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27] 회광반조(廻光返照)
날짜와 거리: 20220206 - 20220207 7km
코스: 불광천 한 바퀴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06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가수가 된 박창근 씨를 최근에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다. 선배 가수들이 포크계의 계보를 잇는 가수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3년간 무명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뚝심이 대단하다. 그를 보며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가 떠올랐다. 외길을 고집스럽게 걸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그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도 바로 노래에 담긴 참가자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노력, 인내가 그들을 각자의 분야에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박창근 씨는 선배 가수 송창식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작곡이 있는데 모두 대중적이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송창식 씨는 아주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곡이 대중적이지 않을 때, 그 곡을 듣는 사람들이 끌려올 수 있도록 노래를 잘하면 된다. 기타를 잘 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고, 노래를 잘하면 기타가 따라온다.” 70대 중반인 송창식 씨는 단 하루도 기타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연습만이 훌륭한 가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경험이 있었기에 명쾌하고 시원한 답변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디 가수 박창근이 오랫동안 우리 기억에 남는 가수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늘 신문에는 배우 손숙의 얘기가 실려 있다. 황반변성으로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은 그녀는 대본도 큰 활자로 확대해서 돋보기를 쓰고 읽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극무대를 찾을 때, 또 연극무대에 설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배우가 배우로서 올곧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정체성을 잃게 되면 주인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공허하게 남아있게 된다. 그 껍데기가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지위, 부귀, 명예 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지위에 오르기 위한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인이 될 수도 있고, 추구했던 것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수는 노래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작가와 가수, 배우, 어떤 직업과 위치에 있든 모든 삶의 목적은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가수 송창식이 매일 연습하는 이유는 돈을 더 벌겠다거나 자신의 위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가수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배우 손숙은 비록 무대에서 앉아있는 뒷모습만 보이는 연기를 하더라도 그 역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한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심신 단련의 과정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루틴을 유지하며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나눔을 위한 이런 노력이 있기에 그들은 그 분야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사람들은 박경리 선생님을 성공한 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작 박경리 선생님은 작가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적잖은 번민과 고통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당신이 갖고 계신 모든 것, 작가로서의 명예,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싶었던 삶, 사회적인 시선 등,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요즘 ‘토지’를 다시 읽고 있다. 몇 달 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네 권이나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고통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책 탈고의 고통을 산고에 비교하기도 한다. 장편 소설의 경우 탈고의 고통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도 없다. 소설의 구성, 수많은 인물들의 성격과 언행, 사회적 현상, 다양한 인간군상의 아름답고 추한 모습들, 처한 상황에 대처하고 고민하는 내용을 써내려 간 세심하고 예민한 감정의 묘사 등은 모두 선생님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아마 선생님은 이 책을 탈고하시기 전에는 이 책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쓰셨을까? 선생님의 삶을 토지와 바꾼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의 얘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어서이다. 요즘 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 혼란이 온 것 같다.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열심히 걷고 걷기를 통한 심신 치유 프로그램을 구상 중에 있다. 명상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재테크 공부도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왜 걷고, 글 쓰고, 명상하고, 재테크 공부를 하고 있을까?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일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다. 욕심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고, 그 정체성이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정체성의 부산물이 사회적 인정, 명예나 부귀 등이 될 것이다. 부산물이 목적이 되는 삶은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노예가 주인을 부리는 삶이다.
나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 ‘나’를 찾아야 한다. 걷고, 글을 쓰고, 명상하는 일 모두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나의 할 일을 만들어 줄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 만나는 일도 조금 더 줄이고, 홀로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생활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외부로 향해있는 시선과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 바라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