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문맹의 음악 일기

호로비츠 - 슈만 트로이메라이

걷고 2024. 1. 30. 11:55

강단장님이 음악을 자주 보내 주신다. 나의 막힌 귀를 뚫게 하려는 고마운 마음이다. 음악을 통해서 마음이 열리고, 세상과 소통하고, 음악이 주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감각, 머리로 이해하는 것,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별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또는 스스로 감정을 차단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분노와 불만, 억울함이 많이 쌓여있었고, 세월 속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금씩 풀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 침전물로 남아있다. 남아있는 또는 풀리지 않았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내고 싶다. 그 방편으로 음악을 듣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강형진 단장님이 음악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시고 있다. 

 

‘호로비츠 – 슈만 트로이메라이’라는 음악을 보내주셨다. 이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검색을 통해서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내 듯 암호를 풀어낸다. 강단장님은 음악에 담긴 중요한 실마리 몇 가지를 알려주며 음악여행 길잡이 역할도 해 주신다. 처음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스승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불가에서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스승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다시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훌륭한 스승을 만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는 우크라이나 카이우 출신의 러시아-미국계로 1903년에 태어났고 1920년에 서유럽으로 망명한 후 미국에 정착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증 한 명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풍요로운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소피아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겨우 9세 때 키예프 음악원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이 탁월했고, 이후 알렉산드르 스크라빈과 펠릭스 블루멘펠트에게 사사를 받았다. 1917년에 발발한 러시아 혁명으로 집안의 재산이 공산당에 의해 몰수당한 후 생계를 위해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25년 베를린 공연에서 대타로 연주를 하게 되면서 유럽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호로비츠는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고, 그로 인해 힘든 세 번의 휴지기를 보내면서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가 죽기 3년 전인 1985년에 자신의 고국인 모스크바에서 60년 만에 귀국 연주회를 한 곡이 바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로 이 곡을 연주한 후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호칭을 듣게 된다. 마지막 음반을 녹음한 며칠 후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한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할 일을 다한 후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곡을 처음 들으며 80대의 노장이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동작은 매우 부드럽지만 건반을 통해 들리는 소리는 온 정성을 다해 꾹꾹 건반을 누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표정은 무심해 보였고, 그 음악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 감고 음악을 들으며 흘린 한 노신사의 눈물은 냉전을 종식하는 눈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음악을 듣고 있고, 많은 청중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음악을 듣고 있다. 한 노장의 피아노 연주는 청중들의 마음을 녹이고 정화시켜주고 있다. 음악의 힘이다. 책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길을 걸으며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감동적인 영상을 보며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펼쳐 보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참 살만한 세상이다. 자신의 샘에 물이 가득 고이면 저절로 흘러넘치게 된다. 세 번의 휴지기를 갖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호로비치는 이 기간이 자신의 샘을 충만하게 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무슨 의미일까? 슈만 Robert Schumann은 독일의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평론가로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Träumerei는 독일어로 환상, 공상, 꿈이라는 뜻으로 슈만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13개의 피아노 소품으로 된 ‘어린이 정경’의 7번째 곡이다. 호로비츠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약 60년간의 망명 생활 동안 조국이 그리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 들면 어릴 적을 회상하며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 고향이 자신의 의지로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더욱 그 그리움은 사무칠 것이다. 그는 이 곡을 연주하며 자신의 어릴 적 정경을 떠올렸을 것이고, 가고 싶었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게 되면서 이 곡을 들으며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 국민의 비애도 같이 떠오른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고,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생이별의 슬픔에 이 곡이 얹힌다.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청중들이 눈물을 흘리고 숙연한 이유도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주자인 호로비츠 역시 겉으로는 무심하게 연주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절제해서 건반 하나하나를 심혈을 기울여 두드리고 있지 않았을까? 절제된 슬픔은 표출된 슬픔보다 더욱 깊고 여운이 진하다. 

 

이제 ‘호로비츠 – 슈만 트로이메라이’라는 암호를 풀었다. 호로비츠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망명 후 60년 만에 조국을 찾아 귀국 공연에서 슈만이라는 작곡가의 곡 트로이매라이를 연주한 곡이다. 이 곡을 여러 번 들었지만, 다른 곳에서 이 곡을 다시 들으면 이 곡이 호로비츠가 연주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길을 자주 걷는 사람으로서 갔던 길도 다시 걸으며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고 또는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늘 길은 새롭다. 때로는 불편하지만 때로는 즐겁다. 음악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굳이 곡을 안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지만, 들었던 곡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그 순간 그 음악을 듣는 것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곡에 대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작곡자가 만든 배경, 연주자가 연주하게 된 계기나 환경을 이해한다면 같은 음악을 들어도 조금 다르게 들리지 않을까? 자주 듣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다. 또한 듣는 나의 상황과 마음 상태, 함께 듣는 사람과 음악을 듣는 환경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이런 생각조차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듣자. 하지만 적어도 이 곡을 들을 때는, 만약 이 곡을 기억하고 있다면, 연주자와 작곡가의 배경을 떠올리며 들으면 훨씬 더 음악이 잘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설렌다. 글을 쓰기 전에도 설렜다. 음악을 듣고 있는 자신이 신기했고, 음악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는 자신의 모습도 낯설다. 더군다나 음악 문맹이 음악 얘기를 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즐겁고 설렌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설렘도 좋고 좋은 취미 한 가지를 얻었다는 즐거움도 있다.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강단장님과 슬며시 내게 다가온 음악에게 감사를 표한다. 

https://youtu.be/cnSvUjwvZ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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