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관하여

걷기는 상처를 봉하는 바느질이다

걷고 2023. 11. 3. 11:30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걷기의 인문학, 레베카 솔닛)     

 

 이 글을 읽으며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많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기뻤다. 물론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생각, 그것도 전문가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간 나 혼자만 ‘걷기’와 ‘치유’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걷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거나 말하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걸으며 길동무들과 수다 떨고 걷기 끝난 후 뒤풀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걷기가 나를 살렸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걷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유일하게 한 일이 걷기였다. 걸으며 몸이 회복되었고, 몸이 회복되면서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회복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그 동력 덕분에 걷고, 글 쓰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걷기를 통해 심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삶의 활력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준비 중인 ‘이휘재 심리상담 센터’와 ‘걷고의 걷기 학교’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약 2년 전에 ‘우리는 왜 걷는가?’라는 주제로 걷기 동호회 회원들 몇몇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고 싶었다. 걷는 이유에 대해 궁금했고, 걸으며 변한 내용을 알리고 싶었다. 그 당시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손발이 묶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걸으며 힘든 상황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15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원고를 작성한 후 발송해서 혹시나 잘못된 내용이 있는지 검토받았다. 이 과정에서 세 명은 자신의 얘기가 책으로 발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라도 반드시 책을 발간하고 싶다. 이들의 얘기를 그냥 묻어두고 싶지 않다. 자신의 힘든 경험을 나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활자화되어 책으로 발간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레베카 솔닛의 글을 읽으며 인터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내용이 떠올랐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몸을 바늘로 만들고, 길을 실로 엮어서, 자신과 가족의 찢어진 상처를 온몸과 마음으로 직접 꿰매는 작업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떠오른다. A는 비슷한 연배로 마음이 여유롭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내 앞에서 걷고 있는데 마치 ‘속 빈 강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이 사라져 버리고 빈껍데기인 몸만 걷고 있는 느낌이다. 평상시보다 말도 없고 속으로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며 힘든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무서운 침묵 속에 무거운 발걸음만 옮겼고, 감히 말을 걸기조차 두려웠다. 몸은 툭 건드리며 바로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용기 내어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몸이 부서질 정도로 걸으며 나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서 걷는다.” 심한 절망감이 느껴졌다. 평상시에 많이 걷지도 않는 그에게 2박 3일간 해파랑길을 걷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잡히고 무릎에는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혹사시키며 걷고 있었다. 지금 아들은 완쾌되어 직장에 정상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걸으며 자신이 바늘이 되어 아들의 상처를 봉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힘든 상황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다 결국에는 소진으로 이어진다. 이유를 따지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상대방이나 상황에 대해 비난을 하고, 주변 사람을 괴롭혀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자신만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다.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을 하며 더욱 힘든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제대로 돌려놓았다고 해도 이미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시비를 떠나고 진실 자체를 떠나서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 뿐이다. 대부분 이미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려는 불가능을 시도하며 다시 고통 속에 빠져든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더욱 지쳐간다. 샘물이 말라 물이 없는데, 바닥을 계속해서 긁어내며 물을 퍼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샘을 망가뜨리고 샘물을 뜨는 바가지를 못 쓰게 만든다. 이때는 그냥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샘에 물이 고이게 된다. 고인 물이 활력이 되어 다시 삶을 살아가면 된다.      

 

 샘에 물이 고이는 시간을 기다리는 순간은 무척 고통스럽다.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이런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때 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이 바로 ‘걷기’다. 일단 집 밖으로 신발을 신고 나오면 된다. 물 한 병들고 나와서 걸으면 된다. 다른 준비물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집 주변부터 걷기 시작하면 된다. 가까운 공원이나 뒷산을 가볍게 산책하면 된다. 괴로움으로 인해 불면증이 찾아오면 밤에 나가 걸으면 된다. 걸으면 몸이 회복되고, 몸이 회복되면 마음건강이 찾아온다. 샘물이 고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연 속을 걸으면 자연이 말을 걸어온다. 때로는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때로는 내 안의 독소를 정화시켜 준다. 내 안의 상처를 걸으며 바느질하듯 꿰맨다. 걷기는 상처를 봉하는 바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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