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걷기 일기0236] 구두를 찾을 수 없다
날짜와 거리: 20210613 11km
코스: 문화비축기지 – 메타세콰이어길 – 난지천 공원 – 불광천
평균 속도: 4.3km
누적거리: 4,155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매주 일요일은 돌아온다. 월화수목금토도 돌아온다. 매일이 같은 날이다. 그럼에도 토요일과 일요일을 대하는 태도는 평일과는 다르다. 백수에게 매일 쉬는 날임에도 주말은 괜히 마음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가볍다. 오랜 기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평일과 주말에 대한 편견이다. 그저 같은 날임에도 ‘주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음의 여백이 있다. 백수지만 평일에는 나름대로 할 일을 정해놓고 산다. 그 할 일이란 것이 걷기, 명상, 글쓰기, 독서이다. 하는 이유는 중 하나는 어느 정도 만들어진 습관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이나마 하지 않는다면 삶이 너무 무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의 앞뒤가 바뀌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무료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한 일이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이 지금은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한 때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는 휴식 시간에 대한 심한 갈증이 있었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지면 잘 활용하지 못하고 시간만 죽였던 적도 많았다. 백수가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자산이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시간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바로 무료함 때문이다. 무료함이 무서운 이유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사라지게 만들고 몸의 기능을 저하시키며 심신을 피폐화한다. 비록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크고 강함 힘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남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 경험, 상황을 만나면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은 남의 눈은 그저 그의 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 평가, 판단, 비난, 칭찬, 격려는 단지 그들의 시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이 듦’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어젯밤 꿈에 최근에 구입한 내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신발이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찾고 있는데, 비슷한 신발, 같은 재질의 신발, 같은 칼라의 신발들은 많이 있지만, 내 신발은 찾을 수 없다. 아무 거나 신고 갈까도 생각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 신발을 신어야 마음 편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꿈은 무슨 의미일까?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신발은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상황에 맞는 신발을 고르느라 신경 쓴다. 산에 갈 때는 무조건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는다. 걸을 때에는 복숭아 뼈까지 올라오는 트레킹화를 신는다. 평상시에는 편안한 워킹화를 신는다. 여름이나 비가 올 때는 시원한 아쿠아 신발이나 샌들을 신는다. 물론 걸을 거리에 따라 신발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제는 구두 신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걷기는 내게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이다. 어쩌면 내 삶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걷기에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발에 맞는 신발이다. 옷이나 다른 도구들은 걷는 데 있어서 신발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걷기는 나의 삶이다. 신발을 못 찾았다는 것은 아직도 내게 맞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비슷한 신발, 또는 다양한 칼라와 모양의 신발이 있지만 정작 내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걷기와 관련된 일을 하며 살게 될 것 같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아직 못 찾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발이 패션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무리 멋진 정장을 입어도 그에 맞는 신발이 없다면 패션이 완성되지 않는다. 신발은 단순히 걷기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웃는 사람이 잘 살아온 사람이라고 한다.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마지막 순간에 웃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가 자신을 옭아매고 붙들어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자신의 패션을 완성해 줄 구두를 찾은 다음에는 그 구두를 신고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꿈에 비슷한 구두는 많이 보이지만, 아직 내 구두는 보이지 않는다.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구두를 찾고 있다. 큰 방향은 보이지만, 구체적인 세부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꿈은 내게 지금부터 나만의 삶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보이지 않는 구두’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어제 길을 걸으며 코로나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으니 ‘걷고의 걷기 학교’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며 걸었다. 가볍게 시작하며 서서히 수정과 보완작업을 해 나가면 될 것이다. 시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비슷한 구두들이다. 시도를 하면서 내게 맞는 구두를 찾게 될 것이다.
구두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고 만나기 위해 이동에 필요한 사회적 도구이다.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세상을 홀로 살아간다면 패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신에 맞는 각자의 구두를 신고 함께 걸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의 구두를 남에게 신으라고 강요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구두 브랜드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 남의 구두를 뺏으려 해도 안 되고, 설사 빼앗은 신발을 신고 걷는다 해도 발 병 외에는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구두와 다른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해서도 안 되며, 비싼 구두를 신은 사람을 부러워해서도 안 된다. 각자 자신에게 딱 맞는 구두를 신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또는 산책하듯 가볍게 걸어가야 한다. 꿈은 내게 좋아하는 걷기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신발을 못 찾거나 잃어버린 꿈을 과거에도 여러 번 꾸었다. 어리석어 못 알아 들었기에, 나의 길을 친절하게 반복적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꿈에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