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44] 양평 물소리길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날짜와 거리: 20220313 15km
코스: 양평 물소리길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외
평균 속도: 3.1km/h
누적거리: 6.28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아침에 이슬비가 내린다. 이 비로 산불이 진화되길 기원한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역대 최장기 산불로 기록된 울진, 삼척 산불이 진화됐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산불은 기간과 규모로 보아 국내 최대 산불인 것 같다.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분들이 빨리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양평 물소리길 안내를 위해 집을 나선다. 집에서 경의선 철도를 타면 환승 없이 양수역에 도착할 수 있다. 오늘 코스는 양수역에서 국수역까지 걷는 길이다. 역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약속 시간보다 약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주변을 걷는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조용히 걸으며 발의 느낌에 집중해 본다. 역 앞의 식당에 묶여 있는 개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본다. 하늘에는 새들이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끼륵끼륵 소리 내며 날고 있다. 새들의 자유로운 유영처럼 우리는 오늘 자유로운 발걸음을 할 것이다. 이슬비라고 얘기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아주 작은 빗방울이 부서져 천천히 옷에 떨어진다. 떨어진 물방울은 그대로 모습을 유지한 채 옷 위에 매달려 있다. 차마 떨쳐버리기도 안쓰럽다. 방수 옷 입었다는 것을 빗방울에 자랑하듯 그대로 내버려 둔다. 물과 기름처럼 하나가 되지는 못하면서도 어느새 옷과 빗방울은 친구가 된 느낌이다.
총 6명의 걷기 마당 회원들이 모여 인사를 나눈다. 처음 만난 분들도 있다. 참석자들끼리도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다. 인사를 나누는데 한 분이 오페라를 부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밝아진다. 그분의 배낭 역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배낭 뒷부분에 흰 손잡이가 있는데, 그 손잡이를 당기니 작은 천막이 만들어지며 햇빛과 비를 막아준다. 아이디어 상품이다. 그분은 늘 조용히 걷는 분이고 혼자 뒤에서 걷거나 다른 사람들과 말을 잘 섞지도 않는 분인데, 오늘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니 자신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반갑다. 감추고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믿음의 증표이고 편안함의 표현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을 먼저 드러내어 마음을 열면 상대방도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양평 물소리 길은 대부분 평지 위주로 조성된 길이고, 마을과 마을을 넘나들 때 낮은 산을 지나게 된다. 산세는 매우 부드럽고 푸근하다. 이슬비로 젖은 낙엽과 촉촉한 땅을 밟으며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산과 강의 자욱한 안개가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려낸다. 적절한 곳에 길 안내 표식과 리본들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전혀 없다. 또한 출발과 도착 지점을 지하철역으로 만들어서 진출입이 매우 편리하다. 이 길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중간에 설치된 화장실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양평군에서 길 관리를 매우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조성한 후 관리를 하지 않으면 금방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결국 사라지게 되어 있다. 길은 비록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유기체와 같이 생명을 지니고 있다. 마치 어린애처럼 누군가의 보살핌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양평군에서 군민들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걷는 내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늘 걷는 길은 1코스인 ‘문화유적길’과 2코스인 ‘터널이 있는 기찻길’의 일부인 국수역까지 12.9km 정도 된다. 문화유적길 코스에는 한음 이덕형 신도비와 몽암 여운형 생가 및 기념관 있다. 문화 유적지와 산, 강, 마을을 잇는 길을 아름답게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다.

중간에 잠시 휴식을 하며 한 분이 준비해 온 빵을 나눠먹으며 우리는 식구가 된다. 식구는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다. 함께 먹고 마시며 친구가 되고 식구가 된다. 습기와 낙엽이 가득한 산길에 접어드니 마치 신선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그 길을 걷는 우리는 모두 신선이 된다. 길을 걸으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세속의 모든 걱정거리, 욕심 거리, 생각거리가 저절로 사라진다. 저절로 사라지니 내려놓으려는 노력조차도 필요 없다. 신원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육개장, 청국장, 잔치국수와 함께 막걸리를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떤다. 얘기를 하고 들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이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소통을 통해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알아간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만큼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게 되고, 오해가 사라지면 사람들 관계는 저절로 편안해진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 마을 하나를 넘어 국수역으로 걷는다. 국수역 앞에 국숫집이 있다고 한 분이 얘기하며 다음 길은 국수역에서 만나 국수 한 그릇 먹고 걷자고 한다. 아침에 일찍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 식사를 챙기지 못할 수도 있으니 좋은 제안을 하신 것이다. 국수역의 '국수'는 ‘국화 국(菊)’과 ‘빼어날 수(秀)’라는 한문을 쓴다. 이 동네가 국화로 유명한 동네인 것 같다고 혼자 생각을 한다. 국수역에 도착한 후 차 한잔, 남은 간식을 먹으며 걷기를 마무리한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오늘 길을 복귀해 본다. 이슬비, 수묵화 같은 풍경, 낙엽이 깔린 산길, 햇빛이 없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는 감사함, 길동무들과 함께 걸어 즐겁고 가벼워진 발걸음, 수다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힌 시간, 맛있는 막걸리와 음식, 그리고 어느새 가까워진 길동무들과의 관계 등이 떠오른다. 길은 이렇게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길은 생명이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힘을 지닌 유기체이다. 길에게 감사를 표한다. 오늘 함께 걸은 길동무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