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둘레길 34, 35 코스 후기> 우리는 팀이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걷기는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몸의 동작일 뿐이다. 따라서 걷기는 뇌 운동이자 몸 운동이다. 뇌는 마음의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시스템이 뇌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걷기는 결국 몸과 마음을 위한 건강한 운동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점검하지 않고 걷는다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걷기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걷기 방식과 패턴, 운동 시간과 거리 등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걷기는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명의이다.
어제 걸었던 경기 둘레길 34, 35 코스는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34코스는 공원과 캠핑장을 걷는다. 여주대교 옆 연인교를 건너면 영월루와 발아래 펼쳐진 여강을 볼 수 있다. 공원에 설치된 조각품들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다만 17명이라는 대식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전체 일정을 고려해서 자세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한강문화관 3층에 시민을 위한 휴식 장소가 있다. 여강을 쳐다보며 준비해 온 점심 식사를 즐긴다. 각자 음식을 충분히 준비해 와서 나누는 모습은 걷기의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이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단 한 번도 음식이 부족해서 배고픈 적은 없다. 오히려 평상시보다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부족함보다는 약간의 풍족함이 주는 여유로움도 좋다.

날씨 탓인지, 또는 걷기 흐름이 자주 끊긴 탓인지 길동무들이 모두 힘들어한다. 가을 폭염이라고 하는 말을 충분히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다. 공원길도 있지만, 차로를 따라 걷는 태양을 가릴 수 없는 길도 있다. 무더운 날씨는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주 쉬다 보니 걷기 흐름이 끊기고 가야 할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길동무들은 점점 더 지쳐간다. 중간에 두 분은 걷기가 힘들다고 해서 기사님에게 연락드려서 픽업을 부탁드렸다. 차량을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길동무들은 다시 한번 힘을 내어 걷기 시작한다. 35코스는 걷기에 아주 환상적인 길이다. 야트막한 숲길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다만 길동무들이 지쳐가고 시간이 지연되고 있기에 마음이 급해 길을 충분히 즐길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중간에 잠시 쉬는데 한 분이 어지러움을 호소한다. 잠시 쉬며 회복될 시간을 기다린다. 다행스럽게 빨리 회복되어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걷는다. 한분은 지쳤음에도 꾹 참고 걷는다. 두 분의 남성 회원들이 신사도가 발휘한다.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바로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걸으며 속도를 맞춰 걷는다. 그리고 웃는다. 그 웃음소리와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말,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산에 가득하다. 그런 아름다운 충만함이 좋다.
예상 시간보다 약 30분 늦게 도착했다. 선발대를 먼저 보내서 산길 아래까지 차량 이동을 부탁드렸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지체되면서 산길에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다. 조금 더 걷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35 지점의 도착점까지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스탬프는 다음에 찍어도 된다. 빨리 걷기를 마무리하고 승차해서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 안에서도 부주의로 인해 한 분이 무릎을 다치셨다. 그분께서 빨리 완쾌되어 다시 경기 둘레길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시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많은 인원이 모여 함께 걸으니 예상치도 못한 일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함께 슬기롭게 해결해 나간다.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진행되고 그 상황에 맞춰 움직이며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걷는데 늘 좋은 일과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혼자서 하루를 보내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많을 것이다.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도 있다. 타인의 불편한 모습을 보며 자신 속에 그런 모습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배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팀이 움직이는데 자신의 개인적인 불편함을 드러내며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있는지도 스스로 반추해 볼 필요도 있다. 리더인 나는 과연 리더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팀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팀워크는 팀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팀에 해가 될 수 있는 언행을 자제하는 것이다. 기준은 아주 명확하다. 나의 몸과 마음, 언어가 팀과 팀원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가 기준이 된다. 함께 걸으며 타인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자신을 비춘다. 우리가 함께 걷는 이유이다.

총무 역할을 해 주신 비단님은 걷는 내내 힘든 분들을 위해 차량을 불러들이고 픽업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걷기를 즐길 수 없었다. 스틱보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내내 걸었다. 마지막 지점에서는 선발대로 서둘러 뛰듯이 걸으며 차량을 숲길 끝나는 지점까지 이동시키는 일까지 했다. 그 모습이 보니 너무 마음 아프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차량 예약에서부터 중간 픽업까지, 회비 수금부터 정산과 관리까지, 너무 많은 짐을 드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비단님도 걷기 위해 나오신 분인데 다양한 업무 처리로 인해 정작 자신의 걷기는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더욱 미안하다. 모두 리더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모든 참석자들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반성과 고민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리더가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1년 이상 경기 둘레길을 걸어야 한다. 긴 여정이 남아있다. 함께 고민하고 점검하며 모두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호회는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모임임에는 확실하나, 한 개인의 즐거움이 다른 개인의 즐거움을 앗아간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팀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행동과 언어는 자제해야만 한다. 함께 즐겁게 걷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태도이다.
길을 걷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걷는 과정을 즐기는 일이다. 그간 경기 둘레길을 빨리 마치고자 걷는 거리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걷는 거리를 줄여서 함께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 둘레길을 완주하는 기간이 지연되더라도 조금 느리고 여 있게 걸으며 과정을 즐기는 걷기를 지향해야 한다. 중간에 픽업 서비스나 하차하는 것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편안하게 걷고 걷기에 집중하기 위해 차량을 준비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관광버스처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하기 위해 차량을 준비한 것이 아니다. 출발과 마무리를 함께 하는 것이 동호회 활동의 예의이다. 참석자들도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참석하길 바란다. 또한 자신의 체력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해서 참석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참석한 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동참해야 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먼저 돌아갈 경우에는 각자 알아서 가야만 한다. 그리고 사전에 중간에 먼저 간다는 것을 리더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동호회 활동의 묵시적 약속이다.
많은 인원과 걸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하며 다양한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개인적으로는 규칙과 규율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팀이 움직이기에 만들고 지켜나가야만 한다. 많은 일들이 있음에도 조용히 걷기를 즐기며 웃고 대화하며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 주신 대부분의 참석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길을 헤매는 리더를 대신에서 길잡이를 해 주시는 꽃가루님, 선발대로 빨리 움직여서 차량을 대기시켜주는 히란야님,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후미를 책임져 주신 다니엘님과 도니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