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60] 기분 좋은 하루
날짜와 거리: 20220414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53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집에 있는 에어컨은 약 20년 정도 사용한 오래된 것이다. 아내는 실외기 소리가 크게 나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실외기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통로 방향에 위치해 있다. 용량이 큰 에어컨이어서 전기 사용량도 많고 오래 사용하다 보니 실외기 소리가 유난히 큰 편이다. 딸네 집이 4월 말에 이사를 가는데 그 집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한다. 딸네 에어컨을 우리 집으로 이전 설치하기로 했다. 몇 년 전에 구입한 딸네 에어컨은 비록 용량은 우리 것에 비해 조금 부족하지만 설치 면적도 조금 작고 무엇보다 실외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거의 없다. 어제 딸네 집에 설치되어있는 에어컨을 우리 집으로 이동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언젠가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어떤 작업을 한다면 괜히 걱정이 앞서게 된다. 사람들이 거칠거나 혹시나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워낙 세상이 험하다 보니 점점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딸아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에어컨 설치 업체를 찾았고, 온라인으로 계약을 한 후에 기사가 오셔서 작업을 진행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든 일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여러 곳을 검색한 후 가격과 서비스 내용 등을 비교하여 계약한다. 전적으로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서비스를 받고 비용을 지급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용인하지 않고, 상호 간의 관계가 성립되고 마무리된다.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그들만의 문화가, 또 그들 세대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서 상호 간에 아무런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기사가 집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고 에어컨을 점검한 뒤 자세한 설명을 해 주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설명도 알아듣기 쉽게 잘해주고, 태도도 친절하고, 사소한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되었고 고마웠다. 기존 실외기 철거 작업을 하는데 일층이어서 집 앞 자그마한 화단으로 내려놓으며 꽃들이 다칠까 배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철거된 실외기를 화단에서 들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꽃들에게 상처를 줄까 조심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는 기사를 보니 마음이 매우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땀 흘리며 열심히 작업하는 것이 안쓰러워 무알코올 맥주를 권했다. 술 한 잔도 하지 못한다며 그냥 냉수를 마시겠다고 한다. 작업하며 발생하는 작은 쓰레기도 바로바로 정리해 가며 매우 꼼꼼하게 작업하는 모습에 신뢰감이 높아진다. 예전의 기사가 한 작업과 이번에 방문한 기사가 한 작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문적이 기술을 갖고 있고, 고객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그 기사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다. 참다운 프로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몸으로 보여준 멋진 기사이다.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고,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무척 흐뭇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아내는 고마운 마음에 오징어 김치 부침개를 만들고, 사과와 오렌지, 찬물을 담은 텀블러를 준비해서 떠나는 기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기사는 고맙다며 우리의 정성을 기꺼이 받았고, 나는 차가 떠날 때까지 밖에 서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앞으로도 에어컨 작업 필요시 오늘 오신 기사에게 요청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만족도 평가는 최고점으로 주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 부부는 아침부터 에어컨 해체 및 설치 작업에 불편함이 없도록 베란다와 거실의 짐을 옮겨 놓으며 일할 수 있는 공간과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 원위치를 하기도 했고, 거실 내 책상의 위치를 변경해서 자리를 잡으니 거실 분위기가 새롭고 넓게 보이기도 하며 뭔가 정리가 잘 된 느낌도 받는다. 책상 위의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책상 주변 용품들도 정리를 하니 책상 위에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내친김에 작은 방 책상 위에 마구 흐트러져 있던 등산 용품도 정리했다. 작은 방에는 피아노, 옷장, 책장, 그리고 등산 용품들이 있다. 피아노는 곧 딸네 집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공간에 책장을 구입해서 서재를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좁은 방에 이것저것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책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마음 한 구석이 늘 불편했는데, 5월 초 정도 되면 서재 정리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에어컨 해체 및 설치 공사가 끝났고, 베란다와 거실 정리고 마쳤고, 작은 방 정리도 마쳤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아내와 나는 마치 우리가 무슨 큰 작업을 직접 한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피곤이 몰려왔다. 둘이 거실에 누워서 30 분 이상 낮잠을 잤다. 피곤해서 저녁도 대충 먹고 TV를 보다 거실에서 저절로 잠에 빠져들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하지 않던 일을 하니 몸에 조금 무리가 온 듯하다. 노화현상을 실감한다. 일상의 활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더 하면 금방 몸에 신호가 온다.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거나 무리하면 병이 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활이 점점 더 단순해지는 이유는 우선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기 때문이고, 복잡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불편하고, 병이 나서 가족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용하고 그에 맞는 언행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이다.
에어컨 기사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며 누군가에게 어떤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할 수 있을까? 단 한 가지라도 누군가, 또는 다른 존재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