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세상 vs 현실 세상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같은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기도 하고 물 흐르듯 생각들이 매 순간 변하며 잠시도 멈추지 않기도 한다. 생각이 사람을 만들어간다.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행동이 강화되며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이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자신을 키우는 것도 생각이고,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 것도 생각이다. 생각이 그 사람이라는 의미는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좋은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인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 내부에는 선악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선과 악 중 선택해서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어떤 사람도 좋은 사람도 될 수 있고 나쁜 사람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이다.
불교에서는 삼업(三業)이라고 해서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이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즉 몸과 입과 생각을 통해서 업을 쌓게 된다. 이 삼업 중 의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몸과 입이 움직이고 말한다. 우리 마음 본바탕은 빈 도화지 같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기에 빨간색으로 그리면 빨간 그림이 되고, 파란색으로 그리면 파란 그림이 된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도화지는 그냥 도화지일 뿐이다. 도화지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도화지 위에 그린 그람만 시시각각 변한다. 그림을 지우면 원래 도화지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생각을 표현한 것이 그림이 된다. 도화지 위에 나타난 그림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표현된 그림 자체가 바로 우리의 참모습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자체가 그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그것은 그냥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하다. 그림은 그림일 뿐 결코 도화지는 아니다.
도화지가 우리의 참모습이고 그려진 그림이 겉으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이라면 본성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그림을 그리는 생각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을 보지는 못하고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의업 즉 생각이 사람을 만들어가고, 만들어진 사람이 생각을 강화시켜 더욱 고착화된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한평생 살아간다. 우리가 평생 씨름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 울고 웃고 난리 치며 살아간다. 참 어리석은 짓인데 정작 우리는 그 어리석은 짓을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똥파리가 똥을 금으로 보며 쫓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똥파리가 똥을 좇는 모습을 보며 한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깨달은 사람의 눈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같을 수도 있다.
생각이 우리를 만든다. 어떤 현자는 머릿속 생각이 우리를 만들어 가고 고통 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한다.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믿으면 고통을 받지만 믿지 않으면 고통받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 믿음, 판단, 평가는 모두 상상 속의 세계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살며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믿음에 빠져 타인의 믿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으로 타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판단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점점 더 강화시켜 자신의 성벽을 더욱 높고 두껍게 쌓아간다. 결국 남는 것은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이다. 그 고통은 다시 외부에 대한 공격과 부정으로 힘을 키운다. 그리고 그 고통은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요즘 떠오르는 생각을 곰곰이 살펴보는 연습을 자주 한다. 최근에 생긴 습관이다. 생각의 99%는 이미 지나 간 과거의 일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 그리고 아무 의미도 없는 잡념들로 가득하다. 남은 1%는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몸의 감각으로 돌아오거나 화두를 잡는 순간으로 채워진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과 상상을 하면 할수록, 또는 무의미한 상상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부정적인 사고로 흘러가며 결국 사람과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평 그리고 비난으로 끝을 맺는다. ‘궁리 끝에 악심 온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쓸데없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궁리는 결국 현재의 자신을 잡아먹고 과거나 미래의 노예로 살게 만들며, 악심만 가득한 괴물을 만들어 낸다. 흰 도화지 위에 괴물을 그리고 있는 행위가 바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로 가득한 상상 속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허공에 둥둥 떠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도화지 위에는 과거에 대한 불만과 후회, 미래에 대한 허망한 상상, 그리고 무의미한 잡념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림 위에 덧칠을 계속해서 흰 바탕은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본래의 모습을 찾기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은 변화무쌍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한 찰나에 그 그림들과 덧칠을 바로 원래의 본바탕인 흰 도화지로 돌아올 수 있다.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바로 흰 도화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 또는 무의미한 잡념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몸의 감각이나 화두로 돌아오거나 또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밥을 먹으며 친구 만날 생각을 하거나, 화장실에 앉아서 여행하는 상상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에 잠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라’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수행의 원칙을 이보다 간결하게 정리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의 뿌리가 채 자라기 전에 잘라버리고 뽑아버려야 한다. 이미 크게 자란 생각은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고 그만큼 뽑아내기도 힘들다. 생각을 알아차리는 연습, 그리고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몸의 감각이나 화두에 집중하는 연습, 그리고 반복된 연습만이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