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경기 숲길을 마무리하며

걷고 2023. 7. 23. 12:09

 경기 숲길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경기 숲길은 쉽게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 년 중 6개월은 산불 주의 기간으로 아예 입산이 금지되고 그 외에도 호우가 내리거나 폭설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낙석이나 임도가 무너져 갑작스러운 공사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걷기 힘든 길이다. 하지만 일단 입산하게 되면 이 길만큼 멋진 길도 없다. 경기 둘레길 네 개 구간 중 최고의 구간을 선정하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기 숲길을 택할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얘기하며 이 길에 대한 자랑을 하고 싶다. 걷는 내내 다른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가장 낮은 길이다. 네댓 시간을 걸어도 기껏해야 두세 명 정도를 만나거나 아니면 아무도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주말에 명산을 찾으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앞사람 발꿈치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되지만, 하지만 경기 숲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조용히 걸으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고,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을 친구 삼아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주로 임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비상시 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넓고 평평한 길이다. 완만한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돌며 정상에 도착할 수 있기에 흔히 얘기하는 깔딱 고개가 없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물론 이 구간 내 난이도가 높은 길도 두 곳 정도 된다. 편안한 길, 나무 그늘, 바람, 새소리, 물소리를 친구 삼아 유유자적하게 걷기에 이 길만큼 좋은 길은 없다.      

 경기 물길, 경기 갯길, 경기 평화누리길을 걸었고, 마지막으로 경기 숲길을 걸었다. 산불 예방 기간과 갑작스러운 날씨 또는 길의 상황에 따라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경기 둘레길을 완보하기 위해서는 경기 숲길을 언제 걸을지 먼저 판단한 후 전체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네 개의 구간을 모두 걸으니 드디어 경기둘레길이라는 퍼즐이 완성된다. 길을 걸으며 전체 코스를 순서대로 걷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날씨 영향도 있고, 계절 영향도 있고, 또 함께 걷는 길동무들의 체력 상황에 따라 수시로 코스를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력이 약해서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향상 덕분에 한 코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코스를 걷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이다. 두 개 코스를 하루에 걷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길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경기 숲길 구간 중 양평 26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다. 양평 산음 자연휴양림에서 단월면 사무소까지 18km를 걷는 길이다. 출발 지점에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하며 걷기 시작한다. 이제는 걷기 전 스트레칭이 습관이 되었다. 좋은 습관은 만들기 쉽지 않지만, 동시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출발하려는데 양평군에서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다. “노약자분들께서는 온열질환과 안전관리에 유의 바랍니다.” 노약자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처럼 ‘어르신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일까? 집에서 에어컨 틀고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감기 걸리고, 밖으로 나가면 온열질환에 걸린다. 그럼 나 같은 노약자는 견강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 감기에 걸리느니 차라리 내 두 발로 활기차게 걸으며 더위와 맞짱 뜨고 싶다. ‘더위’에게는 무례한 태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맞짱 뜨는 마음으로 살고 싶고 걷고 싶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 중에 나와 같은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서로를 격려하며 무더위와 맞짱 뜨며 오늘도 걷는다.      

 

 막상 싸울 태세를 하고 걸으니 더위는 우리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뒤로 물러간다. 대신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하고, 그늘이 우리를 보호하고, 청명한 하늘이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 걸음에 놀라 팔짝팔짝 뛰는 개구리들이 우리의 친구가 된다. 양평군은 폭염주의보가 있지만 군내 임도를 걷는 내내 더위를 그다지 느낄 수 없다. 더위를 맞이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있다. 더위에 매몰되어 사는 것, 더위와 한판 싸움하는 방법, 그리고 여름에는 더운 것이 당연하니 그냥 받아들이며 사는 것. 더위에 매몰되면 더위는 더 큰 악마가 되어 우리를 더욱 꼼짝 못 하게 한다. 더위와 싸우는 것은 용감함과 무모함 두 가지를 갖게 된다. 그만큼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이 최선이다. 그냥 여름은 더운 날이고 겨울은 추운 날이다. 더울 때는 더운가 보다 하며 할 일을 하고, 추울 때 역시 추운 가보다 하며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날씨에 따라 할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날씨와 상관없이 날씨를 받아들이며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폭염주의보가 있는 날이건, 노약자 온열주의 경보가 내린 날이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인 ‘걷기’를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마지막 길을 아쉬워하는 길동무들이 많이 참석해서 함께 걷는다. 반갑다. ‘걷기’는 길만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니고 길동무도 함께 선물해 준다. 처음과 마지막 길만 걷고 완보를 했다고 우기는 친구도 있고, 다른 바쁜 일정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참석한 친구들도 있다. 오고 싶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하는 친구도 있고, 찬조금으로 축하를 해 주는 친구들도 있다. 서로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 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어디를 걸을 것이냐며 은근히 압박을 가하는 친구들도 있다. 임도의 ‘임’이 무슨 한자일지 맞추는 어리석은 내기를 하며 진 덕분에 얼음과자를 사야만 하는 억울함(즐거움)을 당한다. 계곡물에 발 담고 싶다며 떼를 쓰는 친구들을 위해 경기 숲길은 친절하게 발 담그고 놀기 편안한 계곡을 흔쾌히 제공해 준다. 단월면 사무소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도 그냥 덤덤했듯, 경기 둘레길이 끝나는 이 지점에서도 그냥 덤덤하다. 딱히 어떤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부러 떠 올릴 필요도 물론 없다.      

 

 경기 둘레길 완보를 축하하기 위해 마지막 뒤풀이는 조금 럭셔리하게 준비했다. 약 15년 간 자주 이용했던 충정각이라는 식당을 예약해서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평상시에 먹는 음식과 조금 다른 멋진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간다. 카페 운영진에서 매니저와 전 매니저들, 스태프분들이 참석해서 분위기를 더욱 북돋는다. 기념사진도 찍고, 기념 케이크 절단식도 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인사말도 하며 길동무, 또 길동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 카페 ‘걷기 마당’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식당에 점잖게 앉아 음식을 즐기는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으며 어느새 스탠딩 칵테일파티가 되듯 서로 자리를 이동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차, 삼차로 이어지며 드디어 길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많은 분들 덕분에 이 길을 완보할 수 있었다. 혼자 걸었다면 완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비단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도 못하면서 경기 둘레길 진행하는 내내 차량 예약과 총무 업무를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해 주었다. 총무 업무와 식당 예약을 도와준 스위치님과 피치님, 길잡이 역할을 해 주며 2차 경기 둘레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에단호크 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외에도 고마운 길동무들이 너무 많다. 도니 님, 히란야님, 꽃가루님. 주니유니님, 당근조아님, 주산님, 어니님, 엑소님, 등 당장 떠오른 얼굴들 외에도 이 길을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놀이마당을 만들어 준 걷기 동호회 카페 ‘걷기 마당’과 운영진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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