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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84] 지리산 둘레길 🍎6일 차 7코스

by 걷고 2021. 10. 10.

날짜와 거리: 20210929 12km
코스: 성심원에서 운리
평균 속도: 2.3km/h
누적거리: 5,04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https://m.tranggle.com/istory/myviewer/story/post_id/301315/20217871730?tp=p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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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비가 제법 내렸다. 오늘도  비가 예보되어 있다. 오늘 오르는 운석봉 길은 지리산 둘레길 중 난도가 높은 길이다. 비 오는 것이 신경 쓰인다. 물론 비를 맞으며 걸을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비 맞고 걷는 것이 그다지 편안하지만은 않다. 우비를 쓰거나 방수 점퍼를 입거나 우산을 쓰거나 덥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비에 젖으면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더운 것도, 몸에 땀이 나는 것도, 흙탕물이 가득한 진흙길을 걷는 것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걷기에 집중할 수 있다. 온몸이 비에 젖기까지 괜한 거리낌이 있을 뿐이다. 비 맞고 걷는 재미도 남다르다. 비 걱정만 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비 맞을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선다. 펜션 주인께서 아침 식사를 맛있게 준비해주셨다. 미역국에 감자가 들어가 있다. 김, 계란 프라이, 깍두기 등 밑반찬도 맛있고 정갈하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먹은 후에 길을 나선다.

아침식사 후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내는 장모님을 모시고 집에 와서 편안하게 잠을 푹 잤다고 한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걷기 시작한 날부터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잤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어제 잘 잤다니 고맙고 다행이다. 아내는 장모님 모시고 딸이 머물고 있는 제주도에 가서 손주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장모님이 같이 가시니 더욱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된다. 또한 아내도 제주도에 가서 손주들과 함께 지내면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못 가 미안하지만,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오길 바란다. 10월 말에는 나도 아내와 같이 가서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제주 올레길을 걸을 계획이다.

어천마을에 있는 펜션에서 출발해서 아침재에 오르는 길은 오르막길이다. 힘든 길은 아니지만 산에 오르기 위해 몸을 워밍업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이다. 아침재에서 지리산 둘레길로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로 시작된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즐겁게 걷는다. 한참 가다 보니 운석봉 오르는 길과 둘레길로 가는 나뉜다. 제 모습을 드러낸 둘레길 루트의 운석산은 제법 가파르고 날카로운 돌이나 바위도 많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비는 오지 않지만 산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마치 안개비를 맞고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온 몸이 젖는다. 구름을 타고 다니지 못하고 구름 속을 걷고 있다. 구름이 가득하여 진한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산 아래 풍경이나, 산 위 경치를 볼 수가 없다. 산은 구름으로 자신의 모습을 또 한 번 감춘다.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면 우리가 두려워할까 걱정되어 베푸는 배려이다. 우리를 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제 합류한 갈 길동무 중 한 분이 오르기 힘들어한다. 평상시에 자주 걷는 편이 아닌 친구에게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늘 걷던 나 역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녀가 중간에 잠시 쉬며 백보 보법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백보 걸은 후 잠시 숨을 고르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자 완주를 위한 방편이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다. 내려가는 길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이 길은 내려가는 길이 올라가는 길보다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백보 보법으로 자신의 호흡과 체력을 조절하며 꾸준히 걷는 모습에서 그녀의 강한 의지와 생명력을 느낀다. 그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다른 친구가 신나는 음악을 튼다. 음악에 맞춰 좁은 산길에서 잠시 바닥에 발을 비비며 춤을 춘다. 그런 격려에 힘입어 또 한 번 백보 보법을 한다. 길동무의 격려, 스스로 오르고자 하는 의지, 음악, 수묵화 같은 자연 풍광이 있기에 무사히 힘든 길을 오를 수 있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은 진리이다.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함께 걸은 길동무들 얼굴에 스스로 대견하다는 모습이 배어난다. 오이와 간식을 간단히 나눠먹은 후 다시 길을 걷는다.

힘들었던 길동무가 '언젠가는 끝나겠지'라는 마음으로 걸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그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일도 그 일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늘 간직하고 있었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말씀을 되새기며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과 같은 말씀이다. 우리 삶이 깜깜한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혔을 때,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며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 우울증이나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한다. 터널 속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험했고, 그 과정을 극복했던 사람은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그가 백보 보법을 선보이며 오늘 힘든 산을 오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정상에서 운리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은 편안한 임도로 이루어져 있다. 시멘트 도로이거나 흙길이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제법 넓은 도로이다. 구름은 시야를 차단하며 앞의 길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앞으로 가면 간만큼 길을 열어주고 보여준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멈추거나 주저앉지 말고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나아간 만큼 길이 보인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한발 한발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길이 그만큼 보인다. 굳이 먼 길을 보려 할 필요도 없다. 오직 지금-여기에서 한 발씩 앞으로 나가고, 그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또 한발 앞으로 내디디면 된다.

비가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비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각각 다르다. 우비를 쓴 사람, 우산을 든 사람, 일회용 비닐 우비를 쓴 사람, 그리고 방수 점퍼를 입은 사람, 백인백색이다. 어떤 방식이든 중요하지 않다. 비를 피하고 비로 인해 큰 어려움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편이든 중요하지 않다. 수단은 목적을 넘어설 수 없다.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면 충분하다.

중간에 길이 끊긴다. 공사 중이다. 비가 오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땅이 진 데다 공사 중이라 진흙길이다. 그 길을 통과하니 작은 마을이 보인다. 눈앞에 넓은 평지가 보인다. 단속사지 동서탑이 눈에 띄고 유적지를 발굴 중에 있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단속사라는 사찰은 약 1,200년 전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속세를 끊어내는 단속사. 사찰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그 탑의 모습이 그 당시 단속사의 규모를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수많은 사부대중들이 단속사에서 속세의 번뇌를 끊어내기 위한 치열한 수행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탑의 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고 우아하면서도 묵직하다. 탑 앞 큰 느티나무 밑에 정자가 있다. 준비해 간 점심을 먹는다. 떡, 두유, 사과, 치즈, 웨하스 등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다시 힘을 내서 걷는다. 운리 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어렵사리 스탬프 함을 발견하고 도장을 찍는다. 스탬프 함은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 위치한 정자에 보관되어 있다. 스탬프를 찍고 정자에서 펜션 사장님이 픽업하러 오길 기다리고 있다. 길동무 한 명은 정자 벤치 위에 드러눕는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정자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진다. 오늘 길을 모두 걸은 후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는 우리의 피로를 씻어준다. 같은 비도 걸을 때는 짐이 되지만, 휴식을 취할 때는 짐을 덜어준다. 분별심이다. 단속사에서 이런 분별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했을 것이다.

펜션 사장님이 픽업해 주셔서 편안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주인께서 빨래 세탁과 건조를 해주신다고 한다. 너무 큰 부담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10일간 걸으며 할 수 있는 일은 걷고, 먹고, 자는 것 외에 별 다른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중 빨래가 가장 큰 부담이다. 특히나 비 오는 날 비 맞은 옷을 말리거나 빨래하는 것은 매우 큰 걱정거리다. 안주인의 배려가 고맙고,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길동무 중 한 분은 몇 년 간 마음공부 모임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줌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공부를 놓치지 않고 하기 위해 씻은 후 바로 줌을 틀어 공부에 동참한다. 그의 이런 꾸준함은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걸으며 공부하고, 친구들 만나 공부하고, 줌으로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의 마음공부 향기가 주변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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