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69] 온라인 세상
날짜와 거리: 20210127 10km
코스: 불광천 – 한강 공원 – 메타세쿼이아 길 – 문화 비축기지 – 집
누적거리: 3,08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손녀가 우리 집에서 하루 종일 놀다 돌아갔다. 딸아이가 출산 휴가를 받은 상태여서 가끔 쉴 겸 해서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손녀가 온다는 날을 기다리는 기쁨도 있고, 손녀를 보는 즐거움도 있으며, 함께 얘기하고 노는 아름다운 추억도 있다. 이제 제법 말을 잘해서 언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 물론 손녀는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는 듣고 대답하지만,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못 들은 척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먹고, 움직이고, 떠들고, 논다. 늘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평생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작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귤을 까먹기도 하고, 삶은 밤을 스푼으로 파내서 먹기도 한다. 물론 흘리는 것이 많기도 하지만, 스스로 하려는 모습도 대견해 보인다. 먹여주면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다.
동생이 곧 생긴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는 한 것 같은데,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다. 독차지했던 사랑의 상실을 경험해야만 하는 31개월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조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독립하는 힘을 키워나간다. 건강한 상실은 건강한 자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힘든 시간이겠지만, 온 가족의 노력으로 잘 극복하고 홀로 설 수 있는 아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늦은 오후에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기는 하지만, 두꺼운 겉옷을 입고 나가서 걷기에 좋은 날이다. 넥 워머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나갔다. 처음에는 약간 쌀쌀함이 느껴졌는데, 걸으니 목 주변부터 열이 발생하기 시작해서 온 몸이 따뜻해진다. 추위 속 따뜻한 몸을 느끼며 걸으면 마치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걷는 것처럼 안온함과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평일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한강변부터 마스크를 벗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없다. 이런 날씨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홀로 여유롭게 걷는 재미는 남다르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뒷짐을 지고 걷는다. 오전에 컴퓨터 작업을 하느라 의자에 오랜 시간 앉아있어서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체형을 바로잡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뒷짐을 지면 허리와 어깨, 가슴이 펴지고, 고개도 꼿꼿하게 세우고 걸을 수 있다. 처음에는 어깨에 등 부위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부위가 펴지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지는 노을을 보고 시원한 한강 바람을 쐬면 걸으며 쓸데없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끔은 발의 감각에 집중하기도 한다. 두 시간에 10km 정도 걸었다. 그다지 늦은 속도도 아니고, 빠른 속도도 아닌 내게 아주 적당한 속도다.
오후에 노원 50 플러스 센터에서 문자로 연락을 받았다. 2021년도 강사 신청받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선발되었다는 좋은 소식이다. ‘책을 통해 배우는 인생 2막’이라는 주제로 매회 책을 선정해서 한 시간은 강의를 하고, 남은 한 시간은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2시간씩 6회 강의를 진행한다. 인터넷으로 공고를 보고, 강의계획서를 다운로드하여 작성해서 이메일로 발송했다.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문자로 받았다. 강사들과의 오리엔테이션을 이틀 후 랜선 간담회로 진행한다. 강의 일정 및 강의장에 대한 배정 등을 랜선 간담회를 통해 결정한다. 확정된 내용은 다시 노원 50 플러스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참석자들은 게시된 강의 내용을 확인 후 온라인 상으로 신청을 하게 된다. 강의 자료는 PPT로 준비하고, 강의실에서 프로젝트를 통해 화면에 비추며 강의를 진행한다. 강의 마친 후에는 강사와 강의에 대한 평가를 온라인을 통해 받는다.
어느새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SNS 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세월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다. 온라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콘택트’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전통 도공으로 사시는 한 분과, 현대 방식으로 화분을 제작하는 분이 나왔다. 두 분은 오랜 친구 사이로 평생 도공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먹고살기 위해 한 분은 기계를 사용해서 화분을 제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분이 전통 도예 작업을 고수하는 친구를 불러내어 현대의 흐름에 따라가면서 전통 방식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따뜻한 조언을 위해 만든 자리였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전통 도예 작업을 하시는 분은 마치 세상과 등진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튜브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현대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어서 보는 내내 안타깝기도 했다. 한국 전통 도예 작업을 하는 장인 정신은 매우 중요하고 고귀한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세상과 등지고 또 세상의 흐름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바로 이런 상황에 아주 적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옛 것을 연구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지혜. ‘온고이지신’은 바로 역사다. 과거가 과거로 묻히거나 현재와 단절된다면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에 맞춰 살아가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역사이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배우고, 우리는 지금 세대의 아이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60대 중반의 내담자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한 이 분은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오면 가장으로 또 성공한 직장인으로 잘 살아온 분이다. 임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직접 할 일이 거의 없었던 내담자는 퇴임 후 짜증이 많이 났다.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작업과 온라인 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등으로 인해 짜증과 불편함이 많이 올라왔다. 그런 반복된 일로 매사 귀찮고, 나아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불신을 하게 되면서 무기력과 우울이 발생하게 된 사례이다. 경험을 통해 그분의 마음을 잘 공감할 수 있었다. 컴퓨터와 SNS 등을 통한 소통을 시도하면서 조금씩 변화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콘택트’를 보면서 상담했던 그 내담자가 떠올랐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계시리라 믿는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상황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부쩍 늘었다. 적응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나 역시 물론 지금도 몇 가지 일은 딸이나 아내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내도 내게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끼리 서로 도울 일이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일상 속 웬만한 일들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손녀는 아내의 휴대전화 갤러리에 들어가서 자기 사진을 꺼내본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스스로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는 이런 일들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삶의 일부에 불과하다. 마치 자고 일어나 밥 먹고, 놀고, 화장실 가고, 잠자는 일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 온라인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