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48] 행복한 책 읽기 3회기 (지금은 다시 사랑할 때)
날짜와 거리: 202203121 - 20220322 16km
코스: 서울 둘레길 구파발에서 구기동까지 외
평균 속도: 2,3km/h
누적거리: 6.35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책 읽기 모임 세 번째 날이다. 모임 시작 전에 수녀님 안내로 기도 시간을 갖는다. 수녀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다른 참석자들은 그에 맞는 어떤 문구를 외우는 것 같다.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특히 종교 모임에서는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의식은 영성을 키우고,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준비 과정이다. 가톨릭 의식에 문외한이 나로서는 따라 할 방도가 없으니 합장을 하며 예의를 갖춘다. 사찰에서도 예불을 모시는데 처음 참석한 사람들이나 불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종교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식을 진행하며 의식을 하는 이유와 방식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모임은 책, ‘지금은 다시 사랑할 때’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다. 세 가지 질문이 인쇄된 종이를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무엇인가? 바른 길은 나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 해 보고 싶거나 사랑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들이다. 이 책은 예수회 송봉모 신부가 그간 발간한 책 내용 중 묵상하기에 좋은 내용들을 모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시처럼 짧고 함축적이고 단순하고 읽기 쉽게 편집되었지만, 내용은 깊이가 있다. 저자의 통찰과 수행의 깊이가 느껴진다. 모임 전에 책을 읽으며 좋은 대목에 밑줄을 치고, 다시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중요한 대목을 찾기 어려운 적이 많아서 만든 하나의 습관이다. 질문지를 받고 포스트잇이 붙여진 쪽을 다시 읽었다. 두 문장이 마음을 와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우리는 광야에 초대되었다.” 삶은 선택의 결과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광고 문구가 기억난다. 참 멋진 광고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선택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옷을 입을지도 선택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택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삶의 기준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법정 스님은 물건을 구입할 때, 이 물건이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는지 생각해 본 후 결정하셨다고 한다. 삶의 단순화가 삶의 기준이 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결정의 최종 결과물이다. 따라서 어떤 삶이든 우리가 주체가 되어 내린 결정이기에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탓해서도 안 된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결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보이지 않는 강요는 있을 수 있겠지만, 강요를 뿌리치든 아니면 따르든 그것 역시 자신의 결정이다. 우리 결정의 밑바탕에는 욕심이 깔려있다.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법정 스님의 말씀이 잔잔하지만 큰 파문이 되어 밀려온다.
삶은 광야이다. 광야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고 초대되었다고 한다. 호화 파티에 초대된 것이 아니고, 막막한 광야, 황량한 광야에 초대된 것이다. 누가 왜 초대했을까? 그것도 안락한 삶이 보장된 곳이 아닌 역경과 고난이 매우 심한 광야로 초대한 것일까? 여행은 일상의 안락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영혼을 맑게 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일상의 틀을 부수어야만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이 있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작업이 동시(同時)에 이뤄질 때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광야에서 버티고 견디며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줄(啐)’이고, 초대한 존재와 광야가 바로 ‘탁(啄)’이다. 초대받았다는 것은 선택되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광야에 초대받은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내려주신 큰 선물 보따리이다. 부처님의 가피가 될 수도 있고, 하느님의 은총이나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종교에서 어떤 단어나 용어를 쓰든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초대받은 것이 큰 선물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힘들여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이 선물이라면, 또 광야에 초대된 것이 은총이고 가피라면 삶이 힘들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매사 감사함만 느낄 따름이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바로 주어진 힘든 삶을 거부하기 때문이고, 주어진 즐거운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매 순간 힘들지 않을 수 없다. 힘든 삶을 밀어내지 않고, 좋은 순간을 붙잡지 않으려 한다면 굳이 애쓰며 힘들게 살아갈 이유와 필요조자 없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산다는 의미고, 자연스러운 삶은 힘들지 않다는 의미다. ‘칠십이 종심소욕 불유구( 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이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마음먹은 대로 하되 한 치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삶이라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본보기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려놓으면 어디에도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이 진리를 깨닫기 위한 과정이다. 삶 자체가 광야이자 고해이다. 깨달음의 바탕은 번뇌이고, 행복의 바탕은 불행이다. 번뇌가 있어야 수행할 마음이 생기고, 불행해야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글로 정리해보니 두 번째 질문, ‘바른 길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주어진 삶을 밀어내거나 붙잡지 않고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 바른 길‘이다. 힘든 순간은 그 순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거운 순간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 바로 ’ 바른 길‘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순간에 머물지 말고, 지금-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 과거나 미래에 발목이 잡힌 삶이 아니고, 지금 여기 온전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 바른 길‘이고 ’ 바른 삶‘이다.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의 자신을 허물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부활이고 윤회이다. ’ 자기‘를 버려야 ’ 자기‘를 만날 수 있다. 굳이 구별한다면 전자는 ’ 작은 자기‘가 될 것이고, 후자는 ’ 큰 자기‘가 될 것이다.
얼마 전부터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답답함도 느끼고 있었다. 모임 바로 전날 산티아고에서 만난 길동무와 함께 서울 둘레길 일부를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킬리만자로 길을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취소했다. 나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나 부탄 트레킹 자료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트레킹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산티아고 블루’가 떠올랐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이 일종의 향수병처럼 느끼는 길에 대한 갈증이다. 책 읽기 모임에 가면서 갑자기 산티아고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설렘이 시작되었다. 모임에서 받은 질문인 ‘지금 다시 해 보고 싶은 일?’을 읽으면서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산티아고에 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착각이고 해석이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지만, 가끔 이런 착각은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마지막 질문인 ‘사랑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를 잠시 생각하며 딸이 떠올랐다. 딸이 어릴 적 안아주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손자를 안으며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요즘 들어 사랑, 연민, 자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수행을 한다고 흉내를 내보기도 했지만, 자비심이 없는 수행은 참 수행이 아니고 죽은 수행에 불과하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下化衆生)’, 즉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문구가 바로 모든 수행자들과 불자들의 삶의 지표이자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의 공부는 모두 헛짓이다. 얼마 전부터 공부법을 바꾸어 수행하고 있다. 호흡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후 자애명상을 하고 있다. 부족한 자비심과 연민을 키우기 위한 방편이다. 꾸준히 수행하면 언젠가는 메마른 샘에 연민의 물이 고일 날이 올 것이다.
선택, 광야, 바른 길, 산티아고, 연민, 자비심과 사랑은 모두 연결된 단어들이다. 삶의 광야에서 자신을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과정으로 순례를 계속한다. 순례 과정을 통해서 연민과 사랑을 채우고 나눈다. 결국 나눔과 봉사로 귀결된다. 책 한 권 읽고, 서로 느낌을 나누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니 삶의 방향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마운 일이다. 책모임을 이끄시는 수녀님, 함께 공부하는 마음공부 친구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