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46] 애쓰지 않는 삶

걷고 2022. 3. 19. 17:27

날짜와 거리: 20220316 - 202203118  32km

코스: 상암동 공원 외

평균 속도: 4.3km/h

누적거리: 6.33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떤 삶이 가장 잘 살아가는 삶일까? 하루하루 편안한 삶이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이 아닐까? 심리적으로 편안한 삶,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 신체적으로 편안한 삶, 화목한 가족관계나 원만한 대인관계, 여유로운 시간이 있는 삶 등 개인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비록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결론은 ‘편안함’으로 귀결된다. 부족하거나 갈증 난 부분이 채워진다면 편안함을 느끼며 일순간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조금 후에 원하는 다른 것이 생겨난다.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불편함 - 만족됨 - 편안함 - 다시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 이것이 삶이다. 결국 편안한 삶을 늘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순환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어떻게 이 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책, ‘지금은 다시 사랑할 때’을 읽었다. 책 읽기 모임에서 다음 주 화요일에 이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미리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 모임에 나가면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발간한 책 내용 중 묵상하기에 좋은 내용을 뽑아 주제별로 편집한 책이다. 저자 송봉모는 예수회 신부로 그간 ‘성서와 인간 시리즈’ 10권과 ‘성서 인물 시리즈’ 2권을 발간했다. 책을 읽으며 주요 키워드를 정리했다. 이 키워드를 불교의 관점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려고 한다. (........) 오히려 다른 지팡이를 쥐고 있으면 하느님의 지팡이에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일어서는 시간도 더디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지팡이는 불교의 삼독(三毒), 탐진치(貪瞋痴)를 의미한다. 탐욕은 본능적 욕구를 포함해서 욕심내는 것을 뜻한다. 진에(瞋恚)는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분노를 뜻한다. 마지막인 우치(愚癡)는 탐욕과 진에로 인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삼독을 없애야만 자신의 본래 성품인 진아(眞我)를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삼독이 사라지면 진아는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삼독의 먼지와 때가 가득한 울퉁불퉁한 거울을 통해  바라보면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내면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삼독이 사라지면 모든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면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종교를 찾고 귀의하는 이유는 삼독으로 인해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고통을 통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통을 느끼게 되면 원인을 찾게 되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고통의 패턴을 자각하게 되면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고통이 없다면 수행도 없고, 삶은 무기력에 빠져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번뇌와 삶의 고통은 우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해주는 아주 귀중한 선물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그 선택과 결정의 최종 결과물이 지금 자신의 모습이다. 따라서 현재 자신의 처한 상황에 대해 타인 탓을 하거나, 처한 상황을 부정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타인 탓을 하거나 삶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삶을 가꾸는 데 활용한다면 미래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 참회, 자각, 그리고 꾸준한 노력만이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     

 

 “희망이 있다! 죄인에게도, 창녀에게도, 도둑에게도, 알코올 중독자에게도, 살인범에게도, 희망이 있다. (........) 누구도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서 제외될 수 없다.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다.” (본문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며 1986년 종정 성철 스님께서  ‘부처님 오신 날’ 내리신 법어 ‘생신을 축하합니다’가 떠올랐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중략)” 모든 존재들은 불성을 갖고 있다. 즉 부처님이 될 종자를 지니고 있다. 다만 삼독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온 세상에 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의미지만, ‘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라고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전자의 ‘나’는 존재의 참모습인 진아(眞我)인 ‘나’를 의미하는 것이고, 후자의 ‘나’는 삼독으로 가득 찬 가아(假我)인 ‘나’를 의미한다. 하느님을 믿고 희망을 갖는다는 의미는 누구나 진아를 발견해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런 삶이 바로 책 내용 중 ‘자연스럽게’라는 제목에 나오는 삶이다. “생명을 보존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힘들여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인간은 욕심과 애착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행위 속에 힘이 들어가 있고, 힘이 들어가 있기에 결과적으로 생명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단계의 삶이 되면 굳이 애쓰면 살아갈 일이 없다. 무슨 일을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삶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라는 그림이 있다. ‘소’는 잃어버린 본성, 진아를 의미하는데, 이 ‘소’를 찾는 10단계의 수행과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심우도’는 이 책의 ‘유턴(U-turn)’이라는 제목에 실린 글 “참 자신을 만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다시 찾는 일이다.”와 일치한다. 하느님을 다시 찾거나 참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삼독을 제거해야만 한다. 삶의 고통과 고난, 역경 등이 바로 가장 빠르고 확실한 지름길이자 유일한 통로이다. “하느님은 곡선으로 직선을 그리시는 분이다.”라는 글은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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