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24] 경제적 자유
날짜와 거리: 20220125 - 20220127 22km
코스: 상암동 공원 외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5,98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수원 모 기관에 면접관으로 다녀왔다. 가끔 이곳에 온다. 오후 2시부터 면접 시작인데, 집에서 서둘러 나가 12시 이전에 도착한다. 일찍 가는 이유는 좋아하는 식당과 커피숍에 들리고 싶어서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가는데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린다. 돈가스 전문점에서 식사를 한 후 커피숍에서 차 한 잔 마신 후 면접장으로 간다. 집에서 나간 후 면접장에 도착하기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고요한 시간이 좋고 편안하다.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오직 자신과 대화를 하거나 주변의 사물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을 한 권 들고 가지만 커피숍에서 대부분 책을 읽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책조차도 소음이 된다. 마치 진공 속에 갇힌 것 같은 고요한 이 순간이 편안하다. 이 순간에 오직 나와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음식을 먹으며 식당의 분위기와 음식 맛에 빠져든다.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바로 ‘자발적 고독’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란색 외관의 분위기와 내부의 한옥 분위기가 절묘하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옥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만든 것 같다. 천정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고옥의 느낌을 풍긴다. 창가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있어서 작은 정원에 들어온 느낌도 든다. 의자 다리에는 테니스공을 잘라 만든 것 같은 완충재를 붙여서 바닥과의 마찰음을 최소화시켰다. 나이프와 포크를 정성스럽게 감싼 냅킨 끝 부분에 식당의 이름이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소한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수프를 담은 그릇 역시 고풍스럽다. 음식 맛을 잘 모르는 나는 음식 맛을 평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이미 맛을 좌우한다. 화장실에도 작은 화분들이 몇 개 놓여있고, 손 세정제와 페이퍼 타월이 비치되어 있다. 화장실을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인식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어서 화장실의 격으로 식당의 격을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소견이다. 좁은 식당이지만, 종업원의 주문받는 목소리 외에 별다른 소음이 없어서 좋다. 주방에서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물론 어제는 한 쌍의 연인이 내 뒷좌석에서 계속 떠들어대서 내쫓고 싶기도 했지만, 나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그들에게 행패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 후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늘 들리는 커피숍이 있다. 이 커피숍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분위기가 고풍스럽고 조용하다는 것 때문이다. 주인은 주문받고 차를 날라다 준 후에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간다. 마치 내가 커피숍 전체를 전세 낸 느낌이 든다. 아무도 없는 커피숍에 홀로 앉아 창가에 놓인 화분을 쳐다보기도 하고, 차를 음미하기도 하고, 잠시 눈을 감고 고요하지만 충만한 분위기를 만끽한다. 바닥과 벽의 전반적인 칼라는 짙은 밤색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욱더 품위 있게 만들어 준다.
차를 마신 후 면접장에 도착했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식사와 차를 마시는 두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두 시간의 진정한 휴식 덕분에 현실로 돌아와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휴식과 일의 조화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휴식을 위해서 일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하다. 면접을 마친 후 함께 면접을 진행했던 한 분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서울로 올라왔다. 약 1년 전쯤 대기업 임원으로 퇴임한 그분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늘 퇴임 후 삶에 대한 준비를 해온 분이어서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조건이 좋은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고민 끝에 고사를 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 2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자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열심히 근무해 온 덕분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같은 환경에서도 자신의 인생보다 직장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각자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인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환경에 맞춰 살아가느냐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속 내용은 다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제 만난 분은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그런 당당하고 멋진 삶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 뉴스 시간에 아파트 경비원을 갑자기 해고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분들이 그간 그 아파트에서 열심히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갑작스러운 결정은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사정은 모르지만, 경비 용역 회사를 바꾸며 발생한 일이라고 한다. 갑자기 할 일을 잃은 그분들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뉴스를 보며 함께 얘기했던 지인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다. 어떤 분은 직업 제안을 스스로 고사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일을 하고 싶은데 일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기도 한다. 그분들이 모두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제적 자유’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적 자유’는 ‘자유’와 직결되어 있다.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논할 필요조차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불편하면 자유롭게 살아가기가 어렵다. 물론 물욕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참다운 ‘자유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의 보편성을 고려해 볼 때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외식을 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고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나름 ‘경제적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