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네 명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다. 사 년 선배, 삼 년 선배, 일 년 선배, 이 년 후배, 나, 다섯 명인데 삼 년 선배는 건강 상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 참석 못한 선배의 건강을 기원한다. 대학 시절 영어 회화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나이는 6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 만난 세월을 따져보니 어연 50년이 되어 간다. 참 질긴 인연이다. 그 기간 동안 서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월이 만들어 준 변화로 나이를 먹었고, 신체는 노화 증상을 보이고 있고, 선후배 수직 개념이 예전에 비해 약해졌고, 서로를 대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때는 밉던 사람이 지금은 애잔하기도 하고 고맙고 반갑다. 이 나이에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상관없고, 서로 만나 술 한잔 나눌 수 있고, 만나러 나올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고맙고 행복하다.
한 선배가 안성 활인선원에서 진행하는 2박 3일 참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두 놀랐다. 그간 꾸준히 불교 공부와 다양한 마음공부를 해 온 사람이기에 참여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놀란 이유는 단 한 가지, 스스로 연락하고 찾아가서 혼자 공부를 하고 왔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흔히 얘기하는 ‘도련님’ 스타일이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준비해 주어야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의 모습에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의 정점이 홀로 선원을 찾아갔다는 사실이다. 화를 잘 내고, 사소한 일에 삐치고, 상대방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침없는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화를 잘 내지도 않고, 삐치는 대신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때로는 하던 말을 중간에 멈추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챙기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선원을 혼자 찾았다는 것은 이제는 ‘도련님’에서 벗어났다는 매우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꾸준히 수행해서 언젠가는 성불하기를 마음 모아 발원한다.
다른 선배는 요즘 손자 돌보는 일에 빠져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아주 멋진 사람이다. 평생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하며 회사 CEO로 전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쳐나간 능력이 매우 출중한 사람이다. 나는 그의 능력보다는 그의 인성을 무척 좋아하고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보며 많이 배운다. 물론 배운다고는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그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과는 무관하게 늘 존중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 없거나 매우 부족한 면이다. 이제는 업무에서 많이 해방되었다고 하니 이 또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평생 엘리트로 살아오면서 늘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만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그를 평생 따라다니며 때로는 동력으로 때로는 압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일에서 손을 떼며 자신만의 삶을 찾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그의 삶 자체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있을 것이다. 늘 하던 일을 멈추는 두려움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설렘이다.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길 발원한다.
2년 후배인 친구는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평생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지금 어머님께서는 약한 인지장애를 겪고 계신 것 같다. 어머니와 함께 살며 하루 종일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에는 어머님께서 분리불안 장애가 조금 심해지셨다고 한다. 저녁 7시경 잠을 자고,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9km를 매일 걷는 자신만의 루틴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시간에 어머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이다. 이 루틴이 그를 지켜주고 있고, 루틴 덕분에 그는 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선후배들이 좋아하는 친구다. 선배를 존중하고,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며 자신의 가진 것을 남에게 언제든 편안하게 내어주는 멋진 친구다. 그런 친구가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며 함께 귀한 시간과 경험을 나눠 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루틴을 잘 지켜나가 어머님 잘 모시고 동시에 자신의 삶도 편안하길 발원한다.
오랜만에 네 명이 모였다. 약 사 개월 전에 만나고 어제 다시 만났으니 우리 만남의 횟수와 주기는 점점 줄어들고 길어지고 있다. 그나마 아직은 모두 건강에 큰 이상이 없어서 언제든 만날 수는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 모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다 언젠가는 함께 모이는 것이 불가능해질 날도 올 것이다. 건강 이상으로 힘들 수도 있고, 각자 처한 상황으로 인해 만남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만날 수 있을 때 자주 만나야 한다. 그리고 만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다시 만나도 어제의 만남과 똑같은 상황은 절대로 만날 수 없다. 일기일회!. 주어진 귀한 만남과 시간, 경험은 오직 그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다. Carpe Diem!!
고기를 먹은 후 익선동 디저트 카페에 가서 차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케이크 이름이 무어라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케이크이라 부르지 않고 뭐라 부르는데. 평상시 먹는 케이크와는 맛도, 생긴 모양도, 값도 다르다. 평상 시라면 그냥 나갔을 텐데,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이제 자신을 위해 돈을 쓸 일은 점점 줄어든다. 같이 만날 때 만이라도 좋은 음식도 먹어보며 이런 소박한 사치를 누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이 정도의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은 있다. 그리고 그 사치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꺼내어보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매일 막걸리 한잔에 파전만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비싼 음식점에 가서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오랜 친구와 함께 먹고 마시는 사치는 충분히 할만한 가치가 있는 소박한 사치다.
돌아오는 길에 선배 한 명이 단톡방에 카톡을 보내왔다. 언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느냐고 물으며 필요한 경비를 조금 보태주겠다고 한다. 그 마음이 고맙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마음 변하기 전에 말하라고 해서 덕분에 격려금 300불을 받게 되었다. 후배의 여정을 축하하는 그 마음이 고맙다. 오렌 세월 함께 살아온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기까지 수많은 굴곡과 마찰도 있었다. 그리고 그 굴곡은 언젠가부터 완만한 선으로 변하고 있고, 마찰은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얘기를 해도, 서로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어떤 얘기’라는 말조차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그냥 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웃고,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며 지내고 있다. 반백년의 세월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시길 기원합니다. 어제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