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저녁 침묵 걷기 04] 침묵 걷기와 종소리 명상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가뭄이 심해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다. 단비가 반갑고 고맙다. 비가 그치며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일반적으로 습도가 높으면 불쾌지수가 올라간다고 한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습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 눈, 바람, 태풍 등 자연현상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습도는 비가 올 수 있다는 사전 징후에 불과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불쾌지수가 올라가니 화를 낼 확률이 높아질 수는 있다고 억지로 이해할 수는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자연의 이치에 화를 낸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습도가 높고 비가 온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은 춥다고 짜증을 낼 수도 있고, 덥다고 짜증을 낼 수도 있고, 쾌청한 날씨에도 짜증을 낼 수도 있다. 이미 짜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짜증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노동을 하시는 분들은 습도가 높은 날 근무하시기가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들은 또 노동이 절실한 사람들은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씨에 맞는 준비를 하며 노동에 임하신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당신들이 할 일에 집중하신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달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문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끔 TV에 나오시는 달인들의 얼굴은 늘 미소가 가득하다. 어떤 일을 하시든 최선을 다해 오랜 기간 근무하시며 그 업무의 달인이 되고, 동시에 삶의 달인이 되신 분이다. 날씨나 주어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건강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뵈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존경의 마음을 보내게 된다.
걷기 위해 저녁 7시 30분에 모였다. 비는 그쳤지만 습도가 높은 날씨다. 하지만 한강변의 바람은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답게 날씨에 약간은 둔감한 듯, 또는 무심한 듯 걷는다. 날씨와 상황에 민감한 것보다는 조금 둔한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둔한 만큼 마음이 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강변에는 낚시를 하시는 분들이 낚싯대를 던져 놓고 의자에 앉아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분들이 기다리는 것이 과연 물고기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낚시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낚시 전문가들에게 이런 질문은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낚싯대를 던져놓고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낚시를 하며, 걸으며 또는 근무를 하며 그 일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다른 생각과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다.
침묵 걷기를 하면서 자신과 대화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하루 종일 할 일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수도 있다. 집에 돌아가도 각자 할 일이 있거나 습관적인 행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 면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 걷기에 나온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침묵 걷기 시간만은 자신만의 시간이다. 잠시 전화기를 꺼두어도 좋을 것 같다. 또는 진동으로 바꾼 후 잠시 연락을 받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바라보듯 오직 침묵 속에서 걷기에만 집중함으로써 하루의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지금-여기에 머무는 순간 과거와 미래는 사라진다. 우리 고통의 대부분은 과거와 미래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에 머무는 순간만이 삶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침묵 걷기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하루를 되새기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동시에 걷기라는 신체 운동을 통해 몸의 감각, 즉 발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생각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감각과 생각은 동시에 상존하지 못한다. 감각을 느끼는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감각은 사라진다.
종소리 명상을 하는 이유도 침묵 걷기와 같다. 종소리라는 청각에 집중함으로써 생각을 떨쳐버리고 지금-여기에 머물게 된다. 걸으며 발의 감각에 집중하듯, 종소리를 들으며 청각에 집중한다.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생각으로부터 해방된다. 종소리를 들은 후 잠시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호흡도 들숨과 날숨을 자각하며 코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몸 명상이다.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 모든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침묵 걷기, 종소리 명상, 호흡 명상은 마음속 여유 공간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마음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 이런 방법을 통해 마음의 휴식을 취한 후 일상으로 편안하고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다.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오늘 하루가 쌓여 과거가 된다. 그리고 어제의 미래가 오늘이다. 그러니 오직 오늘 하루 건강하게 잘 살면 된다.
오늘 걷기 마칠 즈음 월드컵공원에서 종소리 명상과 호흡 명상 시간을 가졌다. 끝나고 소감을 물었다. 어떤 분은 힐링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말씀이 고맙다. 침묵 걷기와 종소리 명상을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맙다. 어떤 분은 명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몸이 이완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고맙다. 짧은 시간에 명상을 체험하고 효과의 일부를 느끼고 표현해 주어서. 어떤 분은 중간에 울컥하셨다고 한다. 고맙다. 침묵 걷기와 종소리 명상을 통해서 심신이 이완되며 억눌렸던 무엇인가가 풀리고 정화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신 것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침묵 걷기와 종소리 명상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제법 많이 해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걷기 동호회이기에 혹시 이런 방식의 걷기 진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나 거부감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면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조절하며 진행해왔는데, 오늘 피드백에 용기를 얻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진행하려 한다. 명상은 특정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심신 건강과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회복시켜주는 방편일 뿐이다. 좋은 피드백에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또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