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길따라 의병의 길따라 백담사를 걷다>
결국 사람이다!!
3.1절을 기념하기 위한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사단법인 인제천리길, 만해마을, 한국 DM 평화 생명동산 등 여러 단체가 주관한 행사다. 3.1절 아침 7시에 종합운동장역에서 모여 인제로 출발했다. 기념행사장인 인제 용대 2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에 두 명의 운영 위원이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울컥한다. 3.1절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데 또 한 번 울컥한다. 단순한 노화현상은 아닐 것이다. 행사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100여 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느낌이다. 1919년에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목숨을 건 절규였을 것이다. 흑백사진이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감정은 절규가 아닌 선조에 대한 감동과 감사함이다. 칼라 사진이다.
일행은 백담사를 향해 만해 한용운 선사의 족적을 따라 걷는다. 백담사는 만해 선사가 수도하면서 <조선불교 유신론>을 쓰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다. 백담사를 오르는 일행의 모습을 보며 마하트마 간디가 떠오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간디는 영국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1919년 3월 하루 동안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슬픔에 잠기는 ‘하르탈’ 운동을 제창했다. 하르탈(Hartal)은 인도에서 주로 사회적, 정치적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폭력적인 저항의 형태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1919년 3월에 우리나라와 인도에서 동시에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1930년 간디와 간디를 지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인도의 조그마한 해안 마을 단디에 도착하는 380km 행진을 시작한다. 영국의 소금 관세에 항거하기 위한 비폭력 운동이다. 백담사를 오르는 만해의 모습과 소금 행진을 이끈 간디의 모습이 겹친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백담사는 20여 년 전 봉정암에 오르며 봐왔던 모습 그대로다. 다만 요사채가 조금 더 만들어졌는지 여백의 느낌은 사라졌다. 잘못된 기억 탓일 수도 있다. 절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절을 찾는 우리의 마음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요사채 수가 늘었든 줄었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우리 각자의 마음에 지닌 부처를 찾아 공부하며 자신의 등불을 스스로 밝히면 된다. 등불 밝히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사찰이다. 백담사는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반갑다. 사찰에서 먹은 비빔밥은 최고의 별미다. 계란 프라이가 없는 것이 아쉽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숙소인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에 와서 짐을 풀고 씻고 쉰다. 공기가 상쾌하면서 명징하다. 분위기는 조용하면서 깨어있다. 그래서 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멍청하게 조는 것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정신 차리고 쉬었다 가고, 쉬면서 정신 차리는 곳이다. 주최 측에서 명상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애초 기대했던 인원보다 많은 20여 명이 참여해서 명상 시간을 가졌다. 수식관과 걷기 명상 방법을 설명하고 함께 수식관을 실수(實修)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명상은 자신을 찾는 일이다. 나라 잃은 슬픔과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3.1 운동을 펼쳤듯, 자신을 잃어버린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찾아 나서기 위해 명상을 해야 한다.
오랜만에 뜨거운 바닥에 몸을 지지고 나니 개운하다. 웃풍이 반갑다. 공기가 시원하고 바닥이 따뜻하니 이보다 좋은 휴식 환경은 없다. 직접 재배해서 키운 작물로 만든 음식은 그야말로 최고의 건강식이다. 몸과 마음을 깨우는 음식이다. 식사 후 차로 이동해서 금강산 화암사에 내려 신선대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화암사는 통일 신라의 진표 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화엄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길은 제법 오르막이 심하다. 다행스럽게 눈이 쌓여있거나 얼어있지 않아서 오르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정상에 올라 울산 바위가 펼쳐진 풍경을 안개로 인해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그런 상황을 대비해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에서 미리 사진을 찍을 기회를 만들어 준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시내 중식당에서 요리와 음식을 먹으며 이별의 시간을 준비한다. 음식량이 많다. 시골 인심은 아직 살아있다. 옆 테이블에 제주 올레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로 인사를 건넨다. 길을 또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번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인제 사람들이지만,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다. 길을 만들고 다양한 테마로 행사를 준비하며 인제를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인제천리길을 걷고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걸으며 서로 친구가 된다. 강물이 흘러 바닷물이 되고, 바닷물이 되면 어느 강에서 흘러왔는지 따지지도 않고 따질 필요도 없듯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하나가 된다. 인제 사람이든, 올레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코리아 둘레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렇다! 결국, 사람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만든 것을 유지하거나 부수는 것 역시 사람이 한다. 3.1 운동을 펼친 것도 사람이 한 일이다. 그 유지를 받들어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것도 사람이다. 행사에 모이는 것도 사람이고, 친구가 되는 것도 사람이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감사함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런 큰 열정을 갖고 행사를 아무 탈없이 치러낸 사람들 덕분이다. 준비하는 과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작은 실수가 있을 때에는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이번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사소한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준비가 완벽했다는 의미다. 완벽한 준비는 땀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인제를 사랑하고, 고향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멋진 행사다. 이런 행사에 참여한 것은 큰 기쁨이고, 사람들을 만난 것은 귀한 인연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느라 애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