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24] 옛 술은 옛 친구들과 함께

걷고 2021. 5. 25. 10:26

날짜와 거리: 20210523 – 20210524  5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4,012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뭄에 단비를 맞이하듯, 자발적인 고립 속에서 친구들을 만나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2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들이라 서로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며 위로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친구와 술은 익을수록 맛이 난다고 했다. 오랜 친구들과 서른 살이 된 술을 마시는 재미는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다. 코로나로 인해 시름 속에 분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린 들 늘 좋은 일만 있겠는가? 삶 속에서 치이고 상처 받고 고민 속에 잠을 이루지도 못했던 날들을 이런 자리를 통해 모두 씻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상처와 고민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지 못할 만큼 우리가 성장했기에 고민을 안고 살아갈 근력이 생긴 것일 뿐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고통만 안겨주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안고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어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영웅이고 승자이며 행복한 사람들이다. 또한 지금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 역시 모두 영웅이고 승자이다. 부디 버텨내자.

오랜 단골 식당, 충정각의 야외 테이블과 전경

한 친구는 지방에 계신 양가 부모님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같이 살지 않으면서도 늘 마음은 부모님에게 머물러 있고, 물리적인 거리로 할 수 있는 일 조차도 없는데도, 해결책을 고민하며 형제나 친척들에게 방편을 제시하기도 한다. 식사 자리에서도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언제 무슨 연락이 올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몸은 우리와 있으면서도, 마음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에게 가 있다. 오래된 친구들이라 서로 개의치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할 따름이다. 평생 가장 역할을 해 온 이 친구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가족들은 주말에 자신들이 이 친구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며 홀로 있지 못하게 만든다고 했다. 가족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고 보호해주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그럼에도 가끔 우리는 착각을 하며 서로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위한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점에 바로 해 주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친구의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하길 기원할 뿐이다.

 

 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났다. 서로 일정이 어긋나 만나지 못해서 보고 싶던 차에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못 본 사이 머리가 많이 길렀고, 얼굴이 부석하고 핏기가 없어 보이고 예전의 힘찬 활력과 에너지가 없어 보였다. 먼저 표현하기가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있었다. 평상시에 술을 매우 좋아했던 친구인데, 1차 백신 접종을 맞아서 술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아쉽지만 친구의 건강을 고려해서 강권하지 않았다. 그간 몸에 이상이 와서 병원 신세도 졌다고 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꾸준한 운동을 해 온 덕분에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내일 남파랑 길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걷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평생 길을 걷고, 길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그 친구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했다. 부디 혼자 걷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 좋겠다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나 증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길동무가 필요할 것이다. 

 

 30년 된 술을 갖고 온 친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술을 마시고 싶은 친구들이 우리들이라고 마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스승의 날’이 있는 일주일 내내 행복하면서도 힘들었다고 한다. 많은 제자들이 서로 날짜를 조정해서 매일 찾아왔다고 한다. 그 친구 연구실에 여러 번 들린 적이 있다. 늘 학생들이 방문해서 상담하느라 홀로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모습이 자랑스럽고 보기 좋다. 대학 부설 평생 교육 원장도 겸직하며 교수로서, 원장으로서, 또 행정가이자 사회 리더로서 다양한 활동을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랫배가 나오는 것이 싫어서 매일 아침 6시에 두 시간씩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열정과 노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건강해야 활동할 수 있고, 집중해서 강의를 할 수 있고, 사회의 리더로서 건강한 결정과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가슴이 순간 먹먹해졌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해왔는지 잘 알기에 그 친구의 그 말이 너무나 고맙게 들렸다. 

 

 어제 만났던 식당도 알고 지낸 지 약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거의 처음 오픈할 때부터 알게 된 식당으로 주인과도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오랜 친구, 오랜 술, 오랜 단골 식당이 어우러진 멋진 밤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장렬하게..”라는 메시지를 보내온 것을 보며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또 고맙다. 우리, 지금처럼 살아가자. 가끔 만나 서로 아껴주고, 자신의 건강도 챙기고,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자. 오늘 신문에 보니 행복의 죄 우선 조건이 사회적 관계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매우 행복한 사람들이다. 친구들이여,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