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34] 코로나 자가 격리 4일 차

걷고 2022. 2. 25. 14:47

날짜와 거리: 20220225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15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코로나 확진 후 나흘째를 맞이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몸의 다른 이상 징후는 없고 목이 조금 아프고 가래와 기침만 조금 있을 뿐이다. 처방받은 약봉지에 7알의 알약이 들어있고, 거담용 시럽이 별도로 있다. 몸의 화학화가 되어간다. 약으로 몸을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약을 많이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약 외에도 개인적으로 먹는 혈압약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PCR 검사 음성으로 판정되었고, 손녀와 딸아이도 별일 없다. 나 자신보다 가족들이 더 신경 쓰인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덕분에 방 안에서 홀로 한가하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실도 아내가 외출을 했기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내에게 귀가 10분 전에 전화를 하라고 당부했다. 환기를 시킨 후 미리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아내와 나는 철저하게 동선을 분리해서 생활하고 있고, 식사도 아내가 별도로 상을 차려서 방 앞에 가져다 놓으면 내가 들고 와서 문 닫고 먹는다. 마치 한 지붕 두 가족 같다. 저녁 시간에 아내는 거실에는 나는 안방에서 지내며 무엇을 하느냐고 서로 묻기도 한다. 늘 같이 지내다가 문을 닫고 따로 지내니 궁금하다.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재미다.      

 

 어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나이가 많고,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집중 관리 대상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두 번 전화를 해서 안부는 묻겠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직 연락이 없다. 외출 금지를 당부하며 격리 기간이 끝나면 격리 해지 통보서를 보내준다고 한다. 그 통보서를 동사무소에 제시하면 위로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정작 내가 궁금해서 전화를 할 때에는 보건소 통화가 되지 않았다. 확진 통보를 받은 후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을 곳이 없어서 답답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해당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이름을 알게 되었다. 확진 통보 시 필요한 안내를 함께 해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보건소에서 전화를 한 것도 역학조사를 모바일로 했기에 온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 중 많은 분들은 휴대전화로 역학조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온 후에 문자를 받았다. 동네 병의원과 의료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 문자이다. 앞뒤 순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의사가 진료 중이라며 전화를 주겠다고 한다. 조금 후에 의사가 전화를 해서 증상을 물어본 뒤, 약 처방을 약국에 해 놓았으니 직접 오지 말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받아가라고 한다. 비대면 상담을 한 후에 약 처방을 하고, 그 처방전이 약국에 전달되고, 약국에서는 약을 준비해서 확진자 가족을 통해 전달해 준다. 기본적은 시스템을 잘 갖추어진 것 같은데, 앞뒤 순서가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동네 병원에서 상담과 처방을 하기로 한 결정이 최근에 내려졌으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하루 일과는 너무 단순하다. 글로 하는 일을 정리하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한가로움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한다. 호흡 명상으로 안정을 한 후에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 화두 들기가 예전보다 편해진 느낌이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약을 먹고 신문을 읽는다. 요즘은 일간지와 경제신문 두 가지를 보고 있다. 한 시간 넘게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보려면 두 시간 이상 걸린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확진 후 ‘토지’를 완독 했다. 두 권이 남았었는데, 하루에 한 권씩 충분히 읽고도 시간이 남는다. 어제부터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있다. 수치가 많이 나오고 옛날 주식상황에 대한 설명이 길어서 대충 골라서 읽고 있다. 모두 이 책을 주식의 바이블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아직 주식 투자자가 되기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읽는다.    

 

 점심 식사 후에 아내는 외출하고 나는 거실에 나와 가상의 원을 만들어서 원 주변을 한 시간 정도 걷는다. 한 바퀴는 시계 방향으로, 그리고 다음 한 바퀴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무술을 오랫동안 해 온 친구가 가르쳐 주었는데, 무술 동작은 어렵고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돌기만 한다. 심심하면 양팔을 좌우로 교차해서 돌리기도 하고, 뒷짐을 지기도 하고, 팔을 양쪽 귀에 닿도록 쭉 뻗은 상태에서 걷기도 한다. 팔을 움직이면 어깨 상부와 목 뒷부분에 뻐근함이 느껴진다. 그 감각을 지켜보며 걷는다. 가끔은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쥔 후 푸는 것을 반복하기도 한다. 손의 감각을 느끼며 걷는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다리가 뻐근해진다. 그 뻐근함도 잠시 느껴본다. 샤워를 한 후에 30분 정도 오수를 즐긴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명상을 한 후에 책을 읽는다. 저녁 식사 후에 다시 책을 읽고, 신문을 다시 읽으며 못 본 기사를 자세히 읽어본다. 자기 전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한다. 명상, 독서, 신문보기, 걷기 뿐 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것이 그다지 심심하지만은 않다. 가끔 친구들이 전화나 카톡을 보내어 안부를 묻기도 한다. 고맙다.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소중한 시간이다. 코로나 검사받은 이후로 밖에 한 발짝도 나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하루가 잘 지나간다. 혼자 지내는 것에 많이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어울리기도 하지만,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것에 잘 적응하고 있다. 타의에 의한 고립이지만, 생각을 바꾸면 자발적 고독이 된다. 고립은 갇힌 것이고, 고독은 열린 상태이다. 고립은 상황이 만든 것이고, 고독은 자신의 내면이 만든 것이다. 고립은 종의 삶이고, 고독은 주인의 삶이다. 코로나가 축복일 수는 없지만, 이왕 걸린 것이라면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자기 변화의 시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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