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FIRE족(族)이 되신 스님

걷고 2022. 10. 8. 09:21

오랜만에 반가운 스님을 만나서 아주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한참 힘든 시기에 지인 소개로 찾아간 봉화 축서사에서 만난 서천 스님이다. 그 당시 스님은 총무 소임을 보고 계셨고, 영어에 능통하시고 사진을 잘 찍으시는 멋쟁이 스님이다.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없어져서 10년 이상 뵙지 못했다. 최근에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우연히 연락이 닿게 되어 카톡으로 연락하다가 스님께서 서울에 오실 일이 있어서 어제 만나 뵙게 되었다. 만난 지 오래되었지만 마치 며칠 전 만난 분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만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상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마음 복지관에서 만났다. 복지관 내에 명상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좌복 위에 앉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니 산중 사찰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느낌도 난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느냐가 분위기를 결정한다. 장소도 제공해 주시며 샤인 머스켓과 커피까지 준비해 주신 마음 복지관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님께서 웃으시며 하신 첫 말씀이 FIRE족이 되셨다고 한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고소득층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한 생활양식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을 의미하는 FIRE족이 되셨다고 해서 놀랐다. 말씀을 들어보니 30년 이상 사찰에서 소임을 맡으면서 모아 두었던 급여로 홀로 지내실 수 있는 거처를 지방에 만드셨다고 한다. 이제 사찰 소임도 모두 내려놓고 수행에 집중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셔서 축하의 말씀을 드렸다. 수행하는 것도 덕이 있어야 가능하다.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주어진 모든 환경 자체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것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먹고 살 걱정까지 하면서 수행에 집중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탁발을 하며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요즘 탁발을 하며 수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이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50대 후반의 스님이 FIRE족이 되셔서 수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니 그저 고맙고 좋아서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다.

‘지공 거사의 금융 문맹 탈출기’를 써서 브런치 등 SNS에 올린 글을 읽으셨다며 주식에 대해서 물으셨다. 금융 문맹을 갓 탈출한 초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책 몇 권 추천해드리고, 다음에 주식 전문가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최근에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거처를 준비한 후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평생 공부하며 살아가셔야 하기에 재테크를 고려하고 계신 것 같다. 좋은 생각이다. 거처를 마련하신 후 법회를 열지도 않고 홀로 수행에만 정진하시는 스님께서 현실적인 상황을 파악하신 후 방편을 찾는 것은 매우 현명한 생각이다. 수행자 역시 먹고살아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편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래야 수행에만 집중하며 떳떳하게 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
수행자나 재가자가 지니고 있는 고민은 같다. 다만 추구하는 삶의 방편이 다를 뿐이다. 수행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 삶의 방향이자 목표이다. 재가자는 일상 속 가정을 돌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삶의 방향이자 목표이다. 다만 수행자나 재가자나 각자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실천하는 방법이 다르고 다양할 뿐이다. 게다가 사람이기에 먹고살아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거나 다른 방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스님께서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수행자가 수행에만 집중해야지 무슨 재테크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도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스님도 재테크를 하시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이 아니고, 수행에 집중하기 위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에 불과하다. 돈벌이하는 시간을 아껴서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이 선결되어야만 한다. 진심으로 스님의 재테크를 응원한다.

스님께서는 법정스님의 책 내용 중 요즘 상황에 맞는 말씀을 골라 당신의 목소리로 녹음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하시고 있다고 한다. 비록 신도들을 직접 만나 법문을 펼치거나 법회를 열지는 않더라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일반 대중과 소통을 하고 계신다. 수행자가 다른 수행자의 말씀을 옮기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고, 겸손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수행자라는 아상(我相)을 지닌 수행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시끄럽게 떠들거나 마치 자신의 언행이 최고의 진리인 양 다른 사람들의 법문이나 행동에 대해 비난을 하기도 한다. 공부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쉽게 판별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비난을 하거나,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참다운 수행자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스님께서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을 옮기는 작업은 매우 용기 있고 훌륭한 작업이다.

스님께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연금이 나중에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니 국면연금에 지금이라도 가입하셔서 매월 일정 금액을 납입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을 낭독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당신의 말씀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도 말씀드렸다. 스님께서는 내게 걷기 명상을 하는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셨고, 걸으며 염불 하는 것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얼마 전부터 혼자 걸을 때에는 정근을 하고 있다.

스님과 나는 공통점이 있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수행자와 재가자로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꾸준히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사람들과 소통에 관심을 갖고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혼자 또 함께 살아가는 중요성과 방법을 잘 알고 자신만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한 가치를 추구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코리아 둘레길을 매월 일주일 씩 함께 걷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근처 식당에서 초당 순두부로 점심 식사를 하신 후 바로 거처로 내려가시겠다고 한다. 만남도 편안하고 헤어짐도 군더더기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만나는 과정도 복잡하고 헤어지는 과정은 쓸데없이 시간만 질질 끌기도 한다. 정갈한 만남과 미련 없는 헤어짐도 좋다. 언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헤어지고 언제든 만나면 마치 어제 만난 듯 편안한 만남도 좋다.

서천 스님, 어제의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공부 잘 이루셔서 성불하시길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https://youtu.be/THHkC5skY9g?t=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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