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75] 감사합니다, 이강대 선생님
날짜와 거리: 20220513 19km
코스: 경기 둘레길 1코스 (대명항에서 문수산성 입구)
평균 속도: 3.8km/h
누적거리: 6.78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드디어 60개 코스 860km에 달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이틀 전부터 배낭을 다시 정비했다. 배낭 속의 비상약을 다시 챙겨본다. 근육통 젤, 근육 이완제, 붕대,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일회용 밴드 등이 있다. 비옷 겸용 방풍 점퍼와 에너지 바 같은 간식, 혹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를 끈,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 충전 용품 등이 들어있다. 배낭 챙기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점심 식사와 과일을 챙겨주겠다고 한다. 걷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우리 나이에 아내에게 무언가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괜히 기분이 좋다. 아내 앞에서 배낭 정비를 하며 설렘이 시작된다. 860km라는 거리가 산티아고의 추억을 불러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던 시간이 산티아고를 걸었던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만큼 산티아고는 단순한 길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경기 둘레길 시작을 하며 자꾸 산티아고가 떠오른 이유는 바로 800km라는 거리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구래 역에서 모이자마자 예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역에서 시작점인 대명항까지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택시 승차장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 가서 대명항까지 가는 60-3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경기 둘레길을 모두 걸었던 지인은 홈페이지에 나온 교통편보다는 미리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을 검색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택시를 타거나 부르는 일도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는 조언도 들었다. 조언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버스 기사님은 정류장에서 조금 늦게 오는 길동무를 기다려주셨다. 잠시 기다리며 전혀 언짢아하지 않으신다. 운전을 하는 모습도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승객들을 편안한 곳에 내려주시기도 하고, 하차 시 태그를 해서 돈을 아끼라며 당부를 하기도 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온도차가 크다.
대명항에 막상 도착했지만, 경기 둘레길 입구가 어딘지 알 수 없어서 헤매고 있는데, 길동무인 꼭개미님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출발부터 길 안내자의 역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리더는 반드시 리더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리더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따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리더와 추종자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앞서 가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뒤따르는 사람이 추종자가 된다. 상황에 따라 리더와 추종자의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우리 모두 리더이자 추종자이다. 나를 따르라고 큰소리치는 정치꾼들이나 조직의 리더들은 결코 국민이나 조직을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만족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리더 역할을 자처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려는 자들은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반면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고 묵묵히 일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분들도 계신다. 이런 분들 덕분에 세상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경기관광공사 운영기획팀 김포시 평화누리길 담당관 이강대 선생님을 길에서 만났다. 우리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시며 힐링이 되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쇄암리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이선생님이 오셔서 인원수에 맞는 물과 평화누리길 배지도 선물해 주셨다. 경기 둘레길과 평화누리길은 1코스에서 11코스까지 일치하는 구간이다. 인사를 하신 후 명함을 한 장 주셔서 보관하고 있었다.
처음 나오신 구상나무님이 뒤쳐져서 선두와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나는 중간에서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며 걷고 있었다. 도니 님이 구상나무님과 함께 걷겠다며 후미를 맡아 주신 덕분에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구상나무님은 쇄암리 쉼터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도니 님은 근육통을 완화할 수 있는 젤로 마사지도 해 주시고, 근육이완제도 꺼내어 주시고, 전해질이 포함된 건강보조제를 물에 타서 마시라고 전해주며 따뜻한 마음으로 간호를 하고 있었다. 이강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를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택시가 쇄암리 쉼터까지 오지 않는다며 당신이 직접 차를 갖고 와서 택시 탈 수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셨다. 20분쯤 후에 도착하셔서 우리들을 태우고, 나와 도니 님은 일행들 있는 곳에서 내려주시고, 구상나무님은 택시 타는 곳까지 태워주셨다. 나중에 안전하게 택시를 태워 보냈다는 문자도 보내주셨다. 감사의 답변을 문자로 드렸다.
전혀 예상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전혀 예상도 못한 분들 덕분에 무사히 첫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의 의지, 기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 세상이 운영되는 방식이 있고, 우리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이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길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교차되는 지점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주어진 상황을 우리의 의지로 또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은 대부분 허사로 끝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빨라 서둘러 해결하려다 지치는 경우가 많다. 마음 편안하게 기다리며 에너지를 아끼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다시 기다리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이강대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선생님께서는 김포를 찾거나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이 길을 걷는 내내 이선생님이 많이 떠오를 것이고, 어쩌면 연락을 드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거롭게 만들어 드리는 일 때문이 아니고 그분의 점심을 준비해서 함께 먹으며 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수산성 앞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역에 내렸다. 식사를 한 후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차례다. 죽음은 기다리는 것이 맞을까, 맞이하는 것이 맞을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하늘의 뜻이니 그 뜻에 따르는 것이 맞을까? 각자 의견을 나누며 서로에게 배운다. 길을 마치고 죽음 얘기를 한다. 길과 인생이 같기 때문이다. 길의 시작과 끝이 있듯이,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 반드시 그럴까? 아니다. 길은 애초부터 시작과 끝이 없다. 마찬가지로 삶도 시작과 끝이 없다. 길은 늘 거기에 그대로 있어왔다. 다만 길의 방향, 모습, 크기만 잠시 변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역시 늘 거기에 그대로 있어왔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삶과 죽음의 모습으로 잠시 스쳐갈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