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어젯밤 길동무들과 함께 즐겁게 걷고 오랜만에 과음하고 들어와 편안한 숙면을 취했다. 술에 취해 자는 수면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나 스스로 숙면을 취했다고 느끼고 있으면 그 느낌이 맞을 것이다. 굳이 실험적 연구 결과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현대인들의 건강 상태는 숫자에 의해 결정된다.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모든 질병의 기준은 숫자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숫자이기에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숫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기준 정도로 생각하고 스스로 조절하면 된다.
아침 7시경 눈을 떴다. 오늘은 저녁 걷기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 아무 할 일도 없다는 것이 예전에는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아무런 할 일도 없는 하루가 고맙고 편안하다. 굳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또 창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편안함이 만들어주는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이 좋다. 오늘 무엇을 할까? 이런 생각 자체도 뭔가를 해야만 된다는 강박적 사고로부터 나온 것이다.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조차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하루를 편안하고 충만하게 보내면 된다. ‘어떻게?’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오랜 기간 익숙해진 경험에서 나온 자동적 사고이다. 이 질문도 흘려보낸다. 머릿속 생각은 ‘나’가 아니라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글이 떠오른다. ‘어떻게 또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보다는 ‘머릿속 생각’과 ‘나’를 분리시키고 그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노력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
나쁜 버릇 중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자주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몸에 남아있는 술기운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잠을 더 자는 습관이다. 이미 충분히 잤는데도 다시 잔다. 무기력의 대표적인 신체적 표현 방법이다. 이 나쁜 버릇을 없애버리고 싶다. 일 년에 나쁜 버릇 한 가지를 버릴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어젯밤에 길동무가 한 얘기가 떠올랐다. 여름에는 더우니 아침 걷기를 하는 것도 좋다는 얘기다. 그렇다!! 술도 깨도 몸도 깨고 정신도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아침 산책’이다. 다행스럽게 걷기는 많이 익숙해져 있는 운동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날씨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 후에 냉장고에서 어제 먹다 남은 양파 조림과 밥을 섞고 계란을 하나 깨어 넣고 프라이팬에서 볶았다. 간을 보니 아무런 간이 배어있지 않아 싱겁다. 김 가루를 뿌리고 김치 몇 점 올리니 훌륭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접시에 담지 않고 프라이팬을 그대로 들고 와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그릇을 사용하면 설거지를 해야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용하는 그릇을 줄이려 노력한다. 식사 후 아내가 준비해 놓은 파프리카와 사과, 복숭아를 먹는다. 다시 냉장고를 뒤져 본다. 낫또가 있다. 낫또도 한 개 꺼내서 젓가락으로 여러 번 휘저어 먹는다. 건강에 좋다고 해서 오랜만에 먹어봤다. 아침에 이것저것 챙겨 먹는 이유는 걷기 위한 준비작업이지 먹는 것을 좋아하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서 먹는 것은 아니다. 걷기 위해 아침 식사를 할 뿐이다. 식사 후에 소화를 시키기 위해 걷는 것과 겉으로는 같은 행동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걷기가 우선이냐, 아니면 식사가 우선이냐는 큰 차이가 있다.
집 앞에 있는 불광천을 걷는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불광천은 생동감이 넘친다. 자전거도로와 보행로 옆 꽃밭에 장미가 한창이다. 우측에 흐르는 불광천 옆에는 수많은 풀들로 가득하다. 싱그럽고 충만한 나무와 잡풀들의 모습을 보고 걷는다. 어젯밤의 활력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아우성이었다. 하루를 잊기 위해 한강변과 술집에 모여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침의 활력은 다시 삶을 시작하는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우리는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어간다. 이 과정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복하고 있다. 어제의 죽음을 디디고 오늘 다시 태어나서 살아간다. 어젯밤에 걸었던 길도 아침에 다시 걸으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아우성이 사라진 고요한 한강변의 아침은 매우 밝고 차분할 것이다. 거의 매일 걸었던 불광천도 오늘 아침에는 다른 느낌이다. 아침 산책을 하자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 그 이유이다. 예전에는 산책이라는 생각도 없이 몸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나와서 걸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아침 산책’이라고 명명하고 자신의 주인으로 몸에게 명령을 내려 몸이 주인의 뜻을 따르게끔 한 것이다. 전에는 몸이 주인을 부렸다면, 오늘은 주인이 몸을 부린 것이다. 주인과 종의 위치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아침 산책’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 앞으로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건널목 저편에 두 명의 어린 초등학생이 보인다. 저 위 언덕길에서 다른 한 명의 친구가 내려오면서 이름을 부른다. 두 명은 뒤돌아보고 친구를 확인한 후 언덕길을 뛰어서 올라가고, 한 친구는 뛰어 내려온다. 곧 만날 터인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뛰어가서 중간에서 만나 웃고 수다를 떤다. 바닥에 작은 벌레를 발견하고는 서로 놀라서 떠들고 웃어댄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또 겪을 많은 경험들은 대부분 첫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또 겪을 많은 경험들은 마지막 경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는 일출이, 내게는 일몰이 된다. 그 아이들에게 단 한 가지라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남겨줄 수 있다면 행복한 일몰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걷기, 글쓰기, 명상, 상담 정도이다.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회 선배로서 자그마한 도움을 주고 싶다.
약 6km를 걷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다시 아침이다. 술 마신 다음 날의 아침이 아닌 평상시의 기분 좋은 아침이다. 아침을 하루에 두 번 맞이한다. 좌복에 앉아 명상을 하고 나니 뭔가가 먹고 싶다. 도넛 한 개와 우유를 한 잔 먹고 음악을 튼다. 작은 스테레오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음량을 크게 틀어 놓았다. 음악을 모르면서 가끔 오늘 같은 날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음악적 허영과 사치를 누리고 싶다. 비록 지금은 사치이고 허영이지만, 언젠가는 일상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침 산책’ 글을 쓰고 있다. 걷고 글 쓰는 재미가 참 좋다. 음악도 있고, 읽는 책도 있다. 이 또한 좋다. 점심 식사 후에는 30분 정도 낮잠을 잔 후에 시원한 도서관에 가서 요즘 읽고 있는 단테의 ‘신곡’을 차분히 읽을 생각이다. 저녁 식사 후 저녁 걷기에 나가 길동무들과 함께 안산을 걷는다. 걷기로 아침을 맞이하고, 걷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