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15] 간병인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
날짜와 거리: 20220105 5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5,80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랜만에 시내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심지어 집 근처 버스 정류장도 오랜만에 가본다. 정류장 근처에 신축 빌딩이 건축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다. 차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고 사람들은 분주하다. 평상시와 다른 동선을 가보니 그간 은둔 생활을 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시내에는 여전히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구호를 외치는 소음도 들려온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마치 외계인이 된 느낌처럼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집 근처 도서관에 없는 책들을 서울 도서관에서 빌린 후 도서관에 앉아 읽으며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도서관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가하다. 오히려 근무하는 직원들이 방문객보다 많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같이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서관에서 또 식당 두 곳에서 오늘만 세 곳에서 백신 접종 여부 확인 절차를 받았다. 이제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공시설 이용이나 식당 등을 이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빨리 코로나로부터 해방되길 희망한다.
어제 쓴 글 ‘선재길과 불씨’를 SNS에 올렸는데 지인이 댓글로 반갑게 인사를 전해왔다. 최근에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부모님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지만 치매에 걸리셨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 같다. 힘든 시간을 보냈고, 형제들과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기도 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은 서로의 역할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부모님을 간호하면서 내가 쓰레기였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라며 밝게 웃으며 얘기하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서 싱그럽게 들려왔다. ‘쓰레기’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게 박힌다. 그 단어를 얘기하며 웃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월정사 명상 마을에도 다녀왔다고 하며 단기출가 학교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쓰레기였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쓰레기’의 모습을 이미 벗어난 매우 당당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간병을 위한 인력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고, 자식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노인들을 모시며 간병하는 시설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시설과 서비스의 수준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기 어려운 상황에서 요양원에 보내드릴 형편도 안 되는 사람들이나, 병원비나 약값조차 지불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간병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다. 간병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받는 신체적, 심리적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재작년에 간병인을 위한 프로그램인 'PTC (Powerful Tools for Caregivers)'에 참석해서 강의를 들었다. ‘간병인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는 프로그램으로 6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석자들은 나 같은 상담심리사도 있고,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부모님을 간병하는 사람들도 있고, 간병인을 돕기 위해 참석한 분들도 있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첫 시간에 참석자들이 대부분 간병으로 인해 고통받은 경험이 있거나 지금도 힘들게 간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병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부모님 간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에서 PTC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간병인을 위한 프로그램'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PTC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간병인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하고, 그 힘으로 간병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취미, 활동 등을 매일 시간을 정해서 조금씩 해나가며 스스로 스트레스도 풀고 나아가 자신에게 마음의 쉼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간병에만 모든 에너지와 활동이 집중되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심리적, 시간적, 신체적 여유를 회복할 시간이 없어진다. 그 결과는 소진으로 이어지고, 소진은 스트레스와 짜증, 그리고 심해질 경우 간병을 포기하는 결과까지 불러올 수 있다. 매일 최소한 30분 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회복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 메몰 되지 않고, 상황과 자신을 일정 시간 동안만이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분리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벗어날 수 없지만, 그 소용돌이를 조금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힘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상황을 바꿀 수 없지만,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바꿀 수 있다. 관점의 변화로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형법상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된 22세 강도영(가명)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4년 원심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방치해 죽게 했다는 죄목이다. (.......) 간병 비극은 감내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견뎌야 하며 극한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 중 누군가 죽어야만 끝난다고 한다. 경제력이 없는 20대에게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경제적 이유로 퇴원시킬 수밖에 없게 하고, 도시가스가 끊기고 폐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하며, 인터넷마저 끊기게 하여 사회적인 단절까지 시켰다면 국가가 젊은 청년을 간병살인으로 내몰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 간병 살인으로 내몰아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인간 존엄 침해와 불평등의 극치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은 우리 잘못 또한 무척 크다.” (조선일보 20220106, 윤영호, 한국건강학회 이사장, 서울대 의대 교수)
이 기사를 보며 가슴 아팠다. 그 청년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상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할 뿐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앞에서 고통의 크기를 얘기하거나 공감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도시가스와 인터넷마저 끊어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배려조차 없었다. 또한 외부와의 소통을 모두 끊어버렸다. 그에게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정부와 우리 사회가 그와 함께 간병 살인을 한 것이다.
간병인들을 위한 걷기 프로그램으로 ‘걷고의 걷기 학교’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이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밖으로 나와 걷고, 간병인들끼리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걸으며 잠시라도 물리적, 신체적, 심리적 휴식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다음 주 화요일에 그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걷기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방법을 구체화하고 싶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모임 인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 인원으로 시작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걷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한 순간 편안하게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