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콘서트를 다녀와서 - 아모르 파티
최근에 신구 선생님께서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올해 연세가 88세인데 아직도 연극 무대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도 작품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한다.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몰라 혹시나 관객이나 연극 연출, 그리고 동료 배우들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88세에 현역이고 아직도 작품이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신구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다. 주변에서는 연극을 계속하는 현역 선배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후배들이 많다고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평균 퇴직 연령은 49.3세이고 은퇴 연령은 72.3세라고 한다. 퇴직 후 약 20년 정도 다른 일을 하며 산다는 의미다. 그만큼 중년들의 삶은 매우 피곤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평균 기대 수명은 83.6세로, 남자는 80.5세, 여자는 86.5세다. 이 나이는 퇴직 후 약 35년 이상, 그리고 은퇴 후에도 약 10년 이상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 졸업 후 평균 25년에서 30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완수한 후 다시 30년 이상을 더 살아가야 한다. 은퇴나 퇴직 후의 삶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퇴직자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역할과 존재감이 사라지고 쓸쓸한 노후를 맞이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사회적, 그리고 가정적 역할을 모두 마친 후 홀가분하게 자신만의 삶을 위해 활기차게 날아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기획연주회인 ‘제1회 힐링 콘서트’에 다녀왔다. 중년의 남녀가 열심히 연습해서 오페라나 가곡을 독창으로 부르는 콘서트다. 각자 멋진 드레스와 양복을 준비해서 입고 나와 긴장된 모습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자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또 펼치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들은 5, 60년 이상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의무감에 묶여 살아오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며 살아왔다. 살아가면서 해야만 하는 의무가 먼저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신의 꿈 실현이 먼저인가라는 갈등 속에서 결국은 의무를 택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사회적, 가정적 역할을 마친 인생의 승리자인 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여서 하고 싶은 노래 연습을 하고, 그 결과물을 가족과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힐링 콘서트에서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5,6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이다. 펼치고 싶어도 펼치지 못한 꿈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며 감내했던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들의 꿈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의 꿈을 펼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모든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날개로 자신만의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첫 비상의 순간이다. 한 번의 날개 짓을 위해 이들은 5,60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왔다. 목소리가 떨리고 몸은 긴장되고, 얼굴이 상기된 이유는 노래 때문이 아니고 자신의 꿈을 드디어 펼치고 있다는 감동 때문이다. 한곡 마친 후 내려오면서 다리는 풀리고 긴장은 사라지고 상기된 표정은 안정을 되찾았다. 첫 날개 짓을 하고 난 후 느끼는 홀가분함, 그리고 앞으로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모두 사라졌다.
콘서트와 신구 선생님의 인터뷰는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무엇을 더 할 필요가 있을까? 또는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끔 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신구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며 자신의 나태함을 꾸짖었고, 콘서트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이들의 비상을 바라보며 나의 꿈을 찾아 나의 비상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걷기를 시작한 후 길을 걸으며 왜 걷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최근에 찾은 답이 바로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또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꿈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포기를 하거나 안 하는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따라서 꿈을 잃어버린 이유를 주변 사람이나 상황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자신이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과 주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든, 연극을 하든, 걷든, 이 모든 행동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아모르파티(Amor Fati)’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로 독일 철학자인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다. ‘아모르파티’는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라는 말을 했다. 신의 비존재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에 의지해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과 사람들 속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면 결코 자신의 주도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이 노래든, 연극이든, 걷기든. 콘서트를 통해서 이들은 ‘아모르파티’를 실현하고 있고, 가족과 지인, 주변 사람들에게 ‘아모르파티’를 실현하라고 몸으로, 노래로, 말로 외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외침!’이다. 그 ‘외침’의 내용은 ‘아모르파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