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170]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걷고 2021. 1. 29. 11:56

날짜와 거리: 20210128  3km

코스: 일상 속 걷기

누적거리: 3,08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날씨가 추워졌다. 아침부터 눈이 오더니 강풍이 불고 있다. 제법 눈이 많이 와서 집 주변에 눈이 쌓인다. 집 앞 나무에 눈 꽃이 폈다. 출근할 일이 없으니 별 걱정은 하지 않지만, 오후에 상담하러 나가기 위해 옷과 신발을 준비한다. 운동화보다 경등산화가 좋을 것 같다. 미끄러져서 혹시나 다치게 되면 나도 불편하지만,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 이래서 나이 들어가면 걱정이 늘어나나 보다. 상담이 오후 6시에 마치기 때문에 저녁에는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분다고 하니 준비를 해야 한다. 날씨에 따라 옷차림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나가기 전에 씻는 것 역시 일이다. 예전에는 출근 전 준비 시간이 30분 정도면 됐는데, 요즘은 한 시간 정도 필요하다. 한 번에 준비하는 것이 버겁기도 해서 세면 시 면도를 하기도 하며 나가기 위한 준비를 나눠서 한다. 오전 할 일을 하고, 점심 식사 후 조금 일찍 나가서 세 정거장 전에 하차 후 걸어서 상담 센터에 갔다. 일상 속 걷기의 생활화를 하게 되면 별도로 시간이나 돈을 들여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며칠 전 신문에서 “미국은 죽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6개월 정도인데, 한국은 1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죽어가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치료를 시도하느라 임종 직전까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얘기로 이해되었다. 환자도 피곤하고, 가족들 역시 매우 힘든 상황을 겪어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가족의 죽음을 최대한 연장시키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법을 다 해야만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가족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한 연장시켜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생명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 생명을 기계에 의존해가며 연장시키는 것이 반드시 좋은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고 스스로 움직이고 사고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극단적 선택을 얘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더 이상 무의미한 치료를 하지 않고 고통을 완화시키며 조용히 가족과 이별 준비를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미국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자연주의자인 스코트 니어링은 부인인 헬렌 니어링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면서 단순한 삶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오래전에 읽으며 그들의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고, 아직도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코트 니어링은 만 100세 되는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으며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부인이 옆에서 받아쓰기도 했다.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는 자신의 몸의 변화와 느낌에 대한 글을 10대부터 80대까지 기록한 일기로 죽기 전 딸에게 전달해서 발간된 책이다. 그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신체의 변화를 기록했다. 정확한 글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만년필 들고 글 쓰기가 히말라야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라는 의미의 글이 기억난다. 신체의 노화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는 문구라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걷고의 걷기 일기’를 쓸 용기를 얻고 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 일기를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쓸 생각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다.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 교수를 그의 제자가 매주 화요일 병상으로 찾아와서 들었던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모리 교수는 죽기 얼마 전에 좋아했던 친구들을 모두 병상으로 불러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즐거운 장례식을 치른 후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은 후 말도 못 하는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말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며 장례식을 치른다는 생각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세 분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모리 교수는 죽음을 즐기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거부하거나 억지로 연장하거나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수용하고 있다. 마치 봄에 생기 가득한 신록의 나뭇잎들이 겨울이 되면서 떨어지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지듯이,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가끔 딸에게 시신을 기증하고 싶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쓸데없는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딸은 처음에는 펄쩍 뛰며 거부했지만, 지금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긴 죽은 자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든, 결정은 산 자의 몫이다. 나 역시 죽음 이후의 모든 것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할 수도 없거니와 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몫은 살아있는 동안 잘 사는 것이다. 죽음 후의 일은 나의 몫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침에 명상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에 조금 걷고, 오수를 즐기다 죽음을 편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 생의 마지막 내담자와 상담을 하며 죽어가는 것도 상상을 해봤다.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떠밀리듯 죽는 것이 아니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죽기 바로 직전까지 정신 차리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죽음을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하루 잘 살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다. 노을을 보며 하루 마무리를 준비하듯. 

 

2019년도 3월에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이다. 딸과 사위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사람 일은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혹시나 올지 모를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충실하다는 것이 반드시 열심히, 시간을 쪼개어 가며, 뭔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하루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쉬고 싶을 때는 쉬고, 놀고 싶을 때는 놀고, 뭔가 하고 싶을 때는 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Doing Mode의 삶이 아닌 Being Mode의 삶이다.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삶이 아닌, 주어진 삶을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무료해 보이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 되면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냥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삶이 타인과 다른 생명들을 위한 일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죽음을 생각하지도 말고 단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날이 오늘이 되면, 죽음을 살아가면 된다. 오늘 하루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살면 된다. 걷고, 글 쓰고, 상담하고, 명상하고, 아내와 즐겁게 지내고, 친구들과 웃으며 지내는 것이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이 고맙고 좋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