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연인산

걷고 2023. 4. 30. 10:26

아내가 감기로 3주간 고생하고 서서히 나아지자 내 차례가 되어 목감기가 걸렸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별 차도가 없다. 다행스럽게 약간의 몸살기와 인후통, 기침만 있을 뿐 다른 증상은 별로 없다. 경기 둘레길 19코스를 걷는 날이다. 해발 1068m의 연인산 정상을 넘어 용추계곡까지 6시간 이상 걷는 난코스다. 출발 전 고민했다. 전날 저녁부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몸 상태로 인해 혹시 민폐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으니 한 주 쉬는 것도 고민해 봤다. 참석자들끼리만 다녀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리더로서 너무 무책임한 생각이다. 참석하기로 한 후 몸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썼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꽤 높은 산을 넘는 길이다. 블로그 후기를 읽어보니 모두 힘든 코스라고 한다.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내린다. 준비해 온 비옷이나 우산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모두 길을 걷는 즐거움에 수다와 웃음이 가득하다. 비 소식으로 한 두 명 정도는 취소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취소하지 않았다. 이 사실도 매우 놀랍다. 마치 길 걷는데 허기진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고, 감기를 핑계로 빠지지 않은 것은 잘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정작 나 자신은 길을 즐길 여유가 없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 발걸음이 무겁다. 신경이 쓰인다. 오르막길 조금 오르자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인원 파악을 하며 걷는다. 점점 두 그룹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걱정되기 시작한다. 스위치님이 후미 그룹을 챙기겠다고 해서 마음 놓고 전진할 수 있었다. 리더로 선두에 걸으면서도 늘 후미를 잘 챙기며 걷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후미가 자꾸 멀어지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상태로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후미를 챙기지도 못한 채 전진한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지만, 몸 상태가 점점 더 신경 쓰인다. 내리는 비로 산길은 진흙길이 되어버렸다.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는데 자꾸 미끄러진다. 발을 디디고 올라 설 맨땅이나 돌이 없고 오직 진흙으로 된 오르막길이다. 넘어지고 일어나며 순간 당황스럽고 긴장되며 불안감이 올라온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겨우 정상에 오른다. 총 11명 중 6명이 먼저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정신없이 앞만 보고 올라왔다. 몸은 추위로 인해 떨고 있고, 두통이 시작된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후미에 남은 사람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금 뒤로 내려와서 사람들 이름을 불렀다. 한 친구가 더 못 오르겠다며 하소연을 하는데 내려갈 여력이 없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서 에단호크님께 부탁을 드렸다. 고맙게도 에단호크님이 내려가서 그 친구를 데리고 올라왔다. 그 친구 얼굴에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미안했다.      

 

 조금 후에 스위치님과 폴리님이 정상에 도착했다. 김사과님과 오늘 처음 나온 풀자님이 보이지 않는다. 김사과님이 전화를 해서 잠시 쉬며 음식을 먹고 있고, 조금 후에 올라가겠다고 한다. 그 목소리가 어딘가 긴장감과 불안감, 그리고 걱정이 서려있다. 불안했다. 후미를 챙기지 못한 후회감이 올라온다. 리더로서 할 말이 없다. 리더로서 나 혼자 오르기에 벅차서 후미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추위를 호소한다. 다섯 명에게 먼저 하산하라고 한 후 잠시 정상에 머무는데 몸이 떨리며 두통이 다시 시작된다. 더 머물면 좋지 않은 상황이 올 것 같아 정상에 세 명을 남겨두고 나도 하산했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불편하다. 두 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을 알면서 하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먼저 하산 한 다섯 명을 확인한 후 천천히 내려가라고 하고 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다. 걱정했던 두 명이 도착했고 그들의 표정이 예상보다 밝아서 안심하고 함께 하산했다. 앞서가던 그룹과 다시 뭉쳐서 하산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오른쪽 발목 주위와 발가락에 쥐가 나서 잠시 멈춰 서 겨우 회복한 후 다시 걷는다.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진다. 방법이 없다. 참고 걷는 수밖에 없다. 잠시 쉬며 조금 진정되면 다시 걷는다. 정상을 내려온 사람들 모습에서 안도감과 정상에 올랐다는 긍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것을 느끼고 즐길 여유가 없다. 리더로서 후미를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리더로서 자질이 있는 것에 대한 회의도 든다. 스위치님 말대로 함께 시작했으니 함께 걷고 마무리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리더가 먼저 그 원칙을 무시하고 홀로 걷기에 바빴다.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후미를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산 길은 아름다웠고 특히 용추구곡의 절경과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한 물소리는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런 환경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오직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리더 자질에 대한 회의감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하산해서 차에 오르니 이제 안심이 되며 심신이 노곤해진다. 모두 안전하게 하산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어제 걸었던 길을 회상하면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가을에 이 산을 다시 올라 단풍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가을에는 리더로서 역할도 제법 해 낼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기길 바라면서. 하산하는 길동무들 모습이 모두 밝고 활기차다. 하산 길의 아름다움이 또 악천후 속에서도 정상에 올랐다는 자신감과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고 고맙고 미안했다.    

  

 예전에 나이 지긋한 선배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너는 힘들 때는 잠수 타고, 회복된 후 나타날 때는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힘들 때 힘든 모습을 보여주며 함께 지내는 것이 친구들과 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말씀이 이 글을 쓰며 떠오른다. 그렇다 힘들 때는 늘 혼자였다. 어제도 함께 걸었지만 혼자 걸었다.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고, 힘들기에 혼자 걷기에도 벅찼다. 개인으로서는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특히나 리더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평상시 나의 습관이 힘든 상황에서 그대로 다시 드러난 것이다. 힘들어도 또 즐거워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경기 둘레길 리더를 자처한 이유 중 하나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리더로서 함께 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어제 길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길이었다. 앞으로 남은 경기 둘레길 구간은 대부분 국유림으로  산길이다. 제법 높은 산들이 우리 길 앞에 놓여있다. 어제의 힘든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예방주사인 셈이다. 앞으로 남은 길을 잘 화합하며 함께 즐겁게 걸으라는 산신령님이 내려주신 선물이다. 비록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곤 있지만, 이 역시 내게는 좋은 명약이 되어 남은 길을 리더로서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비 내리는 날 힘든 길을 무사히 걸은 모든 길동무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글을 통해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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