 계획했던 두 가지 목적은 매우 훌륭하게 성취할 수 있었다. 오늘 길이 더욱 즐거웠던 이유는 자연이 주는 선물 때문이다. 시내에는 잔설조차 볼 수 없었는데, 산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다. 날씨가 푸근해서 눈이 녹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법 미끄럽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조심스러움보다는 아름다운 설경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기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영봉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눈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또 나무에 쌓인 눈을 보며 올해의 마지막 눈길을 걸었다. 정상까지 가는 길목의 바위 위에서 바라본 산세는 위용을 자랑하면서도 우리를 포용하고 있다. 위용과 포용이 공존하는 자연이다. 위용은 우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호연지기를 키워준다. 바위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고 힘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늘 산에 오르면 빨리 내려와야 마음이 편안한 편이다. 길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길을 즐기고, 길 위에서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연습과 도전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전 답사를 다녀오시고 오늘 길을 안내해 주신 생키미님께 감사드린다. 오랜만에 만난 구륾님께 반가운 인사를 전한다. 최근 자주 길에서 만나 즐겁게 걷는 가연님을 만나니 반가움이 크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언행으로 늘 기쁨과 놀람을 선물하시는 즐길락님을 오랜만에 만나니 술맛이 참 좋다. 산길을 다람쥐처럼 편안하게 걷고 길을 즐기고 있는 뿡뿌이님께 반갑다는 인사를 드린다. 하산한 후에 뒤풀이를 하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얘기를 하든 즐거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의 주제나 흐름 자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로 얼굴 보고 음식 먹으며 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7시에 문을 닫는 식당이 야속하다. 오랜만에 술맛이 좋았는데, 아쉽다. 커피숍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대화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마치 길을 걸을 때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걷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의 걷기와 대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이유이다. 오랫동안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 우리가 함께 걷는 이유이다. 오늘을 선물해 준 자연과 길동무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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