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함께 오래오래 걷기 위해서는

걷고 2022. 11. 19. 23:45

 드디어 평택을 걷는다. 평택 초입은 신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지난번 끝난 지점에서 군문교를 건너며 이 길은 시작된다. 안성천 둔치와 습지에는 억새밭으로 장관을 이룬다. 둔치 일부는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드는지 억새밭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공사를 하는 차량과 장비들로 가득하다. 그 공사만 없었다면 억새밭의 모습을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다. 억새밭이 사라진 텅 빈 공터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군문교를 건넌 후 마을을 지나간다. 마을의 모습은 조금 전에 봤던 신도시 느낌과는 전혀 다른 산만한 분위기다. 주택과 밭,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평택 향교를 지난다. 이 마을 이름은 예전의 객사(客舍)가 있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객사리다. 마을의 이름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마을을 지나니 미군부대가 나온다. 가끔 이름을 들어봤던 유명한 미군부대다. 미군부대 주변의 짧은 산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그 길을 지나 로데오 거리를 걷는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유명한 거리라고 예상을 했는데, 막상 로데오 거리는 마치 죽은 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활기를 느낄 수 없다. 다만 상호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가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을 찾을 수 없어서 분식집 같은 곳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한다. 그다지 추천할 만한 식당은 아니다.      

로데오 거리를 지나 작은 토성 농성이 보인다. 마을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토성의 편안한 모습이 한국적이어서 오히려 반갑다. 조금 더 걸으니 안성천이 나타난다. 안성천은 서해바다로 이어진다. 왼쪽에는 미군 부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안성천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 자전거 도로가 있고, 경기 둘레길 44코스는 이 도로를 따라 걷는다. 평지로 이루어진 길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미군 부대가 그 넓은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전쟁의 위험이 없다면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부지일 것이다. 길은 걸어도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긴 길이다. 미군부대는 철조망으로 담을 만들어 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철조망 안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뛰고 있고, 우리는 철조망 밖의 도로를 걷고 있다. 같은 대한민국 땅임에도 그들과 우리는 철조망으로 분리되어 있다.      

 

경기 둘레길 44 코스는 평지임에도 걷기 쉬운 길은 아니다. 난이도는 낮지만 평지로 길게 이어진 도로는 발의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한다. 걸어도 줄어들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다행스러운 점은 오늘은 걷기에 아주 최적의 날씨여서 그나마 조금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바람도 시원하고, 날씨도 덥거나 습하지 않고, 싸리비로 구름을 쓸어놓은 것 같은 하늘의 평온한 풍경은 걷기에 아주 안성맞춤 환경이다. 만약 이 길을 한 여름에 걸었다면 매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이 길은 혼자 걷기에는 인내가 필요한 길이다. 하지만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 있기에 즐겁게 걸을 수 있다.      

먼 길을 가려면 길동무와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멀리 가는 것보다 혼자 빨리 가는 것을 추구한다. 욕심 때문이다. 함께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아니고 자신이 남보다 잘 살아야 된다는 이기심 때문에 혼자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쉽게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바로 다른 목적지를 찾아 나선다. 이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러다 삶을 마감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여 후회를 하기도 한다. 가끔 길을 걸으며  길을 걷는 이유는 욕심과 이기심, 이 두 가지를 내려놓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빨리 가려고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빨리 지친다. 그리고 결국에는 중도에서 포기하게 된다. 아니면 도착하더라도 이미 치료가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에 병을 얻게 된다. 병을 얻은 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함께 걸으면 웃으며 즐겁게 도착할 수 있고, 좋은 추억과 에너지로 다음 길을 준비할 수도 있다. 함께 걸으며 서로 의지하고 용기를 주며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추억으로 남은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함께 간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모습을 버린다는 것은 이기심, 욕심, ‘나’라는 생각을 버리거나 덜어내는 일이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함께 걷는 길동무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다. 자신을 버리면 버린 만큼 빈 공간이 나타나게 되고, 그 빈 공간에 타인의 마음과 요구와 이해심을 채워 넣을 수 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벽을 허물고 남과 함께 살아가는 보다 넓은 마당을 만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고 아는데 자신만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고 타인의 단점만을 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단점을 좋은 마음으로 알려주며 조언해 준다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은 당당하고 떳떳하고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며 오히려 조언을 해준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많은 아픔을 겪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 자신을 허무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도 자신의 거울이 되는 길동무들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 걷는다.     

 

경기 둘레길을 걸은 지 7개월이 지나고 있고, 그간 60개 코스 중 총 25개 코스를 걸었다. 아마 이 길을 혼자 걸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행복하게 걷고 있고, 앞으로도 즐겁게 걸으며 잘 마무리 지을 것이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 자주 만나 친해지면서 좋은 면도 있지만 불편한 일이 발생할 수도 한다. 친하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동등한 동호회 회원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도 않고 있는지 나 자신을 포함하여 각자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약 7개월 이상 걸어야 이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함께 완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버리고, 그 안에 다른 길동무의 마음을 채워 넣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래 함께 걷기 위해서 조금 양보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함께 즐겁게 걷기를 바란다. 친할수록 더욱 예의를 지키는 것이 오랫동안 좋은 우정을 쌓아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경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걷기 마당의 모든 회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며 오래오래 좋은 우정을 쌓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길 마음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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