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경기 둘레길 43코스 후기> 길은 추억이다

걷고 2022. 11. 12. 23:07

비 소식이 있는 날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오나 우리는 걷는다. 가끔 사람들이 왜 걷는지 궁금해진다. 나 역시 아직도 내가 걷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걸으면 몸과 마음이 활기 가득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걷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걷기도 한다. 또는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도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도 하고,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도 한다. 따라서 날씨는 걷는 것과 무관하다. 아직도 날씨가 걷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사람은 아마 걷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 거나 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생각임에 불과하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뒤집어쓰고 걸으며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춤추듯 걷는다면 이 또한 큰 즐거움이다. 자연의 노랫소리에 맞춰 발걸음이 춤을 춘다. 그리고 일부러 웅덩이에 발을 담가보며 동심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렇다. 걷기는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동심은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내 것과 너의 것이라는 구별이 없는 마음이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장난감이 친구의 것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성립된다. 놀고 있는 장난감을 누군가가 뺏으면 울기는 하지만 금방 잊고 함께 어울려 논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너와 나의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울고 웃으며 함께 어울려 지낸다. 동심을 되찾게 되면 너의 고통이 나의 것이 되고, 나의 즐거움이 너의 것이 된다. 너와 나의 벽이 허물어지며 나의 세상이 넓어지고 너의 세상도 넓어진다. 그리고 넓고 큰 우리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길동무들과 길을 걷는다. 한 동무가 넘어져 무릎을 다치니 다른 동무들이 그 동무의 배낭을 메고 걷는다. 서로 배낭을 메겠다고 양보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동심을 되찾고 친구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것을 느끼며 그에 합당한 결정과 행동을 한다. 길동무가 발이 아프다며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고 걷고 있으니 다른 동무들이 그 속도에 맞춰 걷는다. 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물을 나눠주고, 음식이 필요하면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음식물을 나눠주며 서로 웃는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니 온 세상이 천국이 된다. 그렇다. 천국을 느끼기 위해, 또 천국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걷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천국은 일상 속에 늘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누군가가 다쳤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길만 간다거나, 목이 마른 사람 앞에서 물을 버린다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지옥과 천국은 별도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길을 걸으며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걷는다.      

오늘은 경기 둘레길 43코스를 걷는 날이다. 32코스에서 43코스가 경기 둘레길 코스 중 ‘경기 물길’ 구간이다. 43코스를 걸으며 ‘경기 물길’을 마친다. 이 길은 안성 들판을 걷는 길이다. 안성천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다. 목장과 포도 농장이 많다. 사람들 인심도 좋을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소를 키우고 작물을 키우며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의 인심은 당연히 좋을 것이다. 비록 하천에 물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오늘 내린 비로 하천에 생기가 살아날 것이다. 가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나타나 길을 방해하기는 하지만, 잠시 주변을 살피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옷 위에 빨강 망토를 걸치고 있다. 우리를 향해 인사하고 우리도 반갑게 화답한다. 산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활기찬 모습과 밝은 기운이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런 상황이 좋은 추억이 되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경기 물길’을 걸으며 많은 길동무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길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고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이 선물한 추억이 길을 기억나게 만들어준다. 길은 추억이다.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만든 추억이 오랜 기간 기억 속에 남는다. 길동무들이 떠나도 우리는 그 길동무들과 길을 기억한다. 사진으로 기억하고 글로 기억하고 머릿속 상상으로 기억한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만남은 헤어짐이다. 그럼에도 만남은 설레고 헤어짐은 안타깝다. 꾸준히 참석했던 어떤 길동무들은 당분간 참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길동무들이 만들어 준 좋은 추억들이 그들을 기억나게 하고, 그들과 함께 걸었던 길을 기억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경기 둘레길을 찾기도 하고, 경기 둘레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여전히 헤어짐은 익숙하지 않고 늘 낯설다. 그와는 반대로 새로운 만남은 늘 설렌다.      

‘경기 물길’을 마치며 간단한 의식을 치른다. 케이크를 준비해서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인다. 하나의 초는 ‘경기 평화 누리길’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의 초는 ‘경기 물길’을 의미한다. 경기 둘레길 네 개의 구간 중 두 개의 구간을 마친 일종의 기념 의식이다. 의식을 중요시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의식을 통해 그간 걸었던 길과 길동무들과 쌓은 추억을 떠올린다. 다음 주부터는 경기 둘레길 44코스부터 60코스를 걷는 ‘경기 갯길’을 시작한다. 그간 함께 걸은 길동무들도 함께 걷겠지만, 새로운 길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다. 사람과 길을 만나는 설렘도 길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이고, 길을 걷는 이유 중 하나이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경기 갯길’을 걸으며 어떤 길이 펼쳐질지, 어떤 상황을 마주치게 될지, 어떤 추억이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길동무들을 만나 길을 걷고 수많은 상황들과 마주치며 추억을 만든다. 길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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