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트레킹
한 길동무의 제안과 기획으로 대마도 트레킹을 다녀왔다. 대마도의 영산이라는 시라타케(白嶽山)와 아리아케(有明山) 트레킹이 주목적이었다. 주산님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이 트레킹을 위하여 한 달 이상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였고, 그 결과 여러 번 다녀온 사람 못지않은 정보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보가 권력’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은 정보가 풍부한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 시에는 서로 의지하기도 하는데 이때 정보력이 매우 중요한 리더의 자격이 될 수 있다. 국내 걷기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한 회원 13명이 함께 다녀왔다. 7시간에 걸쳐 약 20km에 달하는 산행을 아무 사고 없이 마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고맙고 다행스럽다. 혼자 걸었으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함께 걸었기에 완보할 수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밤 12시에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모여 트레킹 다녀 올 생각에 모두 마음이 들떠있다. 새벽 1시 버스를 타고 아침 5시에 부산에 도착해서 국제여객터미널로 택시로 이동했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간단히 각자 조식을 한 뒤 가이드와 조우하여 승선권을 받았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된다. 출발 한 시간 전에 멀미약을 먹고 파고가 높지 않기를 바란다. 배를 탄 적이 없기에 은근히 멀미가 신경 쓰인다. 약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드디어 대마도에 입도했다. 이상하게 해외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시골에 온 느낌 정도다. 시라타케 산행 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산행 시간이 제법 길기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 식사는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시라타케는 바위산으로 기가 센 곳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마도의 영산(靈山)으로 불린다. 기도 기운이 좋다는 대구의 팔공산도 바위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

시라타케(519m)는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야생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산이다. 일본은 등산로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산과 둘레길 안내는 매우 훌륭하다. 앞으로 국내 산이나 둘레길을 갈 때 표지판이 부실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내린 비로 나무가 많이 쓰러져 있고, 그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깔끔하게 정리된 것보다 자연상태 그래도 보존하고 방치하는 것이 자연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대마도는 인구가 27,000명 정도로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쓰러진 나무와 등산로를 정비하기 위한 인건비를 노인 복지에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연은 자연의 모습대로, 인간은 인간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순리다. 자연의 모습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변환시키려는 노력은 인간의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정비된 등산로는 없고 물길이 등산로가 된 것 같다. 오랜만에 원시림이나 야생의 숲을 걷는 느낌이 생경스럽기도 하지만 자연의 참모습을 보며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시라타케 정상에 오르기 위한 입구에는 돌로 만든 문이 있다. 신비로운 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문 앞에 잠시 머물며 시라타케 입산을 허락받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산의 허락 없이는 입산이 불가하다. 정상에 오르기에는 오늘 산행 시간이 부족하고, 정상의 바위가 험하다는 정보를 들어서 석문(石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아리아케 산으로 향한다. 하루에 시라타케와 아리아케 종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사 대표에 의하면 이 두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2박 3일의 일정이 좋다고 한다. 우리는 다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한다.

아리아케(558m)는 매우 부드러운 산이다. 시라타케가 설악산이라면 아리아케는 지리산 같은 느낌이다. 등산로도 완만하고 편안하다. 정상에 오르니 초목으로 가득한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하고 멋진 경치는 산이 베푸는 선물이다. 이제 하산만 하면 된다. 하산길이 제법 험하고 경사도 심하며 길이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약 12시 반경에 산행을 시작했고, 아리아케 정상에 오른 시간이 오후 5시경 쯤이었던 것 같다. 곧이어 해가 저물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서둘러 하산하는데 산길이 만만치 않다. 길동무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선두와 후미 간격이 점차 멀어진다. 후미를 맡은 나로서는 걱정이 된다. 선두가 가끔 멈추며 함께 이동하기도 하지만, 금방 후미와 간격이 멀어진다. 선두가 보이지 않고 날씨는 어두워진다. 손전등을 켜서 길을 밝히며 걷는다. 위험한 순간이다. 후미에서도 두 개의 그룹이 형성되어가고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후미 그룹 중 선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여섯 명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을 손전등과 길동무에 의지하며 걷는다. 한참 걷다가 기다리고 있던 선두 그룹을 만나 이산가족 상봉 하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말을 들어보니 선두 그룹 중에서도 선두와 후미가 또 나눠져 혼자 두려움 속에서 걸었다는 길동무들 얘기를 들으며 리더로서 역할을 잘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미안했다. 아무 사고 없이 잘 내려왔기에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산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너무 무리한 산행이었다. 다녀온 후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리더로서 역할을 잘 못했다는 자괴감과 믿고 따라왔던 길동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산행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또 가본 적도 없는 외국의 산행을 이끈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던 일이다. 오랜 기간 공부하고 준비해 준 길동무 덕분에 다녀오긴 했지만,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많이 든다.
아무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고, 대부분 길동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고 고맙다. 힘들게 산행을 마친 후 시원한 맥주와 콜라, 그리고 해산물 바비큐로 저녁 식사를 하며 안전한 산행을 함께 축하할 수 있었다. 숙소는 목조 건물로 나무 향이 짙게 밴 건물이다. 잠자는데 필요한 물품과 시설만 갖춘 곳이다. 한 방에 모여 사 들고 온 맥주를 마시며 함께 축하하고 떠들며 들뜬 마음을 달랜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역시 도시락으로 밥 맛이 일품이다. 버스로 이동해서 에보시다케 전망대에 올랐다. 비가 많이 와서 몇몇은 차 안에서 산 아래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고 몇몇은 빗속을 뚫고 전망대에 올랐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좋지는 않지만, 바다 풍경을 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전망대 주차장 주변에 카레 빵과 아이스커피, 붕어빵을 파는 푸드트럭이 있다. 듣기 싫은 가이드의 목소리를 참아가며 오랜 시간 듣는 것이 여행 중 가장 힘든 기억이다. 앞으로 다시는 단체 여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지게 해 주어 고맙다. 가이드는 여행에 필요한 일정과 가는 곳에 대한 정보 정도만 제공해 주면 좋을 텐데, 이 가이드는 마이크를 끝까지 놓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야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참고 있는 모든 일행들이 너무 착한 사람들이다.
면세점 앞에 주차를 했지만, 우리는 면세점보다는 주변 슈퍼마켓에 들어가 필요한 것을 산다. 여행의 재미는 면세점이 아니고 그 지방의 색이 드러난 문화와 음식, 주민들과의 소통,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을 보고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단체여행을 하며 뼈저리게 느낀다. 단체로 우르르 들어가 마치 조립식 기계의 부품이 된 듯 식당에 앉아 취향과 상관없이 나오는 음식을 먹는 것도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선택으로 주문한 나마비루(생맥주)가 잠시 여행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점심 식사 후 미우다 해변과 해변 공원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트레킹의 묘미를 느낀다. 여객 터미널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멀미약을 먹으며 승선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귀국 바다는 우리는 보내는 것이 아쉬운지 거친 파도로 발길을 잡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머물 필요도 없기에 거친 파도를 견디며 부산에 도착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그대로 헤어짐이 아쉬워 사전 예약을 한 식당에 들어가 물회와 함께 술을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다녀온 여행이다. 하지만, 덕분에 시라타케와 아리아케를 종주할 수 있었다. 정말 멋진 트레킹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함께 걸으며 다녀올 수 있어서 고맙다. 그리고 길동무들과의 추억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기획과 준비해 준 주산님, 총무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신 배라님, 동참했던 모든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