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차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시민추모식
가까운 지인들이 참석하고 있는 시민추모식에 다녀왔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추모식이 정확히 어떤 추모식인지, 어떤 사람들을 위한 추모식인지, 누가 주최를 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매월 진행하는 모임으로 벌써 약 10년간 진행되어 온 모임이다. 누군가가 발원을 했고, 그 원력으로 10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 모임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사)예지원 내 자원봉사 모임인 ‘외사랑 모임’에서 주최하는 행사라고 한다. 모임이 시작되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매월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을지대학고 장례학과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가능하면 이 모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장사 등에 관한 법룰’과 보건복지부의 <장사업무안내>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네이버, 넥서스)
한 마디로 외롭고 서럽게 살아온 사람이다. 살아서도 외롭고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들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외로움으로 인한 서러움은 그들을 평생 괴롭혔을 것이고, 그 고통이 죽음을 불러왔을 것이다. 죽은 후에도 여전히 외롭고 서러운 영가들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잠시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통계에 의하면 2023년 상반기 무연고 사망자가 2,658명에 달한다고 한다. 매월 약 400명 이상이 고독사를 한다. 이 심각한 사실을 ‘나’의 문제가 아니기에 무시하고 살아가고 또 ‘우리’의 문제로 여기기조차 싫기에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청년의 쓸쓸한 죽음’ (sbs 뉴스스토리 20230811) 영상을 시청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 얼굴조차 모른 채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에서 다시 버려진다. 태어나서 버려지고, 성장한 후 다시 버려진다. 사회 속에 뛰어들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은 청년들은 ‘자립 준비 청년’이라는 명분으로 사회라는 거친 망망대해에 버려진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으로 인해 삶을 살아내기 힘들 것이다. 삶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 힘들 것이다. ‘자립 준비 청년’이 바라는 것 중 ‘마음 나눌 친구’, ‘든든한 조언자’, ‘안정적인 일자리’ 등이 있다. 특히 친구와 조언자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평생 바라고 고민했던 나의 문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변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준다면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힘든 삶을 헤쳐 나가는데 상담심리사로서 또 사회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 어느 단체에서 상담을 지원해주고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자립청년을 위한 상담봉사를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원력을 세우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추모식은 매우 엄숙하게 격식을 갖추어 진행된다. 의식을 시작하는 개식사 이후 대금 연주를 통해 혼을 청한다. 대금 연주를 들으니 애가 끓는다. 연주자의 마음이 드러난 것인지, 영가들의 통곡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이 맺히고 맺힌 소리다. 연주를 들으니 가슴속 저 밑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 영가들의 서러움과 외로움이 나의 것과 하나가 된다. 영가나, 모인 사람들이나, 나나 모두 하나다. 가까운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듯, 영가의 고통은 우리의 것이 된다. 헌화를 한 후 헌다(獻茶)를 하며 영혼의 안식을 기원한다. 차를 우려내는 팽주의 솜씨가 일품이다. 행사 마친 후 차 한잔 마셨는데 온도도 적당하고 향이 차분하고 은은하다. 참석자들이 한 사람씩 차 한 잔 올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예를 올린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대표로 추모사를 한 후 시인 김남혜가 자작시 ‘저 하늘의 별이 되어’를 낭독한다.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에도 한이 서려있다. 부디 모든 영가들이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자유롭게 우주를 다니며 그들을 외롭게 만든 살아있는 모든 중생들의 길을 밝혀주길 기원해 본다. 살아있는 사람의 욕심일까, 아니면 진정한 발원일까?
동국대 힐링코러스에서 ‘꽃향기 가득한 님’이라는 추모곡을 부르며 영가들을 위로한다. 그들이 어떤 삶과 죽음을 맞이했든, 모든 영가들의 본성 자체는 꽃향기 가득하다. 이 노래를 듣는 동안 오늘 모신 120 위(位) 영가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세상을 떠날 때 누군가가 옆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영가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단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죽음은 삶으로 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영가들을 모시는 장소에서 영가 이름을 부르며 마음속으로 추도한다. 이어서 명동성당 교우들이 추모기도를 한다. 이 모임은 종교를 초월한 모임이다. 종교. 인종, 국적, 남녀노소를 추월한 누구나 참가하여 추모할 수 있는 모든 경계가 무너진 모임이다. 경계가 무너지면 세상은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 배례를 한 후 모임은 끝이 난다. 8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 무연고 장례를 치른 영가 120위(位)를 모신 추모식이 끝났다.
영가시여! 이승에서 그대들의 삶은 끝났다, 이승에 대한 미련도, 설움도, 외로움도, 고통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롭게 날아가시게. 붙들면 고통이요, 놓으면 평온이네. 영가의 세계는 따로 있으니 빨리 그대의 세상으로 들어가시게. 이 세상의 아픈 기억과 경험 모두 놓아버리시게. 그대들이 쌓아놓은 인연과 선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추모하고 있네. 한평생 살아가느라 애 많이 썼네. 잘 가시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