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25] 무아를 일깨워주신 틱낫한 스님
날짜와 거리: 20220128 - 20220202 39km
코스: 안산 둘레길 - 무악재 하늘다리 - 독립문 외
평균 속도: 3.3km/h
누적거리: 6.02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전통적인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신정을 쇠면서도 여전히 구정을 쇠기도 한다. 신정은 업무 상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고, 구정은 조상님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족끼리 모여 한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다. 차례를 지내며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과 두 손자들의 인사를 받았다. 나는 고인이 되신 부모님과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아이들 사이에 낀 사람이다. 죽기에는 아직 젊고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누군가는 어떤 일을 하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고 얘기한다. 좋은 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쏙 들어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늦었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솔직한 표현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 낸 삶의 증거일 뿐이다.
며칠 전 우연히 ‘걷고의 걷기 학교’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첫 프로젝트인 ‘간병인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 여파도 있을 것이고, 간병인들이 일정한 시간을 내어 나온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겨울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드는 계절이다. 참가자가 없다는 것이 어떤 실망감이나 좌절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잠시 이유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다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은 아닌가, 시절 인연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자신을 채우는 시간을 보내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다시 던졌다. 걷기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심신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을까?’ 그들의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져 연민의 마음이 차올라서 그들을 돕고 싶을까? 아니면 좋은 일을 한다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일까? 전자는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고, 후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욕심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일을 하는 마음가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니 전자와 후자의 비율이 10:90 정도인 것 같다. 그만큼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앞 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염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오염된 결과를 가져온다.
본래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을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거짓 자기가 시키는 대로 이기심과 욕심을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마음 밭을 점검해 본다. 이런 어리석은 일을 과거에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도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은 자신의 동상을 세우기도 하고, 자신의 업적을 과대포장하기도 하고,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봉사나 기부를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인형에게 화장을 하거나,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걷고의 걷기 학교’라는 명분을 세우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나 자신 역시 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아직도 나를 버리지 못하고 사회적 명분과 인정을 얻기 위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달아오른다.
올 해는 ‘힘 빼기’를 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어리석은 힘을 빼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갈등 역시 거짓 자기가 만들어 낸 허상에서 비롯된다. 거짓 자기의 힘을 빼면 허상은 저절로 사라진다. 화를 내거나 조급한 마음을 갖거나, 사소한 일로 마음에 격랑이 일어나는 일 역시 거짓 자기에게서 ‘힘 빼기’를 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헛된 망상이 만들어 낸 ‘허상’이 빨리 ‘주인 자리’에서 물러나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허상’의 ‘힘 빼기’를 해야 한다. ‘ 허상‘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된다. 그 방법이 바로 ‘허상’이 ‘허상’ 임을 ‘알아차림’하는 것이다. 알아차리면 ‘허상’이라는 도독 놈은 물러나고 ‘참 자기’라는 주인이 저절로 나타난다. 결국 ‘힘 빼기’는 주인 자리에 앉아있는 ‘도둑놈’이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다.
어둠이 지나면 밝음이 오듯이, 도둑놈이 사라지면 주인이 저절로 나타난다. 도둑놈과 주인은 동전의 양면이다. 도독 놈의 ‘힘 빼기’를 한다는 것은 동전을 뒤집어 주인이 나타나게 하는 일이다. 모든 망상이 사라지고 거짓 자기가 사라진 곳에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텅 빈 충만’이 채워진다. ‘텅 빈 충만’을 바라보는 ‘어떤 것’만 존재한다. 그 존재는 사라지지도 않고, 줄거나 늘지도 않고, 오염되거나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 존재를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신 분이 계신다. 얼마 전 입적하신 팃냑한 스님이다.
“저를 위해 사리탑을 짓지 말아 주십시오. 제 재를 꽃병에 담지 마시고, 저를 그 안에 가두어 저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것이 여러분 중 일부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불탑을 세워야 한다면 이렇게 표지를 붙이도록 하십시오. ‘나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어디에 있다면 그곳은 바로 당신의 마음챙김 호흡과 당신의 평화로운 발걸음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