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경기 갯길을 마치고> 경기 갯길은 스승이다

걷고 2023. 2. 28. 12:11

경기 갯길은 경기 둘레길 네 개의 권역 중 하나로 평택, 화성, 안산, 시흥, 김포 5개 시를 잇는 262km에 달하는 길이다. 또한 서해안을 따라 걷는 이 길 중 많은 구간이 코리아 둘레길의 서해랑길과 겹치는 길이다. 왜 명칭을 갯길로 명명했는지 궁금했었는데 길을 걸으며 그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 길은 서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바다 대신 끝없이 펼쳐진 갯벌만 보며 걸었다. 이 길이 ‘경기 갯길’로 명명된 이유다.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는 갯벌이 만들어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평균 수심이 55m 정도로 얕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3m ~ 9m 정도로 크며, 여러 강의 하구가 있어 계속해서 흙과 모래가 흘러든다. 또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이 파도의 힘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퇴적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 넓고 완만한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갯벌은 식물 플랑크톤을 포함한 식물 164종, 동물 687종이 살아가는 터전이며,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물새 중 47%가 주요 서식지로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손꼽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photo by 에단호크

경기 갯길을 걸으며 갯벌은 모든 것을 묵묵히 품어주고 덮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갯벌의 재색 평원은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악하고 시끄러운 것들을 침묵 속에서 받아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을 배척하고 기피하고 혐오하는 데 갯벌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품어주고 안아준다. 또한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며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갯벌 내의 미생물이 육상에서 배출되는 유기 물질들을 분해시켜 수질을 개선해 준다. 상처받거나 지친 모든 생명체들은 잠시 머물며 회복을 한 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무언의 치료와 치유를 베풀어 주고 있다.    
  
왜 갯벌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고민도 많고 잡념도 많고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생각들은 결국 자신을 괴롭힌다. ‘궁리 끝에 악심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이 많아지고 거듭해서 생각할수록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모아진다. 결국 생각은 자신을 괴롭히는 자원이 된다. 그냥 갯벌처럼 묻어두면 또는 바닷물에 흘려보내면 되는데 파내고 뒤집고 훑어내고 까보며 오히려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 경기 갯벌은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묻어두거나 흘려보내라는 귀중한 무언의 진리를 가르쳐준다. 갯벌 속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서로 생존하기 위해 싸우고 도우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갯벌이 이 모든 생명체들을 품고 안아 주듯이 우리도 우리네 삶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면 된다. 저항이냐 수용이냐의 차이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된다.      
 
둘째 손자가 발달 지연으로 가족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작년 5월에 알게 되어 지금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우연히 경기 둘레길을 시작한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우리 부부는 매주 월요일에 딸네 집에 가서 금요일 오후 두세 시경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월요일 새벽에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서 차에 싣고 갈 때에는 몸도 마음도 무겁다. 아내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음식 준비를 한다. 금요일 오후에 딸네 집에서 나오면서 해방이 된다. 홀가분하고 자유가 느껴지며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바로 경기 둘레길을 걷기 위한 배낭을 꾸리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와 기쁨이 일주일간의 피로를 풀어준다. 마치 갯벌이 모든 생명체들을 품듯이. 어쩌면 토요일에 진행하는 경기 둘레길 덕분에 일주일을 잘 견디고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딸네 부부와 우리 부부 모두 제법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다행스럽게 손자도 정상발발 수준으로 많이 올라왔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 위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만약 경기 둘레길이 없었다면 무슨 희망으로 또는 어떤 삶의 활력으로 이런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경기 둘레길 리딩을 자처하지 않았다면 힘든 길은 피해 가고 편안한 길만 조금씩 걸으며 위축되고 불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소 무리한 프로젝트지만 시작을 했고,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고 걸으며 삼리적인 어려움과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함께 걸은 길동무들의 힘이 매우 컸고, 그분들 덕분에 이 길을 즐겁게 걷고 있다.      

photo by 에단호크

갯벌이 크게 와닿았던 이유를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우리네 삶은 굴곡의 연속이다. 썰물과 밀물이 있듯이 행복과 불행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썰물과 밀물의 반복의 퇴적물이 갯벌이다. 행복과 불행의 반복된 퇴적물이 지금의 자신이다. 퇴적물은 지혜이자 어리석음이고, 행복이자 불행이고, 사랑이자 미움이다. 양쪽 모두를 수용한 것이 바로 갯벌이고 지금의 자신이다. 썰물이 밀물을 거부하거나 밀물이 썰물을 밀어낸다면 갯벌이 생길 수 없다. 행복이 불행을 밀어내거나, 미움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      
 
길을 걸으며 무더위 속을 걷기 싫을 때고 있었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도 걷기 싫을 때도 있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기를 거부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심리적으로 거부했지만, 어떻든 걸었다. 그리고 이제는 날씨, 거리, 높낮이, 주어진 자신의 상황과 상관없이 걷고 있다. 거부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어떻든 할 일은 하고 길은 걸어야 한다. 수용하며 주어진 일을 하거나 걸으면 몸은 힘들 수는 있지만 마음은 가볍다. 저항은 심리적 불편함을 만들어 주고, 수용은 심리적 평온함을 만들어준다. 오래 걸으면 몸은 지칠 수밖에 없고, 오래 살면 몸은 노쇠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길을 걷는 것도 또 살아가는 것도 심리적으로 저항을 하느냐 아니면 수용하느냐에 따라 가벼운 삶과 발걸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와 같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심리적 저항이냐 수용이냐에 달려있다. 경기 갯길은 이 소중한 가르침을 가르쳐주기 위해 나를 이 길로 이끌었고, 무언의 가르침을 받았다. 경기 갯길은 내게 스승이다.

photo by 에단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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