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고통의 원인

걷고 2023. 3. 6. 10:29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이 무명(無明) 즉, 밝지 못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둠 속에 갇힌 마음으로 인해 삼라만상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해 괴로움이 발생한다는 말씀이다. 이미 마음에 먼지가 끼어있어서 거울에 자신과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비출 수가 없다. 거울 자체는 그냥 모습을 비추는 거울 일 뿐인데 먼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거울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난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거울을 닦아서 자신과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더러운 거울에 비친 사람과 상황의 모습을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때 묻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에 해석과 판단은 무의미하다. 이는 마치 늪 속에서 빠져 벗어 나오려고 애쓰는 모습과 같다. 허우적거릴수록 더욱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차라리 아무런 행동이나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시간이 지나면 늪은 저절로 사라지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무명으로 인해 탐착과 혐오라는 두 가지 양변(兩邊)이 생긴다. 좋은 것은 붙잡으려 하고 싫어하는 것은 밀어내려는 두 가지 욕심이다. 이 두 가지가 괴로움의 출발점이다. 어두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과 싫어하는 차별심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질린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심이 탐착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먹다 보면 싫어진다. 이제는 그 음식을 밀어낸다. 이것이 바로 혐오다. 같은 음식인데 자신의 상황에 따라 탐착 하는 마음도 생기고 미워하는 마음도 생긴다.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어두운 마음이 만들어 낸 탐착과 혐오가 문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아서 못 견뎌 결혼하고 살면서 이제는 싫다고 밀어내며 이혼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도 같은 사람이고 나 역시 같은 사람이다. 사람의 본바탕은 거울과 같다. 하지만 속진이 묻은 거울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비난하며 문제가 시작된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지 사람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음식이 아무 잘못이 없듯이 사람 또한 아무 잘못이 없다. 음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 속아 울고불고하는 것이다.    

  

최근에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 며칠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일 아침에 노트에 불편한 마음을 써 내려가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에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다. 그들을 아끼고 존중하듯 그들도 나를 아끼고 존중해 주길 바랐다. 이 마음까지는 이해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일반적인 생각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끼고 존중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너에게 이렇게 대하고 있으니 너도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대해줘 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갖고 있었고 그 기대감이 어긋나자 불편한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뭔가를 베풀었다는 생각과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만들어 낸 일이다. 내가 얻은 결과는 '괴로움‘ 뿐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뭔가를 베풀고 주었는가? 그간 받은 것이 없는가? 너무 많이 받지는 않았을까?  인식을 못할 뿐이지 각자의 방식으로 감사함을 표현하지는 않았을까? 한 일도 없으면서 뭔가를 받고 싶어 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히려 받은 것이 더 많았다. 고마운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받았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었다. 결국 그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내게 돌아왔다. 자신이 받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받은 것보다 더 받기를 원하는 도둑놈 심보다. 더군다나 더 어리석은 것은 뭔가를 베풀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무엇을 했는가? 누군가를 위해 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했는가? 모든 행동은 나 자신을 위한 행동에서 시작되었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해 한 것을 마치 남을 위해 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금강경에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라’를 글귀가 있다. 이제야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와닿는다. 어떤 행동과 말 자체에 머물면 독이 되고 흘려보내면 약이 된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기대를 하게 되고,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후회를 하게 된다. 이미 지난 과거는 흘려보내면 되는데 자꾸 되새김질을 하며 기대와 후회로 자신을 괴롭힌다. 오지 않는 미래는 저절로 오는데 미리 앞당겨오려고 애쓰고 일어나지도 않는 상상의 세계를 붙잡고 씨름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며칠간 어두운 마음속 터널을 지나왔다. 그 터널은 과거와 미래를 붙잡고 씨름하느라 만들어 낸 터널이다.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모든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으면 저절로 천천히 사라진다. 붙잡을수록 괴로움의 크기는 더 커지고, 흘려보낼수록 괴로움의 크기는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고 있는 것처럼 하면 된다. 이미 흘러간 물을 붙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물을 미리 끌고 올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내 발을 스쳐 지나가는 물을 알아차리고 온전히 느끼면 된다. 삶의 지혜는 의외로 매우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을 열린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이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아침 햇살이 좋다. 해는 매일 아침에 떠오른다. 구름에 가릴 때는 잠깐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구름이 가린다고 해가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명의 구름이 우리의 밝은 본마음을 가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구름이 흘러가거나 변해 저절로 해의 본모습이 나타나듯, 무명의 구름도 이와 같다. 구름과 씨름할 필요도 없고, 씨름을 한다고 구름을 몰아낼 수도 없다. 그냥 가만히 두면 사라진다. 구름이 사라지면 해가 나타나듯, 무명의 구름이 사라지면 지혜의 밝은 빛이 저절로 드러난다. 붙잡으면 괴로움이 찾아오고 흘려보내면 평온함이 찾아온다. 이 쉬운 진리를 이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득해 나가기 위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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