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선물과 에고(Ego)

걷고 2022. 6. 29. 10:28

 편안한 아침이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홀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편안함이다. 최근 약 3 주간 정신없이 분주하게 보낸 것 같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마음은 잠시도 차분히 있지 못하고, 몸 역시 외부 할 일 때문에 외출하며 분주하다. 몸과 마음이 바빠도 근본 자리는 평온해야 하는데 아직도 주변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와중에 오늘 같은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니 마치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아침 식사로 단백질 음료와 어제 선물 받은 크로와상 두 쪽, 사과와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흘러나온다. 클래식에 무지한 사람이 이런 음악을 통해서 정서적 사치를 누리고 싶다. 가끔은 이런 허세를 부리는 것도 괜찮다. 남 앞이 아니고 홀로 허세를 부리니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전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고전으로 불린다. 음악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장인들이 만들어 낸 각종 창작물도 그렇고 건축물도 그렇다. 고전을 보존하는 이유는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음악이나 책 중에 100년 후에도 남아있을 것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가사가 들리지도 않는 최근 음악은 언제 발표된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책들이 발간되지만, 책이 발간되었는지 전혀 모르게 어느 순간 사라진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고 SNS에 올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내가 쓰고 있는 글이 공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글 쓰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취미이자 생활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처럼 오랜만에 맞이하는 선물 같은 하루는 글쓰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면 글도 저절로 차분해진다. 또 글을 쓰면서 글이 나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하고, 표현해주기도 한다.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내용을 글이 끄집어내고 있다.      

 최근에 선물을 많이 받았다. 한 친구에게 ‘갤럭시 워치 4’를 선물 받았다. SNS에 올린  글을 읽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났고, 글이 인연이 되어 도반이 된 친구이자 길동무이다. 그 친구는 나와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인연으로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다. 고맙다. 한 친구는 ‘스탬프 북 커버’를 선물해 주었다. 요즘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각 코스마다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제작된 ‘스탬프 북’이 있다. 1년 이상을 매주 걸어야 끝나는 긴 길이어서 ‘스탬프 북’을 잘 보관해서 들고 다녀야 한다. 걷기의 달인인 길동무가 맞춤형 선물을 해 준 것이다. 선물은 사랑처럼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다. 오래오래 걸으며 건강도 지키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봉사를 하라는 의미다. 어떤 친구들은 피자 쿠폰이나 음료 기프트 쿠폰을 보내주었다.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인연을 맺은 귀한 친구들이다. 받은 쿠폰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모든 선물은 다시 나눔으로 회귀한다. 빵 한 조각으로 모든 사람들이 배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나눔’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함으로써 선한 영향력은 전파되고 감염된다.      

 최근에 ‘에크하르트 톨레’와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을 읽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을 두루 섭렵한 작가들이다. 이 두 작가를 따라가며 그의 사상에 빠져들기도 하고 배우면서 조금씩 정신적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얘기하는 공통점은 불교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불교는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불교와 부합된다는 것은 다른 종교와도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람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편에 불과하다. 깨달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원칙을 체득하면 어느 순간 ‘세수하다 코 만지듯’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두 작가나 종교 모두 ‘에고(ego)’를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에고를 바탕으로 ‘참 자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 행동, 표현 등을 ‘자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면 화를 내고, 자신의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은 ‘에고’의 장난에 불과하다. 그 ‘에고’의 장난에 속아서 울고, 싸우고, 웃고,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불교에서는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말이 있다. ‘에고’를 알아차리면 ‘참 자기’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에고’가 없는 한 ‘참 자기’를 알아차릴 수 없다. ‘에고’는 자신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동시에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 ‘에고’를 통한 깨달음이 바로 의식의 변혁이자 ‘참 자기’를 찾는 유일한 방편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온다. 연민은 친절이고 사랑이다.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은 매우 쉽고 동시에 어렵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한 기도를 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말을 쉽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와닿아 실천하기는 어렵다. 연민과 친절은 ‘에고’가 사라진 자리에 저절로 들어선다. 또는 연민과 친절을 실천하면서 ‘에고’가 사라지기도 한다. ‘에고’와 ‘참 자기’는 ‘빛’과 ‘어둠’이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오고, ‘어둠’이 사라지면 ‘빛’이 나타난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선물하는 마음은 연민이고 친절함이다. 선물하기 위해서 자신의 에고를 다스려야 한다. 자신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친절함을 베푸는 마음이다. 이런 선한 나눔은 쉽게 전파된다. 그렇다고 굳이 비싸고 좋은 물건을 선물할 필요는 없다. 불교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돈 안 들이고 베푸는 일곱 가지 나눔이다. 부드러운 얼굴로 대하기, 칭찬과 격려 등 따뜻한 말하기,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하기, 자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몸을 낮추고 남의 일을 거들어 주기, 자리를 내어주어 양보하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돕기 등 일곱 가지 행위를 뜻한다. 친절을, 연민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무재칠시’다. 친구들의 선물을 통해 친절과 사랑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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